메뉴
brunch
매거진
난봉꾼처럼
누렁이 팔러 가던 날
by
노란 보석
May 6. 2016
우리 집 소 누렁이가 살이 통통하게 쪘던 어느 해 겨울 아버지는 누렁이를 안성 읍내 장에 내다 팔기로 하셨다
송아지를 사다가 2~3년 정도 키우면 내다 팔아서 학비도 마련하고 모아서 땅도 사셨다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볏짚 썬 여물에 호박, 콩, 쌀겨 등을 넣고 맛있게 소죽을 쑤어 먹였다
소죽을 가마솥에 쑤면 구수한 냄새가 온 집에 퍼져 나갔다
양동이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죽을 퍼서 구유에 부어주면 누렁이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었다
요즘 소 키우는 집은 소죽을 쑤지 않고 사료를 사서 먹이는데 몇십 두씩 대량 사육을 하기 때문이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잘 먹이고 정성 들여 거뒀기 때문에 누렁이는 살이 통통이 찌고 털에는 기름기가 흘렀다
그날도 어머니는 새벽같이 일어나셔서 소죽을 정성껏 쑤어 배불리 먹였다
아버지께서 외양간에서 누렁이를 끌어내는데 나오려 하지 않았다
놈도 제가 팔려가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누렁이는 대문 밖으로도 나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한참을 버티던 누렁이가 뒤를 돌아보며 울었다
"음메~~ 에"
놈의 큰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누렁아 다른 데 가서도 잘 먹고 잘살아라"
하시며 등을 두드려 주시자 그때서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누렁이는 한참을 가다가 다시 돌아보고 울었다
"음메~~ 에"
어머니도 행주치마로 눈물을 닦고 계셨다
아버지는 저녁때 송아지 한 마리를 사서 돌아오셨다
이렇게 해서 아버지는 소판 돈으로 땅을 조금씩 장만하셨다
아버지께서 돌아 가신지 40년 이제 소는 키우지 않는다
아버지 어머니께서 피땀 흘려 장만하신 땅은 1/3도 남지 않았다
다 팔아먹고 없다
고생해서 어렵게 장만하셨는데 팔아먹는 건 간단했다
추석날 고향에 내려와 대청마루에 앉으니 누렁이 팔러 가던 날이 생각난다
*
노란보석
keyword
어머니
아버지
누렁이
1
댓글
4
댓글
4
댓글 더보기
브런치에 로그인하고 댓글을 입력해보세요!
노란 보석
소속
한국사진작가협회
직업
포토그래퍼
현재 기업 시스템 구축 컨설팅을 하고 있음. 한국사진작가협회 사진 작가. 시, 소설, 에세이를 행복의 구도에 맞추어 촬영 하듯 쓰고 싶음.
팔로워
309
제안하기
팔로우
매거진의 이전글
필명을 바꾸다
복기
매거진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