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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보석 Mar 22. 2021

3.1 청천벽력

제3장 : 혼돈의 시대



3.1 청천벽력



  죽음의 지옥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운명일까?


  이번 참사에서 모든 참새가 당한 것은 아니었다. 의참이와 그 동료들은 구사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남았다. 의참이는 참새 대학병원의 의사이며 범말 참새대학교 교수다. 의참이는 조심성은 물론 겁이 많고 머리도 좋아서 참새가 가져야 할 덕목을 제대로 갖추었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다.  

  의참이가 보기에 우선 눈이 이렇게 많이 왔는데 거기에만 눈이 없는 것이 이상했다. 또, 한겨울에 이렇게 먹을 것이 지천인 일은 좀처럼 보기 드문 점이었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의참이의 경험상 이렇게 평소보다 유난히 상황이 좋은 경우에는 십중팔구(十中八九) 복병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산전수전(山戰水戰) 산에서도 싸우고 물에서도 싸웠다는 뜻으로, 세상의 온갖 고생과 어려움을 다 겪었음을 이르는 말.

*십중팔구(十中八九) 열 가운데 여덟이나 아홉 정도로 거의 대부분이거나 거의 틀림없음


  “잠깐만!”

  “얘들아! 이거 이상하지 않아?” 의참이가 볍씨 먹는 걸 강하게 제지하고 나섰다.

  “------------?” 

  모두 동작을 멈추고 의참이를 바라보았다.

  “먹지 말고 일단 기다려봐! 뭔가 이상한 것 같아!”


  의참이가 동료들을 제지했으나 듣지 않았다. 눈 때문에 끼니를 거른 데다 워낙 급박하게 벌어진 일이라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서로 맛있는 벼를 많이 먹을 욕심에 의참이 말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얘야, 눈이 더 오기 전에 먹을 것 있을 때 많이 먹어 둬라!” 엄마 참새는 새끼 참새에게 많이 먹으라고 채근까지 했다.

  다른 참새들이 볼 때 틀림없는 벼 낟알이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으니 오히려 먹지 않고 구경만 하는 의참이가 바보같이 느껴졌다.

  “너희는 이 맛있는 걸 먹지 않고 뭐 하고 있냐?” 

  동료들이 채근했으나 의참이는 꾹 참았다. 그렇다고 수수방관(袖手傍觀)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쪼아 먹으려는 걸 강하게 막았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라는 속담을 알려주시며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라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을 잊지 않은 것이다. 천우신조(天佑神助)일까? 결국은 의참이 가족과 친한 동료들만 운 좋게, 아니 신중한 처신으로 사지에서 살아나왔다.

*수수방관(袖手傍觀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간섭하거나 거들지 아니하고 그대로 버려둠을 이르는 말. 내버려 둠, 보고만 있음.

*천우신조(天佑神助) : 하늘이 돕고 신령이 도움. 또는 그런 일.


  참새들이 술에 취해 비틀대고 횡설수설(橫說竪說)하는 비상 상황에서도 의참이는 원인을 모르니 약을 쓸 수 없었다. 술 취한 참새가 ‘솔개 다 나와!’라고 외칠 땐 전부 미쳤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횡설수설(橫說竪說)할 때까지는 좋았다. 그다음에 인사불성(人事不省)이 되어 비틀거리다 앉아서 졸기 시작하더니 침을 질질 흘리며 누워서 곯아떨어질 때는 큰일이다 싶었고, 공포감이 밀려왔다. 의참이가 급하게 참새 경찰서에 연락을 취했으나 침착하게 기다리라는 말만 할 뿐이었다.

*인사불성(人事不省) 제 몸에 벌어지는 일을 모를 만큼 정신을 잃은 상태.

  뒤늦게 구급차와 경찰이 달려왔으나 그때는 이미 사태가 끝난 뒤였다. 경참이가 부하들을 데리고 보석이 뒤를 쫓아갔으나 무기력하게 울면서 돌아왔다.

  급박한 상황에서 의참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로서 이렇게 속수무책(束手無策)이고 무기력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아무리 자책해도 어찌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은 틀림없었다. 낟알 몇 개를 증거물로 채집해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청천벽력(靑天霹靂)이 아닌가. ‘하늘이 무너진다’라는 표현은 이런 때 쓰는 것이다. 

*청천벽력(靑天霹靂) 맑게 갠 하늘에서 치는 날벼락이라는 뜻으로, 뜻밖에 일어난 큰 변고나 사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온 국민 참새가 시청 앞 광장에 모여서 안타까움과 비통함에 가슴 치며 통곡했다. 실신하는 가족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였고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특히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은 자식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땅을 치며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다. 어미가 떠나간 어린 참새는 장에 간 엄마 언제 오느냐고 찾아서 모두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참새들은 인간의 무자비한 살상 앞에 속절없이 당해야 하는 처지를 한탄하면서 그들의 만행을 규탄하고 무심한 하늘을 원망했다. 그 어떤 말로도 위로나 이해가 될 수 없는 일이었다. <참새민국> 국민은 가족, 친구, 동료를 가슴속에 묻으며 절대 잊지 않고 언젠가는 기필코 복수하겠다며 절치부심(切齒腐心)했다.

  하늘도 슬픔을 알아주는지 검은 하늘에서는 흰 눈이 온종일 소리 없이 내렸다. 세상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무심하게 하얀 세상으로 바뀌었다.

*부지기수(不知其數)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많음. 또는 그렇게 많은 수효.

*절치부심(切齒腐心) : 몹시 분하여 이를 갈며 속을 썩임.



  그날 보석이네 집에서는 용팔이와 칠뜨기 그리고 동네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여 참새고기를 구워 놓고 술판을 벌였다. 


  먼저 보석이 참새의 털을 뽑고 내장을 제거했다. 풍로에 참나무 숯불을 피워 놓고 석쇠에 얹어 소금을 뿌려가며 구워내었다. 참새고기 익는 냄새가 온 마을로 퍼져 나갔다. 

  참새들은 잡혀간 부모 형제와 동료, 친구들이 털이 뽑히고 뜨거운 숯불에서 굽히는 걸 울타리에서 지켜보아야만 했다. 참으로 두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었다. 가슴이 터지고 미칠 노릇이었다. 실신해서 병원으로 실려 가는 참새가 부지기수(不知其數)였고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참새도 많았다. 범말 벌판에는 참새 통곡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보석과 그의 친구들은 소주에다 막걸리까지 놓고 참새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으며 떠들었다.


  “역시 고기 중에는 참새고기 맛이 최고야!” 용팔이가 신이 나서 말하니. 

  “맞아 소고기 열 근 하고도 이 참새고기 한 첨을 안 바꾼다고 하잖아!” 보석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이놈들 농사 축낸 것 원수도 갚고, 술안주로 이렇게 맛있게 먹으니 일석이조(一石二鳥)네!” 칠뜨기가 주제에 문자를 써가며 신이 나서 떠들었다.

  *일석이조(一石二鳥) 돌 한 개를 던져 새 두 마리를 잡는다는 뜻으로, 동시에 두 가지 이득을 봄을 이르는 말.

  이때, 서울에서 주말이라 집에 다니러 와있던 보석이 여동생 보경이가 이를 보고 화가 나서 힐난하였다. 

  “아니, 오빠들은 그 작은 참새가 불쌍하지도 않은 거요? 뭐 먹을 게 있다고 참새를 그리 많이 잡았어요?”

  “야, 보경아 너도 이것 좀 먹어봐라! 정말 맛있다.” 용팔이가 참새고기 구운 걸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말했다.

  “오빠들은 배울 만큼 배우고 알 만한 사람들이 왜들 이럽니까? 자연보호(自然保護)도 몰라요?”

  “얘는? 이 참새가 유해조수(有害鳥獸)라는 걸 몰라서 그러냐? 우리 농사 축낸 것만 해도 얼마인데……. 얘들은 그냥 두면 안 된다니까!” 오빠 보석은 참새가 유해조수(有害鳥獸)라는 걸 강조하며 변명했다.

  “오빠!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자연환경이 파괴되면 생태 환경의 균형이 깨져서 급속히 파괴된다는 걸 모르세요? 그러면 참새가 문제가 아니라 인간도 결국은 다 죽는다고요.” 안타까운 보경은 목소리를 높였다.

  “얘는? 고작 참새 몇 마리 잡았다고 뭘 그리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 이놈들은 우리 농민들의 적이라니까!” 이번엔 칠뜨기가 별거 아닌 일에 웬 난리냐고 말했다.

  “오빠! 참새 몇 마리라고 했어요? 이거 정말 큰일 났네! 저렇게 무식한 소리만 하고 있으니 어쩔까?” 보경은 답답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의참이와 용참이 등 의기 있는 참새들은 동료들이 뜨거운 불에 구워지는 것을 지켜보며 눈물을 닦으면서 언젠가는 열 배로 대갚음해 주리라고 와신상담(臥薪嘗膽)했다.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참새들은 죽어서 뽑혀 버려진 깃털을 하나씩 입에 물고 울면서 돌아왔다.

*와신상담(臥薪嘗膽) 불편한 섶에 몸을 눕히고 쓸개를 맛본다는 뜻으로, 원수를 갚거나 마음먹은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온갖 어려움과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우리 참새의 철천지원수인 홍보석 그리고 박용팔과 김칠뜨기가 등장했으니, 이참에서 소개도 하고 그동안의 자연 파괴 행위를 고발해야 하겠다.


  이들 셋은 어려서부터 산으로, 들로, 냇가로 나돌아 다니며 봄부터 새알을 훔쳐다 날로 먹거나 쪄서 먹었다. 

  새알 중에 제일 먹을 만하게 큰 것은 꿩 알과 뜸부기 알이다. 꿩은 봄에 맨땅에 흙을 고르고 알을 열대여섯 개는 낳는데 자리를 비울 때는 흙으로 덮어 놓아 눈에 잘 띄지 않게 해 놓는다. 뜸부기는 여름에 논가나 냇가 풀숲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데 여섯 일곱 개는 낳는 것 같다. 

  지금은 멸종이 되었지만 낙엽송 꼭대기에 집을 지은 따오기 알도 꺼내오고, 벌판에서 메추리알도 꺼내 왔다. 하루는 칠뜨기가 까치 알을 꺼내러 미루나무에 올랐다가 똥 세례를 받았다. 얼굴 정면과 옆으로 날며 어떻게나 위협하는지 결국은 포기하고 내려왔다. 이때부터 까치와는 원수지간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 세 사람이 나타나기만 해도 동네 까치가 모두 울어 대서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칠뜨기 오른쪽 머리 밑에 하얀 버짐이 500원 동전만 한 게 있는데, 사람들은 까치 똥을 맞아서 생긴 거라고 말했다.

  닭 준다고 개구리를 잡는 것도 모자라 살모사나 능구렁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서 들고 다녔다. 뱀목을 칡 끈으로 묶어 나뭇가지에 매달아 들고 다니면서 여자애들 앞에 별안간 내밀어 놀리곤 했다. 뱀은 모두 수혁이 할아버지가 사서 마당 한 귀퉁이에 약탕 항아리를 걸어놓고 고아 먹곤 했는데 그 특유의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했다. 사족 같은 이야기지만, 뱀 많이 드셔서 오래 살 것 같았던 수혁이 할아버지도 칠순 잔치 치른 해에 염병으로 돌아가셨다.

  이 모든 자연 파괴 행위는 두 살 위의 보석이 주동이 되어 몰려다니면서 한 거였다. 요즘 같으면 벌금을 물어도 엄청나게 물었을 것이다.


  용팔이와 칠뜨기는 과수원 농장을 하는데 까치의 등쌀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며 불만이 많았다. 5분마다 총소리가 나는 가짜 총도 설치하고, 새매 소리 나는 스피커도 설치하고, 그물망도 설치해 보았지만, 영악한 까치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참다못해서 공기총을 하나씩 구입했다. 평소에는 파출소에 보관해 놓았다가, 겨울에 금렵이 해제되면 찾아다가 까치, 메추리, 산까치 등을 잡았다. 가을에는 까치를 쫓아내기 위해 특별 허가를 받아 사냥하기도 했다. 

  까치 사냥은 심심풀이로 하거나 과수원 과일 흠집 내는 걸 막기 위해 했지만, 고기를 먹기 위한 건 아니었다. 참새는 맛이 있어서 어쩌다 사냥을 했지만, 작아서 별 관심을 두지는 않았고, 주로 메추리와 산까치를 사냥해서 구워 먹었다.



  <참새민국> 정부에서는 긴급으로 <범말 참새희생사건 대책본부>를 만들었다.


  <참새민국> 언론에서는 유사 이래 가장 큰 참사라고 대서특필(大書特筆) 하면서 사고 원인은 물론 피해 마릿수조차 파악이 안 된다고 했다. 

*대서특필(大書特筆) 특별히 두드러지게 보이도록 글자를 크게 쓴다는 뜻으로, 신문 따위의 출판물에서 어떤 기사에 큰 비중을 두어 다룸을 이르는 말.

  피해 마릿수 발표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었다. 첫 번째 발표에는 120마리라 했다가 4시간 후에 131마리라고 정정 발표했는데 경찰 발표와 언론사 집계가 달랐다. 그다음 발표는 128마리로 정정되었다. 다른 곳에 놀러 간 참새에 대한 파악이 안 되었다고 했다.

  그 후에도 피해 마릿수는 계속 바뀌었고, 피해 마릿수 하나도 제대로 파악을 못 한다고 비판받았다. 대책 본부장이 사과하고 모든 발표는 대책 본부로 일원화하며 하루에 한 번만 발표한다고 했다.


  대책 본부장은 참새 총리가 맡았다. 정부의 각 부서에서도 차관 급이 참여했다. 의참이도 전문가로서 위원으로 들어갔는데 각 정당에서도 말만 잘하는 의원 참새들이 참여했다. 


  우선 시청 앞 광장인 벌판에 영안실을 마련했는데 제단은 전에 참새들이 즐겨 놀았던 찔레나무 덤불 앞에 마련했다. 참새들은 입에 물고 온 깃털을 영안실 제단에 고이 매달았다. 겨우 깃털 하나가 돌아왔으니 그를 바라보는 참새들의 심정이 어떠했겠는가? 

  용참이는 영안실 앞 광장 수많은 참새와 조문객 앞에서 ‘인간은 우리 참새를 이 깃털만큼이나 가볍게 여길지도 모르나 우리 참새도 조물주가 만든 소중한 살아있는 생명이다. 저 창공을 마음껏 날고 노래하며 이 땅에서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다.’라고 울분을 토하고 있었다.


  참사 소식을 듣고 각 동물나라에서 조문 사절을 파견해 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까치공화국>에서는 까치 총리와 외교부 장관 외치가 제일 먼저 조문했다. <까치공화국>과는 옛날부터 이웃 나라로 살면서 외교적으로 큰 마찰은 없었지만, 서로 상대 나라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은근한 자존심 경쟁이 있었다. 까치들은 새 중에서는 자기들이 제일 똑똑하다고 자부하면서 참새들은 덩치부터 자기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깔보고 있었다. 자기들의 맞수는 까마귀뿐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집도 높은 나무에 크게 지었다. 

  그러나 참새들 생각은 달랐다. 비록 덩치는 까치보다 작지만, 국민 수에 있어서 자기들이 몇 십 배는 많고 단합도 잘된다고 생각했다. 까치집은 너무 커서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허장성세(虛張聲勢)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허장성세(虛張聲勢) 실속은 없으면서 큰소리치거나 허세를 부림.



  조문 사절은 참새 총리와 외교부 장관 외참이가 맞았다.


  “귀국의 이번 참사에 대해 <까치공화국>을 대표하여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까치 총리가 양 날개를 활짝 펴서 껑충껑충 두 번 뛰며 대표로 조의를 표했다.

  공사다망(公私多忙) 하실 텐데, 이렇게 어려운 길을 해주신 데 대하여 나라와 유족을 대표하여 참으로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참새 총리가 날개를 폈다가 모아 접으며 한 발짝 앞으로 뛰며 답례했다.

*공사다망(公私多忙) : 공적ㆍ사적인 일 따위로 매우 바쁨.


   <참새민국>에서는 ‘참새’의 ‘참’ 자에 자부심이 있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자부심을 표현하기 위해 ‘참으로’, ‘참말로’, ‘참’,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 게 전통이다. <이 소설 참새의 말 중 참으로’, ‘참말로’, ‘을 굵은 글씨로 표기한 것은 이러한 표현이며, 제외하고 읽어도 전혀 문제없다.>


  “희생되신 참새 수는 얼마나 되는지요? 전해들은 바로는 백여 수가 훨씬 넘는다고 들었습니다만…….”

  “애통하게도 130수의 참으로 선량한 국민이 졸지에 변을 당했습니다.”

  “사건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은 밝혀졌습니까?”

  “아직 참말로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다 밝혀지진 않았습니다만, 벼 낟알에 독약을 묻혀놓아 유혹해서 먹게 하고, 정신 잃은 걸 포획해간 거로 밝혀졌습니다만…….”

*자초지종(自初至終) 처음부터 끝까지의 과정.

*명명백백(明明白白) : 의심할 여지가 없이 아주 뚜렷함.

  “그렇다면 혹시 그 범행을 주도한 범인이 누구인지는 알고 계십니까?”

  “농부 홍보석이란 자가 그런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일을 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과정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서…….”

*극악무도(極惡無道) 더할 나위 없이 악하고 도리에 완전히 어긋나 있음.

  “그 사건을 우리 까치 중에 한 시민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만, 원하신다면 상세한 정보를 넘겨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참말로 이보다 원통한 일이 또 있겠습니까? 어찌해야 이 원수를 다 갚을 수 있을지…….” 

  “저희도 농부들의 방약무인(傍若無人)한 행동으로 핍박받는 처지라 그 일에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제든 도울 일이 있으면 힘껏 돕겠습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 :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김을 이르는 말. 

  “그리만 해주신다면 참으로 백골난망(白骨難忘)이겠습니다. 지난번엔 귀댁의 영애가 놈들의 공기총에 화를 당하셨는데 인간들의 무참한 살상 놀음을 어찌해야 멈출 수 있을 것인지 걱정입니다.”

*백골난망(白骨難忘) : 죽어서 백골이 되어도 잊을 수 없다는 뜻으로, 남에게 큰 은덕을 입었을 때 고마움의 뜻으로 이르는 말.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고 밤엔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까치 이외에도 텃새로는 박새, 뱁새, 어치, 까마귀, 꿩, 메추리 등이 조문 사절단을 보내왔다. 계절이 한겨울인지라 겨울 철새 중에 청둥오리, 기러기, 고니 등이 찾아왔다. 제비나 꾀꼬리, 뜸부기 등은 멀리 있어 참석하지 못함을 양해 바란다며 애도를 표한다는 전문만 보내왔다.    가축 중에는 마침 닭장에서 벗어나 있던 <계룡민국>의 외교부 장관 외닭이가 조문했고, <황금돈국>의 돼지와 <와우공화국>의 소는 매인 몸이라 국경을 벗어날 수 없어서, 견공국의 황구가 오는데 조의를 전해 왔다. 물론 길양이 야옹이들도 조문했다.

  <참새민국>국민은 몸이 아파 거동이 불편한 참새를 제외하고는 모두 조문했는데 그 수가 많아 인산인해(人山人海), 아니 조산조해(鳥山鳥海)를 이루어 줄을 한참 서서 기다려야 했다.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이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루었다는 뜻으로, 사람이 수없이 많이 모인 상태를 이르는 말.

  보석이와 범말 사람들은 벌판에 웬 새떼가 그리 많으냐며 놀라워했다. 보석은 그 일이 자기가 저지른 일 때문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인간들은 이렇게 동물의 살상에 대해서 일말의 죄의식도 없다는 점이 더 큰 문제로 생각된다.

  의참이는 수거해온 벼 낟알을 <참새민국> 국립과학연구소에 보내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대책 본부에서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원인부터 조사하기로 했다.


  먼저 이번에 무리를 통솔하던 대참이가 잘못했다는 책임론이 나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참이도 이번 대참사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참새민국> 정부에서는 ‘우리 참새들이 질서를 지키지 않고 준법정신(遵法精神)도 없다’라고 질타했다.

  <경찰청장> 경참이는, 우리 참새는 까마귀나 기러기들보다 질서가 너무 없고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동안 치안 당국에서 법질서 준수를 위해 몇 차례 강력한 단속을 펼쳤으나 야당에서는 강하게 비판했었다. 

  <자유참새당>에서는 정부가 헌법에 보장된 활동의 자유를 너무 속박하면 안 된다고 강력히 반대했었다. 

  언론에서도 정부가 쓸데없이 개별 행동에 대한 규제를 심하게 한다고 비판했었다. 그런 언론들이 이제는 정부가 질서 유지를 위한 관리 하나도 제대로 못 하는가? 라고 하며 무능하다고 비판했다. 

  <국민참새당>은 이번 참사의 모든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며 참새 대통은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특히 대참이는 지난번 ‘쥐약 참사 사건’에도 책임이 있는데 어떻게 대장 자리에 임명이 되었는지 문제가 있다고도 말했다. 대참이는 현재 참새 대통과 같은 고향이라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것 아니냐고 따졌다. 또한 이번 참사를 막지 못했다며 치안 책임자인 경참이의 경질을 요구했다.



  ‘쥐약 참사 사건’이란 아주 오래전 60년대에 쥐약 놓은 걸 먹고 엄청난 수의 참새가 죽은 사건이다. 


  당시는 인간의 식량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곡식을 축내고 전염병을 퍼트린다고 하여 박정희 정부 주도하에 대대적인 쥐잡기 운동을 전개했다. 

  정부에서 쥐약과 쥐덫을 집마다 지급하고 쥐 잡은 실적을 집계했다. 쥐약에 보리쌀이나 쌀을 개어서 쥐가 다닐만한 곳에 늘어놓았는데 일망타진(一網打盡)하는 성과가 있어서 쥐를 씨가 마를 정도로 죽일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잡은 쥐의 꼬리를 잘라오게 해서 실적을 집계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그 쥐약을 먹고 닭도 죽고, 죽은 쥐를 먹고 여우나 오소리, 너구리 등 다른 동물들도 큰 피해를 봤다. 여우가 이 땅에서 멸종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참새들도 쥐약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쥐약 놓은 보리쌀이나 쌀을 먹고 범말에서만도 수백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 

*일망타진(一網打盡) : 한 번 그물을 쳐서 고기를 다 잡는다는 뜻으로, 어떤 무리를 한꺼번에 모조리 다 잡음을 이르는 말. 

  대참이는 당시 젊었을 때인데 무리를 이끄는 책임자의 수행원으로 있었다. 재판을 받아 책임자는 처벌받았으나 대참이는 혐의 없음으로 무죄 판정을 받았다. 공참이의 할아버지, 외참이의 외삼촌 등 한 집안에서 한두 마리는 참사를 당했던 영원히 잊지 못할 가슴 아픈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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