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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보석 Mar 21. 2021

1.1 절체절명의 시기

제1장 : 생존전략



1.1 절체절명의 시기



어느덧 풍요의 계절 가을이 가고 우리 참새들에게 시련의 계절 겨울이 다시 찾아왔다. 우리 참새들이 인간의 사냥을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시기가 겨울이다. 가을까지는 들판에 나가면 먹을 것도 많고 인간들도 바쁘다 보니 우리를 쫓아내기는 해도 잡자고 덤비지는 않는다. 

*절체절명(絶體絶命 : 몸도 목숨도 다 되었다는 뜻으로, 어찌할 수 없는 절박한 경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우리 <참새민국> 범말의 겨울은 유난히 추운 데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눈이 들판에 하얗게 덮여서 먹을 것 찾기가 어려운 계절이다. 흰 눈 위에서는 우리가 더 잘 보이는 데다가 매나 수리 등의 맹금류가 호시탐탐(虎視眈眈) 위에서 노리고 있어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 겨울에는 먹을 것이 귀하지만, 다행히 풀씨나 작은 나무 열매가 그런대로 남아 있어 우리 목숨을 지키는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다. 옛날 같으면 짚단 쌓아놓은 곳들이 많아서 먹을 것이 풍족했지만, 요즘은 목장이나 사료공장에서 모두 거두어가서 식량이 더 부족해졌다. 

  겨울은 그래서 우리 참새들이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으로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시련의 계절인 것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눈 위에 서리가 덮인다는 뜻으로, 난처한 일이나 불행한 일이 잇따라 일어남을 이르는 말.

*호시탐탐(虎視眈眈) 범이 눈을 부릅뜨고 먹이를 노려본다는 뜻으로,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하여 형세를 살피며 가만히 기회를 엿봄. 또는 그런 모양.

*백절불굴(百折不屈) : 어떠한 난관에도 절대 굽히지 않음.


  어린 학생들마저도 겨울방학을 맞아할 일이 없으니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우리를 잡겠다고 설친다. 인간들은 본능적으로 사냥하는 것을 도박만큼이나 좋아하는 것 같다. 자기들은 즐기려고 하는 것이지만 우리 참새들에게는 목숨이 걸린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 정신 바짝 차리고 살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지난주에 <까치 공화국>의 외치 장관 딸 장례식에 다녀왔다. 범말 칠뜨기의 공기총에 맞고 비명횡사(非命橫死)했다. 태어난 지 삼 년밖에 안된 어린아이인데 미루나무에 앉아 천진난만(天眞爛漫)하게 놀다가 졸지에 화를 당했다고 한다. 아직 어리다 보니 위험에 대처하는 행동이 서툴렀던 것 같다. 외치와 그 부인, 그리고 가족들은 식음을 전폐하고 완전히 넋을 잃고 있어서 무어라 위로의 말도 건네기가 어려운 분위기였다.

  장례식장은 온통 인간들의 무자비한 사냥에 대한 성토장이 되어 있었다. 특히 과수원 주인 칠뜨기와 용팔이가 모든 새의 철천지한(徹天之恨) 원수로 낙인찍혀 있었다. 외치는 언젠가는 이 원수를 대갚음해 주겠다고 이를 갈고 있었는데 백번 공감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렇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라고 하는 말이 있듯이 그 괴롭고 아픈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인가. 죽는 날까지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야 하는 처지를 당해보지 않고 어찌 이해한다고 할 것인가! 그래서 ‘부모보다 먼저 가는 것은 불효 중에 가장 큰 불효’라고 했다.

*비명횡사(非命橫死) : 뜻밖의 사고를 당하여 제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음.

*천진난만(天眞爛漫) : 말이나 행동에 아무런 꾸밈이 없이 그대로 나타날 만큼 순진하고 천진함.

*철천지한(徹天之恨) : 하늘에 사무치는 크나큰 원한.


  까치 할아범이 얼마 전 뉴스에서 보았다는데, 지난 10년간 한전에서 까치 잡은 걸 보상한 통계를 보면 215만 1000마리나 된다고 한다. 포상금만도 자그마치 87억 9500만 원이라며 이게 말이 되냐고 울분을 토하는 걸 보았다. 나도 깜짝 놀랐지만, 아마 우리 참새도 억울하게 죽은 숫자는 집계가 안 되어서 그렇지 몇 배는 더 많으리라 생각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한 달 전에도 메추리 여덟 마리가 그놈들에게 화를 당해서 조문을 갔다 왔다. 화가 더 나는 것은 시체마저 그놈들이 가져갔기 때문에 장례식도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 메추리의 자식 사랑은 유별난데 자식 잃는 부모가 넋이 나가서 흐느끼는데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이솝우화에도 메추리의 자식 사랑에 대한 일화가 나오는데, 메추리 어미가 사냥꾼을 만나 제발 자기 자식들만은 잡지 말아 줄 것을 간절히 애원한다. 사냥꾼은 “그러마”라고 약속하면서 “‘그런데 어느 새가 당신 자식인지 내가 어찌 아냐”라고 물으니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새가 내 자식이다”라고 일러 주었다. 사냥꾼은 알았다고 하고 사냥을 나갔는데 돌아오는 사냥꾼의 허리춤에는 잡은 메추리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를 본 메추리 어미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은 어찌 약속을 지키지 않고 내 자식들만 잡았단 말이요?”라고 소리 지르고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그러자 사냥꾼은 “나는 예쁜 새는 한 마리도 잡지 않았소. 여기 보시오. 꽁지도 없는 못난 새만 잡았단 말이오.” “어찌 당신은 어미의 심정을 그리 모를 수가 있소. 이 세상 모든 어미는 제 자식이 제일 예쁘다는 걸 진정 모른단 말이오?” 인간이 제 자식이 제일 귀하듯 우리 동물들도 똑같이 내 자식이 제일 귀한 것이다.


  우리 새들은 이런 인간들의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행에 대하여 규탄하지만 안타깝게도 대응할만한 수단이 별로 없다. 점점 더 난폭해져 가는 인간과 같은 땅에서 살면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라는 속담이 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당하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는 지구의 일원으로서 권리를 회복하고 자유를 되찾기 위해, 아니 살아남기 위해 인간에게 당당하게 맞서 싸울 것이다.

*천인공노(天人共怒) 하늘과 사람이 함께 노한다는 뜻으로, 누구나 분노할 만큼 증오스럽거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


  인간이 가축을 키우기 전까지는 사냥이 생존 수단이었으니 어느 정도 양해가 되는 면도 있으나, 가축을 키우면서도 사냥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야만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행동이 사냥이라고 생각한다. 가축을 키운다는 것도 인간이 마음대로 동물을 속박하고 길들여서 결국은 키워서 잡아먹는 일이다. 아마 한집에 함께 살면서 정든 동물을 잡아먹는 동물은 세상에 인간밖에 없을 것이다. 양두구육(羊頭狗肉) 즉, 인간의 탈을 쓴 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양두구육(羊頭狗肉) :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 겉과 속이 서로 다름. 


  인간들이 개나 고양이를 애완동물(愛玩動物)이라 하여 길들여서 끼고 사는데 우리 참새가 보기에는 동물의 자유를 억압하는 윤리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의 본성을 죽이고, 오직 인간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인간이 주는 먹이만 먹으며 제한된 공간에서 살고 있으니까. 

  적어도 우리 참새는 인간이 어떤 식으로 유혹해도 애완동물(愛玩動物) 노릇 할 생각은 없다. 분명하게 내가 장담하지만 그런 일은 단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인간이 참새를 길들여 키우는 걸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우리 참새들은 비록 몸은 작아도 인간에게 길들여 살지 않는 것에 대하여 엄청나게 큰 자부심을 품고 살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볼 때 개와 고양이들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그 애들은 자존감도 없는지 인간에게 ‘주인님, 사랑해요.’ 하면서 아양 떠는 것을 보면 정말 불쌍한 생각마저 든다. 참새는 참새답게, 개는 개답게, 고양이는 고양이답게, 인간은 인간답게 사는 게 가장 아름다운 것 아닌가!


  요즘은 인간 중에도 생각이 있는 자들이 개와 고양이를 반려동물(伴侶動物)이라고 부르며 더욱 친밀도를 높여 가족처럼 보내는 것을 보았다. 자기의 본성을 죽이고 사는 안타까운 면은 있으나 그래도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 다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는데, 자기 부모나 조부모보다도 반려동물(伴侶動物)을 더 위한다는 점이다. 자기 반려동물에게 베푸는 애정의 반만이라도 부모님께 해드리면 효자 소리를 들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 인간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동물이다. 

  우리는 집단생활을 하면서 노인에 대한 공경만큼은 제대로 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몸이 불편해서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참새가 있으면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식량 한 알씩을 구해다 먹여준다. 그게 가족이건 아니건 상관없다. 

*십시일반(十匙一飯) : 열 사람이 한 술씩 보태면 한 사람 먹을 분량이 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하면 한 사람을 돕기는 쉽다는 말.


  직장 생활하는 사람들이 반려동물을 온종일 외롭게 혼자 두고 있는 것은 학대 아닌가? 이건 완전히 나 혼자 즐기려고 하는 이기심밖에 더 있는가. 더 심각한 것은 그렇게 개와 고양이를 반려동물이라며 끼고 살다가 하기휴가, 추석, 구정이 되면 유기하는 수가 수천 마리에 이른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한 해에 버려지는 숫자만 12만 마리나 된다고 들었다. 끝까지 책임질 능력과 자신이 없으면 키우지 마라. 그들은 생각이 없는 인형이 아니다. 

  과연 버려진 애들은 야생에서 제대로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길양이 쏘리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데 자기를 버린 주인의 처사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분노하고 있었다. 자기는 아무런 잘 못 한 것도 없고 주인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는데 왜 버려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더 안타까운 건 그 애는 야생에 적응하지 못해서 회복 불능의 중병을 앓고 있던데 요즘은 보이지 않으니 걱정된다.


  얼마 전에는 동물권 행동단체 대표가 유기견을 데려다가 수백 마리나 안락사시켰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이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본모습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그러니 우리 참새는 절대 인간의 애완동물(愛玩動物)이 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 경시(生命輕視) 풍조(風潮)’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조류 연합회>에서는 이런 점에서 인간들의 야만적인 행동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해왔다. 그러나 조류와 인간 사이에 진지하고 허심탄회(虛心坦懷)한 대화는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간이 조류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아예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에게 참새만을 특별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편부당(不偏不黨)하게 모든 동물을 공평하게 대해 달라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의 요구에 관심을 두고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부처님을 믿는 불제자들이다. 참으로 고맙고 존경스러운 사람들이다.

*허심탄회(虛心坦懷) :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터놓음, 

*불편부당(不偏不黨) : 한쪽으로 기울어짐 없이 중정, 공평함. 


  우리 참새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란 것은 인간들도 잘 알 것이다. 인간들이 우리를 어떻게 속여서 잡아먹으려 하는지 우리는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는다는 건 모두 인정할 것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둥지 밖으로 나가기 전에 생존을 위한 교육을 철두철미(徹頭徹尾)하게 받고 있다. 인간 이외에 우리가 경계해야 할 동물은 매와 솔개 그리고 부엉이, 올빼미들이 있다. 놈들은 빠르고 사나워 조금만 경계를 소홀히 해도 쥐도 새도 모르게 당하는 수가 있다. 솔직히 인간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이다.

*철두철미(徹頭徹尾) : 처음부터 끝까지 방침을 바꾸지 않고, 생각을 철저히 관철함.



  ‘의심하고, 또 의심해라! 그리고 경계하고 또 경계하라!’ 이 두 가지 말씀을 어머니에게 매일 귀가 아프게 들었다. 어머니는 특별히 여동생에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명심해야 한다며,

 “이 세상에 믿을 놈은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된다. 특히 남자는 더…….”라고 강조하셨다. 

  그럼, 아버지도 못 믿겠네요?”라고 동생이 말했다가 죽도록 맞는 걸 보았다. 아무튼,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을 참새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꼽고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평소에 솔개나 올빼미 등으로부터 공격을 받지 않으려면 가시덤불이나 울타리를 잘 이용해야 한다. 그 사이에 있으면 은폐(隱蔽)와 엄폐(掩蔽)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란기인 봄부터 여름까지는 육아를 위해 가족 단위로 행동한다. 그러다가 가을이 되면 집단으로 활동하는데 안전을 위해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서이다. 가을엔 주로 논이나 수수밭, 조밭에서 살지만, 겨울엔 볏짚 쌓아 놓은 곳이나 울타리에서 논다. 그러다가 인간이 소에게 소죽을 쑤어 주거나 사료를 주면 외양간까지 날아 들어가 빼앗아 먹는 일이 일과이다. 소죽에는 콩이라든가 등겨, 그리고 각종 영양가 있는 곡식도 들어 있어 우리에겐 더없이 좋은 먹거리이기 때문이다. 

  우리 참새들은 잘 알고 있다. 소들은 절대 우리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아니 소의 속도나 능력으로는 우리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소등에 올라타서 ‘야 미련한 소야! 네 고기가 맛이 있다고 자랑하냐? 그래 봐야 네 고기 열 근과 내 고기 한 첨을 안 바꾼다!’라고 놀리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아둔한 소가 화가 나서 씩씩거리지만 빠른 우리를 어쩔 수 없으니 약만 더 오를 뿐이다. 못된 소를 만나면 뿔에도 앉아 놀리고 귓바퀴 옆에 붙어서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는데 ‘다른 동물을 놀려 먹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교육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장난꾸러기들의 일탈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이런 말 들어 보았는가? ‘힘센 놈이 강한 것이 아니라 빠른 놈이 강한 것이다.’라고, 전쟁은 물론, 기업 경영도 그렇고, 우리 동물처럼 약육강식(弱肉強食)의 세계에서도 이 말은 진리다.

*약육강식(弱肉強食) :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힘이란 뜻으로, 생존 경쟁의 살벌함을 말함


  문제는 우리 참새고기가 소고기보다 백배나 맛있다는 것을 입맛 까다로운 인간들이 안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를 잡아먹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다. 인간만큼 맛있는 걸 찾아다니는 동물이 있을까? 곰 발바닥이 맛있다고 러시아까지 원정 가서 곰을 사냥해 먹는다는 말을 철새 기러기한테 들었다. 아무튼, 정말 못 말릴 인간들이다.


  우리를 ‘참새’라고 부르는 이유를 아는가? 이것도 자칭 ‘만물의 영장’라는 인간이 붙여준 명칭이지만, 여기서 ‘참’이라는 말은 순수한 한국말로 ‘진짜’라는 말이다. 참기름의 ‘참’ 자와 같은 의미로 보면 된다. 즉, ‘진짜 새’라는 말인데 새 중에 가장 ‘약삭빠르고 맛있는 새’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한다. 우리는 그래서 ‘참새’라는 지칭에 대해 큰 자부심이 있고 다른 새들도 엄청나게 부러워한다. 우리 <참새민국>을 한자로 표기하면 <진조민국(眞鳥民國)>이 되는데 유식하다는 참새들은 이 국호를 선호하고 있다. 

  말 많은 까치도 우리를 참새라 지칭하는 것에 대하여 불만을 표하고 있는데, 자기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새이고 머리도 자기들이 가장 좋다고 우긴다. 그렇다고 까치를 ‘참치’라고 부를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 봤자 요즘 인간들로부터 욕을 제일 많이 먹는 새가 제 놈들과 우리인데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얘기하다 보니 엉뚱하게도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졌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인간들은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의무적으로 일 년에 한 번 안전교육(安全敎育)을 받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만약 안전교육 이수증이 없으면 생명보험(生命保險) 가입이 안 되는 건 물론, 불법 통행이 되기 때문에 교육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안전교육(安全敎育)에서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이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먹거리는 절대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인간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이 총 인지 아닌지 식별하는 교육을 가장 많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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