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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살다 가기

어떻게 살 것인가?

by 노란 보석

행복하게 살다 가기




노란 보석


우리 가족은 천주교를 믿는 집안입니다. 어머니가 시집오셔서 사는 게 힘들 때 동네 지인의 권유를 받고 입교하셨다고 합니다. 원래 우리 집안은 유교 집안인데 할머니가 워낙 완고하신데 다 아버지 5형제 분들도 유교 사상이 강하셨지요. 천주교 입교는 생각도 못 할 집안 분위기였지만, 아버지가 일제 징용 때 감전사고를 당해 몸이 안 좋으셨던 관계로 고생이 심했던 둘째 며느리의 입교를 허락하시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유아 세례를 받았고 십여 년이 지나서 아버지께서도 입교하셨지요. 자연히 며느리, 사위도 입교했고 손주들도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우리가 미사 참석을 소홀히 할 때마다 속상해하시며 절대 냉담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시곤 했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온종일 일을 하시면서도 가족에 대한 기도를 쉬시지 않으셨으니 우리가 무탈한 건 분명 어머니의 기도가 하늘에까지 닿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의문이 있었으니 ‘하느님이 계신다면, 어머니가 저렇게 착하게 사시고, 기도도 소홀히 하지 않으시는데 어찌 아버지 5형제 중에 우리가 제일 못사는가?’ 였습니다. 내가 의문을 표하면 어머니는 ‘아무 의심도 말고 믿으라.’라고 성경에 말씀하셨다며 나무라셨지요.


아버지는 형제들을 대신해서 징용에 끌려가서 몸을 다치셨는데, 왜 잘사는 형제들이 도와주지 않을까? 섭섭하기도 하고, 나는 왜 이런 못사는 집에 태어났는가? 아쉽기도 했었지요. 그러나 결국은 그건 그냥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건 어떤 해결책도 없으니까요.





독일의 실존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다음과 같이 인생에 대한 철학적인 명언(시)을 남겼지요.


나는 왔누나, 온 곳을 모르면서

나는 있누나, 누군지도 모르면서

나는 가누나,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나는 죽으리라,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청년이 되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친구들과 술 한잔할 때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나는 왜 사는가?’로 토론을 벌이곤 했지요. 그러나 누구도 어디에서도 마땅한 답을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먹고 살기 바빴으니 그런 고민마저도 사치같이 느껴졌던 시기였으니까요. 박정희 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하는 대학생들을 보면서 참 여유롭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왜 사는가?’는 몰라도 ‘어떻게 살 것인가?’는 답이 있다 싶었고 우리 친구들 간에 의견이 모인 부분은 ‘어차피 태어났으니 행복하게 살아보자.’라는 거였지요. 그렇지만, 행복하게 사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요?


차별이란 것이 일상화된, 부조리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분노는커녕 현실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돈 벌어 나도 한번 잘살아 보자.’라는 생각뿐이었으니까요. 돈 많이 버는 게 행복이라 생각했고 그게 삶의 목표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생각 없이 산 것이지만, 적어도 자식들에게만큼은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이 있었지요.



지금 수도권은 홍수가 나서 졸지에 흙더미에 휩쓸리고, 물에 빠져서 유명을 달리한 분들이 여럿이 있습니다. 엊그제만 해도 아무런 문제 없이 잘살고 있었던 사람들이지요. 또 얼마 전에는 서울 시장이 스스로 세상을 등졌지요. 남들은 잠재적 대권 후보로 손꼽던 사람이지요. 코로나 사태로 8월 4일 오늘까지 국내에서만 301명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전염병 감염으로 아까운 목숨을 잃은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는 사고를 당해서 죽든, 자살해서 죽든, 병들어 죽든 죽음과 가까이에 있다는 걸 실감합니다. 이것이 지금은 남의 일이지만, 곧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게 현실입니다.


칼 야스퍼스는 ‘이렇게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 인간 모두가 이러한 한계 상황과 마주하게 된다.’라고 말했지요.

그러면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철학자 데리다는 ‘매 죽음마다 세계의 종국이다.’라고 무겁게 말했다지요. 허무하게 끝날 수 있는 게 인생이지만, 하찮은 인생도, 하찮은 죽음도 없다는 것이지요. 죽으면 세상이 끝나는 것이니까 살아있는 게 소중하고 그래서 진지하게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이유 아닐까요?


나 같은 범인이야 세상에 대단한 족적을 남길 일도 없겠지만,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행복하게 살다 가는 게 가장 기본적인 삶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만드셨다면, 행복하게 사는 거야말로 가장 그 목적에 맞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전에 내가 쓴 글에 ‘천국에 오는 사람 수가 적어서 하느님께서 천국의 입국 조건을 바꾸셨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믿을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행복하게 사는 일도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 중의 하나로 정하셨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는 ‘작은 일에 만족하며, 남과 비교하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되, 항상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어려운가요? 한마디로 내가 마음먹기에 달린 게 행복인 거지요. 그럼 쉽지 않나요?


예수께서는 요한서 8장에서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는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인간과 신의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천국이 있다는 걸 믿느냐?’라고 누가 묻는다면 당연히 ‘믿는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믿어서 손해 볼 게 없고, 안 믿었는데 정말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손해는 없으니까요. 손해 보면 안 되잖아요. 그보다는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니까요. 정말 한 번뿐인 소중한 내 인생이니까요.



그런데 나는 정말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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