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 보석 Mar 22. 2021

3.2 시시비비

제3장 : 혼돈의 시대



3.1 시시비비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참새 희생 사건의 원인 규명과 정부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국민 참새당> 대변인은 성명에서, 130여 마리의 참새가 안타깝게 죽어갈 때 정부는 무얼 하고 있었는가? 경참이가 15분만 일찍 도착했어도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안위를 지키지 못하는 정부는 그 존재 가치가 없다고 소리 높여 비판했다.

  집권당인 <새 하늘 참새당>은 일상적인 먹이 활동을 하다가 부지불식(不知不識) 간(間)에 발생한 사건인데 그게 어찌 정부의 책임이냐고 반박했다. 

*부지불식(不知不識) 생각하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


  그러던 어느 날, 의참이 이름이 신문에 나오고 방송을 탔다. 평소 의참이가 의학계에서 잘 나가는 것을 시기하던 자들이 의참이의 행적을 문제 삼고 나온 것이다. 다른 참새가 모두 죽어갈 때 의참이 일행은 어떻게 살아남았느냐는 것이었다. 더구나 의사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런 자가 대책본부의 위원으로 들어가는 것부터가 문제라며 검찰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칭 전문가라는 말만 잘하는 참새들이 방송에 나와서 의참이 일행에 대한 의혹을 계속 제기했다. 의참이는 어이가 없어 사실대로 해명했지만, 의혹 해소는커녕 오히려 비난만 커질 뿐이었다. 기자들이 집에까지 몰려들었다.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이번엔 항간에 음모론까지 퍼졌다. 의참이가 볍씨에 독약이 묻어 있는 걸 알면서도 대참이와 그쪽 참새들을 제거하기 위해 그곳으로 유인했다는 주장이었다. 의참이 가족과 일행은 밖에 나와 활동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의참이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책본부 위원직에서 사퇴하고 자진해서 검찰 조사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소환된 의참이는 그곳에 가게 된 동기 및 행적에 대하여 초 단위로 조사를 받았다. 일행들도 분리되어 별도로 조사를 받았는데 진술의 차이가 있는지를 보기 위함이었다. 문제는 아무런 물증이 없고 목격자도 없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현재까지는 증거를 찾지 못했고 진술의 일관성이 있어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며 석방했다. 그러자 시민단체와 야당에서는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다. 더구나 의참이와 검사가 같은 학교 동창이라 봐준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의참이는 의대와 법대는 교류도 없고 나이 차이도 열 살이나 나서 일면식도 없다고 했으나 그걸 어찌 믿느냐고 비웃음만 샀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검찰이 권력의 눈치만 보고 있다고 적폐라고 주장했다. 일부 방송 패널이 <참새민국>은 법치 국가인데 증거가 없으면 ‘무죄 추정의 원칙’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이렇게 무참하게 인격을 짓밟아도 되느냐고 말했으나 오히려 의참이와 아는 사이 아니냐고 공격만 당했다.


  야당과 시민단체(市民團體)는 시청 앞 광장인 벌판에서 촛불집회를 연다고 했다. 마침 먹을 것이 부족해서 불만이 많았던 국민 참새들은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기도 전에 화가 나서 들고일어났다. 모두가 정부가 무능해서 생긴 일이라 주장했다. 의참이를 구속하라고 다그쳤다.

*시시비비(是是非非)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툼.

  이에 여당인 <새하늘 참새당> 대변인은 야당은 선전선동(宣傳煽動) 하지 말라고 일갈하며, 국민은 유언비어(流言蜚語)에 속지 말고 부화뇌동(附和雷同) 하지 말라고 했다. 이 말은 ‘불난 집에 부채질’ 도가 아니라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었다. 여론이 급격하게 나빠졌고 참새 대통의 지지율이 50%대에서 20%대로 급감했다.

*선전선동(宣傳煽動) 정치 참여와 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투쟁에 동원되는 언론 행위의 하나. 선전 영화가 이와 같은 특징을 지닌다.

*유언비어(流言蜚語)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

*부화뇌동(附和雷同) 줏대 없이 남의 의견에 따라 움직임.



  사태가 나빠지자 참새 대통이 대국민 사과 담화를 발표했다.


  친애하는 <참새민국> 국민 여러분! 

  이번 대참사에 대하여 유가족과 국민께 참으로 심심한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부는 철저한 원인 규명과 대책 수립은 물론 책임자 처벌을 참말로 약속드립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정부를 믿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분하게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여론은 더욱 나빠질 뿐이었다. 정부에서는 과격해지는 시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대책 본부장인 참새 총리는, 매와 수리가 우리를 호시탐탐(虎視眈眈) 노리고 있는 참으로 엄중한 시기에 그렇게 많은 참새가 광장에 모이면 참말로 국가의 안위가 문제 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집회를 불허한다고 했다. 

  언론과 야당은, <참새민국>에는 헌법에 ‘집회의 자유’가 있는데 평화로운 집회를 불허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학생들과 젊은 참새들은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며 하얀 리본을 가슴에 달고 항의 집회를 열었다. 시청 앞에 분향소도 설치했다. 

  정부에서는, 허가받지 않은 집회는 불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촛불 집회에 참여하는 참새 국민의 수는 오히려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참새 TV에서는 연일 오락 프로그램을 멈추고 자칭 전문가들의 토론회를 계속 내보냈다.

  인간들이 점점 교묘해지고 자연보호(自然保護)를 하지 않아서 문제라는 환경단체장의 의견도 나왔다.

  인간이 동물 먹는 것에 화학물질을 섞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는 변호사의 의견도 있었다. 그는 인간들을 <국제 동물 사법재판소>에 제소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참새가 인간의 곡식을 너무 많이 훼손하니 인간들도 화가 나서 저러는 게 아니겠는가. 인간의 관점에서 역지사지(易地思之)해서 보자고 하며 일부에서 자성론도 나왔으나 관심을 끌거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하여 봄.

  점잖은 대학교수가 나와서, 우리가 허수아비 머리에 올라앉아서 놀리며 노래하는 것은 농부를 모욕하는 짓이므로 삼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 그것은 ‘참새 법’에서도 금하는 사항이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일부 양식 있는 참새는 우리 고기가 맛있다는 것은 국가기밀인데, 일부 몰지각한 참새들이 소에게 ‘네 고기 열 근과 내 고기 한 첨을 안 바꾼다’라고 놀린 것은 큰 문제이니 이를 철저히 조사해서 발본색원((拔本塞源)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 때문에 국가기밀이 새 나가서 인간들이 맛있는 우리 고기를 노리고 공격하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발본색원((拔本塞源) : 좋지 않은 일의 근본 원인이 되는 요소를 완전히 없애 버려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생길 수 없도록 함. 

   인간들이 ‘새마을 운동’이라는 반환경적인 운동을 전개하면서, 초가가 없어지고 울타리가 없어져서, 우리가 생활 터전을 잃은 것은 물론 숨을 곳이 없어진 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주장도 나왔다.

   우리 참새는 질서도 없고 생각이 짧아서 통솔이 안 되고 행동만 앞선다고 하면서 근본 원인은 교육에 있다고 주장하는 참새도 있었다. 

  토론회가 여러 방송에서 비슷하게 진행되었으나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나오는 의견을 모아서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고, 실질적으로 정책에 반영하지도 못했다. 일부 정치 편향적인 인사는 오로지 정부의 대응이 잘못되었다고 비판만 하면서, 굶주림 때문에 독극물을 먹고 아깝게 죽은 참새만 불쌍하다며, 대책을 모색하는 자리임에도 토론 본질에서 벗어난 주장만 늘어놓았다. 진행자로부터 논점을 흐리면 안 된다고 몇 차례 주의를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른 참석자로부터도 국민의 감성을 자극해서 인기몰이만 하고 있다고 비판받았지만, 오히려 그의 지지도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참새민국>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렸는데 주로 정부의 무능과 인간의 오만함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인간들은 도통 다른 동물은 배려할 줄 모르는 야만성을 가지고 있다고 <참새 행복교회> 목사가 나와서 인간을 성토했다.

  의참이는 국회에 불려 나와 혹독한 질문에 시달렸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다른 참새가 모두 죽어 갈 때 어찌 살아남았느냐는 의혹 제기였다. 아무리 사실대로 말해도 믿으려 하지 않았다. 일부 의원들은 참새 역사 이래 가장 파렴치한 참새라고까지 매도했다. 한마디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아니란 물증이나 목격자가 없으니 반론을 펼칠 수도 없었다.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고 답변했으나 적폐 검사가 봐주기 수사를 한 걸 내세우느냐고 몰아붙였다. 일부 여당 의원이 인신공격성 막말은 자제하라고 옹호했지만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했다.

  이때 <까치 공화국>에서 한 시민 까치가 자진해서 증인으로 등장했다. 외참 외무장관이 지난번 외치 외무장관이 문상 왔을 때 목격자가 있다고 한 말을 기억하고 찾아가서 부탁하니 증언하러 온 것이었다. 의원들은 까치로부터 사건을 목격한 자초지종을 듣고 의참이의 주장이 사실이고 문제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의원은 그것도 의참이와 까치가 짜고 증인을 세운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까치는 의참이와 자기는 일면식도 없고 거짓으로 증언할 이유도 없다고 말하며 자기 여동생도 인간의 공기총에 당했다고 울먹이며 말해서 장내가 숙연해졌다. 그는 이런 일일수록 감정에 휩쓸리지 말고 정확한 상황 파악을 하고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새들의 공동의 적은 인간이라며 내부에 총질하지 말고 지혜를 모아 인간을 공격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돌아갔다. 잠시지만 그가 인기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FTA 때문에 논농사가 줄어서 참새 먹을 것이 30% 이상 줄었다고 진단하는 <참새 경제연대> 소속 경제 전문가의 분석도 있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농부들에게만 보조금을 지원할 것이 아니라 참새에게도 보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서 참새 국회의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인간들이 추수하는 기계를 자동화하여 논에 떨어지는 나락이 없어져서 살기 어려워졌다고 하면서 기계화나 자동화가 인간에겐 편리한 면도 있지만, 우리 참새들이 살아가기에는 부작용도 많이 발생한다고 불평하는 <조류 환경 연합> 소속 참새 의견도 있었다. 그러면서 인간들의 추수용 농기구의 자동화 율을 30% 이내로 줄이도록 협상해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폈지만 역시 큰 박수를 받았다.

  인간들이 농사지을 때 농약을 많이 써서 메뚜기가 멸종되어 먹을 것이 부족해지고, 농약 묻은 곡식을 먹고 죽는 참새만도 일 년에 수백 마리에 이른다고 <참새민국> 환경부 장관이 발표했다. 그러자 야당과 환경단체에서는 상황이 이렇게 나빠지는 동안 정부는 도대체 무얼 했는가?’라고 비판했다.

  이렇게 정부가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어려운 상황에 몰리자 여당 정치인은 우리 참새는 인간과 평화적으로 협상하고 싶지만, 저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데다, 새 중에서도 제일 힘이 약한 우리가 어떻게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을 이길 수 있는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펴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며 지극히 당리당략(黨利黨略)적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야당은 안 된다는 말만 하지 말고 하나라도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자세로 나서서 제대로 해본 적이 있는가?라고 하며 따졌다.

*사면초가(四面楚歌) :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롭고 곤란한 지경에 빠진 형편을 이르는 말.

*어불성설(語不成說)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함.

*당리당략(黨利黨略) 당의 이익과 당파의 계략.

*사생결단(死生決斷) 죽고 사는 것을 돌보지 않고 끝장을 내려고 함.


  참새 정부에서 통계를 발표했는데 서식 환경이 나빠지니 참새들의 결혼율과 출산율이 떨어져서 참새 개체 수가 80년대 초보다 1/4로 감소했다고 했다. 60년대 쥐약 참사 등 이유로 반으로 감소하고, 거기에서 다시 이렇게 많은 수가 감소했으니 무언가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해졌다. 정부에서는 대책 수립에 참새 총리까지 나서서 노심초사(勞心焦思)했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급한 대로 참새 결혼 장려금으로 벼 한 컵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노심초사(勞心焦思) 몹시 마음을 쓰며 애를 태움.



  결혼을 꼭 해야 하는가?


  젊은 참새를 대상으로 <리얼 마타>에서 ‘결혼을 꼭 해야 하는가?’라고 여론조사를 해보니 그렇다는 답이 50%를 넘지 못했다. <편집자 주: 마타는 마타도어에서 따온 말임.>

  <민주 참새당>에서는 결혼 장려금으로 벼 한 컵은 너무 적다고 하며 아무리 적어도 벼 한 되는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참새들이 들고일어나서 그러려면 엄청난 세금을 내야 하는데 우린 무얼 먹고 사느냐고 항의했다. 그러나, 적어도 먹는 문제만큼은 정부가 해결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민주 참새당>의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러자 재경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와서 그러면 국가 재정은 5년도 못 가서 거덜 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모 대학교수가 나와서 황새가 멸종한 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고 하면서 황새의 서식환경이 나빠져서 먹을 것이 부족해지니 황새가 결혼은 하지 않고 아예 시베리아에 이민 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먹을 것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정부가 해결해 줘야 한다고 <민주 참새당>의 주장에 힘을 실어 줬다. 

  그러자 <조류 환경연합> 소속 젊은 참새가 나와서 황새가 멸종된 것은 시베리아로 이민 간 것이 아니라, 농약에 오염된 물고기를 잡아먹고 죽어서 멸종된 것이라며, 곡학아세(曲學阿世)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타산지석(他山之石) 다른 산의 나쁜 돌이라도 자신의 산의 옥돌을 가는 데에 쓸 수 있다는 뜻으로, 본이 되지 않은 남의 말이나 행동도 자신의 지식과 인격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곡학아세(曲學阿世) 바른 길에서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함.


  젊은 참새들로부터 민주 참새당의 지지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는 장려금을 올리기도, 그대로 수수방관(袖手傍觀)하고 있기도, 난처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재경 참새가 팀장을 맡아서 <출산 증대 대책 TF>를 만들어 활동했으나 재정은 부족한데 마냥 올려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증세를 하면 오히려 국민 반감만 살 것이 뻔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유곡(進退維谷)의 처지가 되었다.

*진퇴양난(進退兩難)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처지.

*진퇴유곡(進退維谷) :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꼼짝할 수 없는 궁지.

 



  일주일 만에 국과수에서 성분 분석 결과가 나왔다. 


  참새의 주식인 벼 낟알에 고함량의 에틸알코올이 들어있었다고 발표했다. 낟알 다섯 개만 먹어도 참새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세 개만 먹어도 정신을 잃을 수준인데, 치명적인데 문제는 알코올이 무색무취(無色無臭)하여 발견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당장은 해독제가 없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알코올 경계경보(警戒警報)를 발령했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러시아산 보드카가 주성분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발표하면서 소주나 중국산 고량주는 아닌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양주인 위스키나 코냑일 가능성에 대해 기자들이 질문하자 향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건 절대 아니라고 답했다.


  언론에서는 이제까지 인간이 이렇게까지 비열한 방법을 쓴 적은 없었다고 했다. 그 무섭다는 공기총으로 공격해 봐야 희생자는 3마리 내외였다고 도 했다. 또한, 떡갈나무 잎과 땅콩 껍데기까지 써서 참새를 속이는 것은 부도덕하다며 분개했다. 과격 단체에서는 이참에 인간 농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자고 보복론을 들고 나왔다. 

  거리에는 ‘인간 타도!’와 ‘인간들은 각성하라, 독극물이 웬 말이냐!’라는 플래카드도 내 걸렸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인간들은 참새들의 이런 분노와 움직임에 대하여 전혀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는 거였다.

  하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 것이 참새가 인간을 이길 수 없고 그들이 화나면 아군의 피해만 더 커질 것이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았다. 여기저기서 백가쟁명(百家爭鳴)식으로 문제점만 떠들어 대었지 실효성 있는 대책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80세를 넘긴 노인 참새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백가쟁명(百家爭鳴) 많은 학자나 문화인 등이 자기의 학설이나 주장을 자유롭게 발표하여, 논쟁하고 토론하는 일.


  “어휴 새 대가리에 든 것도 없이 입만 살아서……, 말로는 뭔 못할까? 차라리 달을 따주겠다고 하지!” 


  정부에서 탁상공론(卓上空論) 끝에 내놓은 대책이란 것이 인간을 <조류 국제사법 재판소>에 제소한다는 것과 보석이네 울타리에서 항의 집회를 한다는 게 다였다. 

*탁상공론(卓上空論) : 현실성이 없는 허황한 이론이나 논의.


  사건이 나고부터 참새들은 먹이 활동을 하는 데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 언제 인간이 독극물을 넣은 먹이를 뿌려 놓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상궁지조(傷弓之鳥) 즉, ‘활에 상처 입은 새는 굽은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라는 말처럼 아무 문제없는 곡식 낟알도 의심이 되어 마음 놓고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먹는 게 부실하여 점점 야위어 가는 참새가 많아졌다.

*상궁지조(傷弓之鳥) 한 번 화살에 맞은 새는 구부러진 나무만 보아도 놀란다는 뜻으로, 한 번 혼이 난 일로 늘 의심과 두려운 마음을 품는 것을 이르는 말.



  여론이 나빠지자 참새 대통이 다시 담화를 발표했다. 


  친애하는 <참새민국> 국민 여러분!

  나는 참새 대통으로서 다시 한번 이런 참사가 벌어지면 

  참말로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참말로 경고하노니 

  앞으로 다시 한번 이런 동물 친화적이지 않은 공격을 해 올 경우, 

  우리는 참으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받은 만큼 돌려줄 것이다. 

  향후 벌어질 모든 문제의 책임은 

  인간이 져야 할 것을 참말로 분명히 한다. 


  모두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거 너무 구태의연(舊態依然) 하지 않아?” 공참이가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러게, 대통이 과대망상(誇大妄想) 증에 걸린 것도 아닐 텐데, 저렇게 미련하고 융통성이 없게 각주구검(刻舟求劍)하고 있으니……, 인간들이 이따위 성명서에 눈이라도 깜박하겠어? 도대체 이런 성명서가 참사를 막는데 무슨 도움이 되고, 대통이 저러니 나라가 어찌 되겠나!”라고 하며 용참이가 한탄했다.

*구태의연(舊態依然) 조금도 변하거나 발전한 데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임.

*과대망상(誇大妄想) 사실보다 과장하여 터무니없는 헛된 생각을 하는 증상.

*각주구검(刻舟求劍) 융통성 없이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 


  야당에서는 그렇다면 대통이 말하는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이 무엇인지 정부에 물었고, 정부에서는 그것은 군사적인 기밀 사항이라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야당은 그게 어찌 군사적 비밀인가? 결국,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것 아니냐며 따졌다. 이렇게 공방만 오갈 뿐 아무런 대책을 내어놓지 못하는 정부와 참새 대통의 무능함에 국민 참새들은 분노했고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참새 대통이 담화를 발표한 후 별 공신력도 없는 <리얼 마타> 여론조사 기관에서 전 국민을 상대로 지지도 조사를 했다. 2주 전보다 12%가 떨어져서 한 자릿수인 8%로 나타났다. 그동안 <리얼 마타>는 워낙 정치 편향적인 조사를 많이 해서 공신력이 떨어지다 보니, 정부에서는 그곳의 여론조사는 밑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전에 지지도가 좋을 때는 그곳 조사 결과를 잘도 써먹더니 이제는 엉터리라고 하느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결국은 일부 시민단체에서 우유부단(優柔不斷)하고 무능한 참새 대통은 당장 물러나라!’라고 하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우유부단(優柔不斷) 어물어물 망설이기만 하고 결단성이 없음.

작가의 이전글 3.1 청천벽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