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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보석 Mar 22. 2021

3.3 대책 수립

제3장 : 혼돈의 시대



3.3 대책 수립



정부에서는 <범말 독극물 희생 130 참새 장례위원회>를 구성하고 장례 준비에 들어갔다. 


  참새 총리가 장례위원장이 되고 국무 위원, 국회의원, 유족 대표들이 위원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유족들은 유해도 찾지 못했는데 이 무슨 언어도단(言語道斷)이냐며 장례를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어차피 희생자는 돌아올 수 없는 상황인데 유해가 없어도 장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며, 하루빨리 장례를 치러서 혼란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유족 측에서는 참사 원인 규명조차 되지 않았는데, 정부가 서두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반발했다. 

*언어도단(言語道斷) : 말할 길이 끊어졌다는 뜻으로, 어이가 없어서 말하려 해도 말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 말이 안 됨.


  <범말 독극물 참사 대책위원회>라는 시민단체가 나서서 장례를 반대하고 참사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대책 수립, 보상 등을 요구했다. 여론 조사에서는 장례 찬성 48%, 반대 52%로 오차 범위 내로 나왔다. 유족 측이 반대하니 장례는 미룰 수밖에 없었다. 우선은 대책 본부에서 나오는 원인과 사건 경위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대책 본부에서는 원인 규명 및 대책 수립에 박차를 가했다.


  대책 본부에서는 전에도 이런 유사 피해 사례가 있었는지 조사에 들어가는 한편, ‘에틸알코올 해독 방법’에 대해 전 국민 참새를 대상으로 ‘아이디어 공모’에 들어갔다. 일등 참새에게는 벼 한 말을 상품으로 내 걸었다. 벼 한 말이면 네 식구 참새 가족이 삼 년은 먹고살 수 있는 양이라고 했다. 

  상품 규모가 크니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아이디어가 들어왔다. 전에 인간들이 집에서 막걸리를 담가 먹고 남은 술지게미를 참새들이 몰래 먹은 일이 있는데 환각이 와서 고생한 사례가 있다 했다. 그러나 막걸리는 성분도 다르고 도수가 낮아서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이 얘기했다. 

  인간이 소주를 잔에 따라 논 것을 물인 줄로 착각하고 먹어서 급사한 사례가 몇 건 있었지만, 극히 드문 일이라고 했다. 

  해독제로는 술지게미 먹고 환각 빠졌을 때 헛개나무 열매를 따 먹고 나았다는 사례가 접수되었다. 의사들은 금시초문(今始初聞)이라며 헛개나무 열매의 효능은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잘못 먹으면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시중에서는 헛개나무 열매 사재기가 벌어지고 가격이 급등했다.

*금시초문(今始初聞) 바로 지금 처음으로 들음.


  의참이는 연구팀을 구성하여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도 헛개나무 열매 성분 분석과 해독 능력에 관한 연구에 들어갔다. 

*반신반의(半信半疑) 얼마쯤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함.


  눈치 빠른 까치가 이 소문을 염탐해서 들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는 속담이 그냥 생긴 게 아니었다. <까치 공화국>에는 조류 노벨 의학상을 받은 의치와 화학상을 받은 화치가 있었다. 그들도 재빠르게 연구에 들어갔다. 결과는 머리가 좋은 까치가 <여명 까치>라는 알코올 해독제를 먼저 만들어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의참이 팀도 밤잠을 자지 않고 연구했다. 헛개나무 추출물과 인간들이 해장국에 넣는 콩나물, 다슬기에 관해 관심을 갖고 시험을 계속했다. <참 컨디션>이란 해독제를 개발하여 좀 늦었지만, 곧바로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쥐들도 소문을 듣고 연구에 들어갔다. 쥐는 인간이 놓은 쥐약이나 독극물에 워낙 많이 당했기에 독극물 해독에 관한 연구 실적은 어느 동물보다도 많았다. 그들은 또 까치와 참새가 하는 연구도 집요하게 염탐했다. 양상군자(梁上君子)라는 말이 있듯이 남의 것을 훔치는 재능에서는 당할 동물이 없었다. 까치의 연구 실적과 참새의 연구 실적을 염탐하여 참조하고 자기들의 노하우를 더해서 제품을 개발했다. 제품 이름은 <정신 말짱>이었다.

*양상군자(梁上君子) : 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으로, 도둑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


  의참이 팀이 <동물 특허사무소>에 특허출원(特許出願)을 했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고 까치 팀에서 한나절 먼저 신청한 뒤였다. 의참이 팀은 눈물을 머금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세상일이란 그런 것이다. 의참이는 남보다 앞선다는 것과 보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꼈다. 

  양상군자(梁上君子) 팀도 특허출원을 했지만, 하루가 늦어서 무산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도둑질도 밥 먹듯이 하는데 그깟 특허등록이 안 되었다고 문제 될 건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실 세 가지 제품 모두 헛개나무 열매 추출물이 주성분이었는데 차이라면 까치 팀은 미나리에서 특수 성분을 뽑아 가미한 것이었고, 의참이 팀은 콩나물에서 특수 성분을 추출하여 가미한 것이었으며. 양상군자(梁上君子) 팀은 헛개나무 추출물에 꿀과 다슬기에서 추출한 특수 성분을 가미한 것이었다.

  의참이 팀이 <여명 까치>와 <정신 말짱>을 긴급 입수하여 성분분석에 들어갔다. 헛개나무와 미나리, 꿀, 다슬기 성분은 밝혀냈는데 도저히 알 수 없는 성분이 양쪽 모두 아주 미량 들어 있었다. 

  시중에서는 <여명 까치>가 불티나듯 팔렸다. 일단 효과가 좋았다. 치사량에 가까운 알코올 벼 낟알 다섯 알에 중독된 것도 이것 한 모금이면 해결되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새들은 만약에 대비하기 위해서 <여명 까치>를 상비약처럼 구비했다. <정신 말짱>도 불티나듯 팔려나갔다. 양상군자(梁上君子) 팀은 특허가 없었으므로 까치 팀보다 30%나 싸게 팔았다. 일단은 싸니까 잘 팔렸다. 까치 팀에서 특허법 위반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자 양상군자(梁上君子)들은 자기들은 알코올 해독제로 판매하는 게 아니고 독극물 해독제로 판매하는 것이니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까치들은 <동물 특허 사무소>에 제소했다. 그러나 그 싸움은 지루한 공방전에 양상군자(梁上君子) 측의 시간 끌기 전략으로 전혀 진척이 없었다. 기러기가 그걸 보고 꼭 북쪽에 사는 인간들이 하는 짓과 너무도 흡사하다며 웃었다.


  <참새민국>에서는 한탄의 소리가 들렸다. 까치에게 선수를 빼앗겨 막대한 국부가 <까치 공화국>으로 넘어간다고 난리였다. 양상군자(梁上君子)처럼 <참 컨디션>도 판매하라고 다그치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의참이 팀은 그렇게 많은 돈을 쓰고도 그동안 뭘 하였느냐고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지 않아도 지난번 알코올 참사 때 의참이 팀만 살아 나왔다고 비난을 받던 차에 이 문제가 부각되니 더 큰 공격을 받았다.

  교육부에서는 연구 비리가 없었는지 즉시 감사에 들어갔다. 의참이가 이전에 등록한 논문에 철자가 몇 개 틀리고 까치 논문을 인용했다고 하며 이는 교육계의 큰 적폐라고 연구 자격을 박탈해 버렸다. 

  다른 전문가들이 반발했다. 연구라는 것이 실패하는 일도 있는 것인데 결과만 가지고 따지고, 작은 트집을 잡아서 매장하면 과연 누가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를 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사실 특허등록만 반나절 늦었을 뿐 실패한 것도 아닌데 문제 삼는 것은 가혹하다고 했다. <참새민국>에서 ‘동물 노벨 의학상’ 후보로 꾸준히 오르내리며 가장 가까이 가 있는 인재를 이렇게 매장시키면 안 된다고 했지만 이미 분위기를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방송에서는 연일 의참이의 논문 철자 오기에 대하여 폭로하고 다른 교수들이 나와서 의참이를 조롱하고 비판했다. 의참이는 하루아침에 동네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의참이를 지지하는 일부 교수가 교육부 장관 논문도 철자 틀린 것은 물론 표절도 다수 발견되었는데 여론 몰이 식으로 적폐로 몰아가면 안 된다고 주장했으나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의참이는 의대 교수직에서도 물러나고 정부 연구과제 참여는 영원히 박탈당했다. 의참이는 억울했지만 어디에 하소연할 곳조차 없었다.


  한편에서는 교육 전문가가 나와서 <참새민국>은 교육제도부터 잘못되었다고 질타했다. 교육이 잘못되니, <까치 공화국>에서는 열 개도 더 받은 노벨상을 하나도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고 자성했다. 현재와 같은 주입식 교육과 사지선다(四枝選多) 형 시험 방법으로는 창의력 있는 참새로 키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주관식 문제는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으므로 주관식 문제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반대편 의견이 나왔다.

*사지선다(四枝選多) 한 문제에 대하여 네 개의 항목 가운데 정답 또는 가장 적당한 항을 고르게 하는 방식. 또는 그런 문제.


  양상군자(梁上君子) 팀의 <정신 말짱>을 먹은 새들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듯했으나 두 병 이상 먹은 새들에게서 문제가 발생했다. 어지럽다 하며 졸고 있더니 마비가 오기도 하고, 자면서 돌연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제품의 반품이 들어오고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자기네 쥐들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무슨 헛소리냐고 말했다. 분명 다른 이유일 거라며 증거를 대라고 하는데 원인 규명은 쉽지 않고 ‘심증은 가나 증거가 없는’ 정황만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는 분명 <양상군자 국>을 음해하는 다른 나라들이 벌이는 음모가 있을 것이라며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폈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라고 했듯이 그렇다면 수출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계속 명확하지 않은 내용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차피 팔리지 않을 게 뻔하니 문제가 커지기 전에 선수를 치고 나온 거였다. 이렇게 되니 <정신 말짱>은 <양상군자 국> 내에서만 팔렸다. 새들은 그러지 않아도 새가슴인데 고소당할까 봐 더는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한편 대책 본부에서는 다람쥐처럼 겨울을 대비해 식량을 저장하자는 대책이 다시 지지받기 시작했다. 문제는 어디에 저장할 것인가가 또다시 이슈로 떠올랐다. 잘못 저장하면 양상군자(梁上君子)인 쥐 좋은 일만 되는데 대책이 있는지 물었다. 정부의 책임자는 대책을 찾는 중이라며 모호한 말로 돌려대었지만, 구체적 대안이 있는지 묻자 답변하지 못하고 기다려달라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그렇다면 검토하고 있는 유력한 장소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해도 투기가 우려된다며 안 된다고 했다. 마땅한 장소 선정도 못 한 것 아니냐고 따졌으나 묵묵부답(默默不答)이었다.

*묵묵부답(默默不答) : 잠자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음.


  정부에서는 민심 이반을 걱정하여 이번 참사를 당한 참새 가족에게 위로금으로 찰벼 두 되를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일부 재향군인회에서는 지난번 매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참새 아홉 마리는 찰벼 반 되밖에 주지 않았는데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라를 지키다 죽은 병사보다 일반 먹이 활동을 하다 죽은 국민을 더 크게 보상하는 건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며 따졌으나 소용이 없었다. 

*어불성설(語不成說) : 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함.


  일부 과격한 시민 단체에서는 인간을 직접 공격할 수 없다면 농장이라도 공격하자고 충동질을 해 대었다. 그러나 계절이 겨울이라 논밭에 공격할 농작물이 없어 흐지부지되었다. 

  이때 양계장에 가면 닭 모이가 많은데 그거라도 뺏어 먹자고 누군가 말했다. 용참이가 주동이 되어 수백 마리의 용기 있는 젊은 참새들이 양계장 공격에 나서 닭에게 아니,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는 성과를 거두었다. 용참이와 의용군은 국민에게서 인기가 급격하게 올라가고 절대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참새 정부와 국회에서는 탁상공론(卓上空論)만 할 뿐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했다.



  국민 참새들은 시청 앞 벌판에 모여 촛불을 들고 참새 대통 하야를 외쳤다. 


  촛불집회 참새들은 국회는 참새 대통을 탄핵하라고 다그쳤다. 질서가 없기로 유명한 참새였지만 이번 집회만큼은 달랐다. 질서 정연(秩序井然)했고 쓰레기 하나 참새 똥 한 무더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용참이는 무능력한 참새 대통은 더는 자리에 앉아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용참이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여론 조사에서 60%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왔다.


  분노한 일부 과격 단체의 젊은 참새들이 극단적인 방법을 쓰자고 용참이에게 아이디어를 내었다. 그 아이디어는, 요즘 철새들이 퍼트리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를 인간이 사육하는 양계장과 오리 농장에 퍼트리자는 거였다. 그렇게 하면 닭 수천 마리를 삽시간에 죽일 수 있으니 인간에게 엄청난 피해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일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쳐 원수를 갚겠다는 젊은 참새들도 나왔다. 일부 과격 단체에서는 그 일을 하다 목숨을 잃는다면 영웅으로 남을 거라며 은근히 부추긴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그러나 용참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첫째, AI가 발생한 곳에 가거나 그것을 퍼트리는 것은 국법으로 엄하게 금하고 있는 일이다. 그 어떤 일도 법을 어기면서 할 수는 없다. 

  둘째, 그 병을 닭에게 옮기려면 우리 참새 중에 누군가는 목숨을 버리면서 살신성인(殺身成仁) 해야 하는 일인데 그것 또한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살신성인(殺身成仁)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인(仁)을 이룸.

  셋째, 비록 인간이 사육하는 닭이라 하나 그 닭들도 우리와 같은 조류인데 무고한 닭들을 그렇게 죽게 할 수는 없다. 

  넷째, 아무리 목적이나 이루려는 일이 숭고해도 올바르지 않은 방법을 써서 이룬다면 대의명분(大義名分)에도 맞지 않고 그렇게 이룬 것은 사상누각(沙上樓閣)에 불과할 것이다.

*대의명분(大義名分) : 어떤 일을 꾀하는 데 내세우는 합당한 구실이나 이유.

*사상누각(沙上樓閣)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이라는 뜻으로,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여 오래 견디지 못할 일이나 물건을 이르는 말.

  다섯째, 참새와 인간 나아가서는 모든 동물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평화롭게 사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용참이는 ‘목적이 아무리 숭고해도 수단이 올바르지 않으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강조하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자 인간들은 각종 씨앗을 파종했는데 절치부심(切齒腐心)하던 용참이가 주도하는 의용군은 그곳을 공격 목표로 정했다. 의용군의 이름을 <용참 의용대>로 명명하고 작전에 들어갔다.

  아침 일찍 동이 트자 <용참 의용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공격은 간단했다. 막 싹이 터서 올라온 새싹을 입으로 물어뜯기만 하면 되었다. 새싹이라 연하여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기였다. 인간들은 참새가 새싹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던 일이기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간단히 공격을 마무리했다. <용참 의용대>는 채소를 파종한 밭 천여 평을 하루 동안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참새민국>에서는 용참이가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정부가 못한 일을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의용군이 악전고투(惡戰苦鬪) 끝에 해 내었다며 언론에서는 대서특필(大書特筆)했다. 사실 악전고투(惡戰苦鬪) 한 일은 아니었으나 언제나 언론은 그런 식이었다.

*신출귀몰(神出鬼沒) 귀신같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는 뜻으로, 그 움직임을 쉽게 알 수 없을 만큼 자유자재로 나타나고 사라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악전고투(惡戰苦鬪) : 매우 어려운 조건을 무릅쓰고 힘을 다하여 고생스럽게 싸움.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인간들도 난리가 났다. 


  농민들이 정부에 대책을 세워달라고 청원했다. 정부에서는 유해조수(有害鳥獸)인 참새 소탕 허가를 내주었다. 자격이 있는 엽사만 공기총으로 참새를 잡아도 좋다는 허가였다. 농민들은 환호했다. 그러나 환경단체에서 들고일어났다. 참새 번식기인 봄에 사냥을 허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면서, 그렇게 하면 5년 이내에 참새가 멸종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민들은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되었는데 그냥 손 놓고 있어야 하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피해에 대해 정부에 보상을 요구했다.

  인간들도 이 문제를 놓고 여론이 엇갈려 시끄러웠다. 인간 TV에서는 유해조수(有害鳥獸) 처리 어떻게 할 것인가?’ 놓고 연일 토론을 벌였으나 농민단체와 환경단체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알코올 참사 후 여러 달이 흘렀으나 말만 많았지 참새 정부에서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한 가지도 나오지 못했다. 우선 급한 대로 ‘공기총 경계경보’만 한 단계 격상했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에서 알코올 중독 사고가 계속 발생했고, 공기총에 맞아 죽거나 다치는 사건도 잦아졌다. 인간들은 공기총으로 참새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눈엣가시인 까치도 공격 목표가 되었고, 엉뚱한 불똥은 메추리에게까지 튀었다. 졸지에 화를 당한 까치와 메추리는 인간에게 불만이 있는 것은 물론, 참새에게도 불만이 많았다. 참새들이 공연히 농부들을 자극해서 애꿎은 자기들이 피해를 본다고 항의했다. 


  외치가 외참이를 방문해서 양국 외교부 장관 회의를 진행했다. 외치는 <참새민국>의 억울한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며 소탐대실(小貪大失) 하지 말고 채소밭 공격을 멈추어 달라고 요구했다. 외참이는 까치들이 본의 아니게 참화를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양해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면서 그 일은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고, 의용군이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벌인 일임을 강조했다. 외참이는 정부의 각료 자리에 있으나 참새 대통의 무능한 통치에 대하여 반감이 있었던 터라 <용참 의병대>의 활동을 마음속으로 지지하고 있었다. 용참이와는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며 친한 친구 사이라 더 그럴 것이다. 외참이와 외치는 농부들이 조류, 특히 참새와 까치를 대하는 자세에 대하여 함께 비판하면서 힘을 합쳐 대응해 나가자고 약속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 

*소탐대실(小貪大失) :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음.


  다음 날엔 <메추리 합중국>의 외교부 장관인 외추리가 외참이를 방문했다. 메추리와 참새는 활동 공간이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메추리는 주로 벌판에서 활동했는데, 참새는 민가와 벌판을 오가며 활동했다. 먹이도 거의 같은 것을 먹었기에 경쟁 관계에 있었다. 까치와 참새는 가까이 살았지만, 먹이는 겹치는 부분이 적어서 그로 인한 갈등은 적은 편이었다. 


  단도직입(單刀直入)적으로 말씀드리면 당장 채소밭에 대한 공격을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귀국의 공격 이후에 농부들로부터 무고한 우리 국민이 아홉수나 공기총에 살상을 당했습니다.” 외추리는 외치에게 채소밭 공격을 멈춰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단도직입(單刀直入) : 혼자서 칼 한 자루를 들고 적진으로 곧장 쳐들어간다는 뜻으로, 여러 말을 늘어놓지 아니하고 바로 요점이나 본문제를 중심적으로 말함을 이르는 말.

  “우선 그런 큰 참사를 당하신 것에 대하여 참으로 유감을 표하며 삼가 위로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번 공격은 우리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고, 일부 과격한 의용군이 벌인 일이라 우리 정부로서도 참말로 난감합니다. 우리도 최대한 통제를 하려 하나 날개 달린 동물들이라 참으로 여의치가 않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지난번 대참사 이후로 국민의 마음도 돌아서서, 우리 정부도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점을 참말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외참이가 정중하게 사과하고 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사실 외추리도 이것이 무리한 요구라는 걸 알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고 있었기에, 심정적으로는 참새들의 그런 행동을 지지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자연히 인간들의 자연 파괴 행동과 조류에 대한 무분별한 남획에 대하여 성토하는 자리가 되었다. 메추리는 벌판은 전에부터 하천부지(河川敷地)라 새들의 주 활동 무대였으나, 인간이 냇가에 제방을 성처럼 쌓고 논과 밭으로 개간해서 농사지으면서 빼앗겼다고 불만이 많았다. 메추리와 참새는 인간이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자기들 땅을 무단 점령해 버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인간과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답답한 마음만 더해졌다.

*안하무인(眼下無人) : 눈 아래에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방자하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업신여김을 이르는 말.

*시시비비(是是非非) :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다툼.

  새 그물과 독약, 공기총까지 동원해서 남획하는 행위는 지극히 반 동물적 행동으로 인간의 법규마저 위반하는 것이었다. 양국은 앞으로 인간의 반 자연적이고 반 동물적인 행동에 대하여 긴밀하게 대응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한편, 참새 정부에서는 모이 먹을 때 주의 사항’을 법으로 발표했다.


  1. 절대 안전이 확인되지 않은 모이는 참말로 먹지 말 것.

  2. 수상한 모이를 발견하는 즉시 치안 당국에 참말로 신고할 것.

  3. 사고가 발생 시 즉시 정부에 참말로 신고할 것. 



  또한 이동할 때의 행동 강령’도 발표했다.


  1. 개인 이동은 긴급 사항 발생 시 이외에는 참말로 하지 말 것.

  2. 장거리 이동 시에는 사전 허가를 참말로 득할 것.

  3. 단체 이동 시에는 10마리 단위로 그룹을 만들고 

     리더를 정하여 통솔할 것.

  4. 리더는 척후병을 보내 안전을 참으로 확인한 후 움직일 것.


  그러나 이 법은 절차가 너무 복잡하여 국민 참새들의 불만을 샀다. 도저히 지킬 수도 없고 지켜서도 안 된다고 반발했다. 어불성설(語不成說)인 것이 급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일일이 신고하고, 허가받고, 그룹을 만들어서 행동할 것이냐고 주장했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었다. 더 큰 문제는 리더 자격을 가진 참새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그룹을 만들 수도 없었다. 법을 위한 법에 지나지 않았다. 더구나 참새 모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이 법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고 사고는 계속 발생했다.

*무용지물(無用之物) : 쓸모없는 물건이나 사람.

  외참이는 참새 대통에게 인간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응을 할 것을 건의했으나 우유부단(優柔不斷)한 데다가 아무리 말해도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다. 더구나 다른 장관들은 그러지 않아도 인간들이 저렇게 화가 나 있는데 잘못되면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용참 의용대>의 활동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전쟁보다는 평화가 좋다며 절대 전쟁은 안 된다고 했다. 그래도 외참이가 강하게 주장하니 젊은이들을 사지에 몰아넣지 말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마이동풍(馬耳東風) 동풍이 말의 귀를 스쳐 간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아니하고 지나쳐 흘려버림을 이르는 말.


  시청 앞 벌판에서의 촛불 시위도 여섯 번째를 넘겼다. 참새 대통은 이런저런 되지도 않는 대책과 당근책을 내는 등 교묘한 수를 써가면서 버티기에 들어갔지만, 여론은 점점 나빠졌다. 국회에서 탄핵 절차에 들어감에 따라 참새 대통은 어쩔 수 없이 하야하기에 이르렀다.



                사퇴 성명서


  존경하는 <참새민국> 국민 여러분!

  본인은 오늘부로 참새 대통 직에서 참말로 물러나고자 합니다.

  본인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참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본인이 물러남으로써 국가가 하루빨리 혼란을 극복하고 

  참으로 영광된 <참새민국>으로 발전하길 기원합니다.


  국민은 열광했다. 

  시청 앞에서는 축하 콘서트가 열렸다.


  2개월 후에 대통 선거가 치러졌고 용참이가 81%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다. 용참이가 부상하기 전 잘 나가던 잠봉(潛鳳)들이 있었는데 난국을 만나 국민을 팔아 당리당략(黨利黨略)적 행동만을 계속하다 국민에게 철저히 외면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지난번 벼 낟알 저장고 설치 여부를 두고 국민투표를 할 때 숫자를 세지 못해서 문제가 되었다고 했다. 그럼 이번 선거의 집계는 어찌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참새민국>에는 해외 유학 갔다 얼마 전에 입국한 수참이가 있었다. 수참이가 선거 관리 업무를 주관했다. 


  우선 모든 참새를 광장에 모이게 한 후 출입을 철저히 통제했다. 남문 쪽에 투표소를 설치하고 평평하고 깨끗한 바닥에 지름 1m 정도의 동그라미 세 개를 그리고 출마자 이름을 써넣었다. 참새들은 줄을 서서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만든 선거 명부를 확인한 후, 벼 낟알 하나씩을 입에 물고 자기가 지지하는 출마자의 동그라미에 넣었다. 투표가 끝난 참새는 남문으로 나가면 선거가 끝날 때까지 광장에 들어올 수 없었다. 투표는 수참이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진행되어 일사천리(一瀉千里)로 마무리되었다.

*일목요연(一目瞭然) : 한 번 보고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뚜렷함.

*일사불란(一絲不亂) : 한 오리 실도 엉키지 아니함이란 뜻으로, 질서가 정연하여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일사천리(一瀉千里) : 강물이 빨리 흘러 천 리를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을 이르는 말.


  개표는 각 동그라미에서 낟알 한 알씩을 동시에 빼서 

  별도의 동그라미에 담았다. 

  벼 낟알 10개가 되면 팥알 1개로 대체했다. 

  팥이 10개, 즉 낟알 100개가 되면 흰콩 1알을 대체했다. 

  흰콩 10알 즉 낟알 1,000개가 되면 검은 콩알 하나로 대체했다.      

  일찍 동이 나는 동그라미는 선거에서 지고 끝난 것이다. 

  용참이의 동그라미가 마지막까지 남아, 

  검은 콩알 13개와 흰콩 알 2알, 벼 낟알 9개가 남았다. 

  총 13,209표.  

  용참이가 압도적인 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81%의 득표율이었다. 

  역대 <참새민국> 참새 대통 당선 득표율 중 가장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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