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란 보석 Mar 22. 2021

4.1 와신상담

  제4장 : 합종연횡



  4.1 와신상담



  용참이가 참새 대통에 당선된 후 국민의 기대감은 높아만 갔다.


  인간과 참새의 지루한 공방전이 계속될 때 와신상담(臥薪嘗膽)하던 용참 참새 대통은 이제는 끝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참새민국>의 참새 대통으로 당선된 용참이의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 주어야 할 때라 생각했다. 또한,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참새의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힘으로는 인간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저쪽은 재산 손실은 있을지언정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참새민국>은 아까운 생명이 희생된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 그렇다. 인간의 재산에 아무리 큰 손실을 끼쳤다 해도 아군이 목숨을 잃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머리를 써야 한다. 적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용참이는 용의주도(用意周到)하게 전략 구상에 들어갔다.

*용의주도(用意周到) : 꼼꼼히 마음을 써서 일에 빈틈이 없음.



  용참이는 <용참 의용대>를 국군에 편입하고 군대를 새롭게 편성했다.


  전투를 위한 군인들은 충분히 모였으니 작전을 세우고 외교전을 펼칠 인재를 보강하기로 했다.

  참새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공군 참모총장을 역임한 공참이를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하여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외교부 차관을 지내고 유엔대사를 역임한 현 외교부 장관 외참이는 그 자리에 유임시켰다. 전 정부의 각료 중 유임된 장관은 외참이가 유일했다. 이밖에도 각 분야의 대학교수 등 전문가 다수를 장관과 정책 보좌관으로 임명했다. 전 정권의 무능한 각료들은 대부분이 물갈이되었다.

*삼고초려(三顧草廬) :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노력함. 중국 삼국 시대에, 촉한의 유비가 난양(南陽)에 은거하고 있던 제갈량의 초옥으로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데서 유래한다.


  함께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용참이의 출신 당인 <참새 혁신당>이 국회의 2/3가 넘는 203석을 차지했다. 그동안 입만 가지고 국민의 뜻 운운하며 평화 팔이를 하던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낙선의 고배를 들었다. 그들은 평화만이 절대 선(善)인 것처럼 주장했지만, 결과는 인간에게 처절하게 당하고 만 것이었다. 참새 국민은 절대 어리석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이제 인간에 대항하여 강경 정책을 펴는데 아무런 걸림돌도 없게 되었다.


  어느 날 외참 장관과 공참 장관이 나를 찾아왔다.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지혜를 달라고 예를 다해 간절하게 청했다. 사실 전에도 이 두 참새와는 몇 번 만 적이 있었고 내가 하는 특강에도 참석하곤 했었다.    나는 이제 뒷방 늙은이가 되어 장기나 두며 소일하고 있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넌지시 한 발 빼 보았다. 선생님이야말로 국보급 스승이신데 이런 대우를 해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나라가 위기에 처했는데 진정 모른 체하실 거냐고 설득해 들어왔다. 내가 말하길 참새가 인간과 전쟁을 한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무모한 일인데 어떤 대책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혜안이 필요하다며 다시 매달렸다. 나는 병법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가장 좋으나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한다면 아군의 피해가 최소화되도록 전략을 짜야한다고 말해 주었다. 공참 장관은 공군사관학교에서 각종 병법을 배웠을 것이니 작전 수립을 잘하라고 말했다. 이이제이(以夷制夷)합종연횡(合從連衡) 두 가지 병법을 주로 해서 전략을 수립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넌지시 말해 주었다. 워낙 영민한 친구들이니 내 말뜻을 금방 알아듣고 무릎을 탁 치고 희색이 만면해서 돌아갔다. 그 후에도 전략 수립한 걸 갖고 은밀하게 몇 차례 방문하곤 했었다.


  외교부 장관 외참이와 국방부 장관 공참이가 합동으로 전략을 제안했다. 참새의 힘만으로는 미약하니 다른 동물들과 연대하여 인간과 싸우는 것이 좋겠다는 방안이었다. 이른바 ‘합종연횡(合從連衡)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었다. 일부 국무위원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과연 다른 동물들이 우리와 힘을 합쳐 싸워 줄 것인가 의문을 표하며 회의적이었다. 어떻게 하든 설득해서 승리할 수 있다고 하니 반신반의(半信半疑)했지만, 두 장관이 워낙 자신 있게 호언장담(豪言壯談) 하니 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합종연횡(合從連衡) : 소진의 합종설과 장의의 연횡설을 아울러 이르는 말.

*이이제이(以夷制夷) :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른다는 뜻으로, 한 세력을 이용하여 다른 세력을 제어함을 이르는 말.

*호언장담(豪言壯談) : 호기롭고 자신 있게 말함. 또는 그 말.



  외교부 장관 외참이가 국방부 장관 공참이와 함께 동물 각국과 협상에 나섰다.


  외참이와 공참이는 인간을 공격하기 위해 동물 각국과 연합군 결성을 목표로 협상에 나서기로 하고 협상 방법 구상에 들어갔다. 

  그전에 외교 천재 외참이에 대하여 간단한 소개를 할까 한다. 외참이는 자그마치 6개 국어를 한다. 옆 나라에 살아서 까치 어는 항상 접할 수 있어 자연스럽게 배웠고, 소들이 쓰는 우국 어는 소등에 올라타서 놀리며 놀다 보니 쉽게 배웠다. 메추리와는 국경을 맞대고 있어 교류가 많다 보니 엄마가 <메추리 합중국> 원어민 선생을 붙여주어 메추리 어를 배울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참새 어와 조류 어를 기본적으로 가르쳤다. 거기에다 또 하나 배운 것이 포유 어로 네발 달린 짐승들이 공통으로 쓰는 언어이다.

  참새가 6개 국어를 쓸 줄 안다고 하니 놀라는 동물이 많은데, 외참이는 특별히 언어 감각이 뛰어났다고 보면 된다. 게다가 청산유수(靑山流水)의 능변에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어서 낭중지추(囊中之錐)라 세간에 일찍이 알려졌다. 그러함에도 인간들의 언어는 너무 복잡해서 아직 배우지 못했다.

  자화자찬(自畫自讚) 하는 것 같아 좀 쑥스럽지만, 내가 인간들의 말을 알아듣는 건 물론 그 어렵다는 한자까지 통달해서 사자성어(四字成語)까지 쓰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청산유수(靑山流水) : 푸른 산에 흐르는 맑은 물이라는 뜻으로, 막힘없이 썩 잘하는 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낭중지추(囊中之錐) :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짐을 이르는 말.

*자화자찬(自畫自讚) : 자기가 그린 그림을 스스로 칭찬한다는 뜻으로, 자기가 한 일을 스스로 자랑함을 이르는 말.


  여러분은 어렵다고 느낄지 모르나 동물들의 언어는 생각보다 단순해서 쉽게 배울 수가 있다. 까치가 말하는 것만 하더라도 인간이 들으면 ‘깍깍’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으나 그 크기, 높낮이, 횟수 등이 모두 다른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도 많은 단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므로 기본 원리만 터득하면 쉽게 이해하고 말할 수 있다. 동물에게는 인간에게 없는 특이한 기관이 뇌에 있는데 ‘눈치 기관’이라고 부른다.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한다고 하여 이심전심(以心傳心) 으로도 부른다. 소위 본능 기관이라 할 수 있는데 상대방의 표정, 눈빛, 목소리, 행동 등을 통해 무슨 말을 하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기관이다.

*이심전심(以心傳心) :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뜻이 통함.

  약육강식(弱肉強食)의 치열한 동물의 세계에서는 말보다도 더 빨리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 특별히 발달한 기관이지 싶다. 외참이는 이 부분이 다른 참새에 비해서 배나 크다고 의사들이 말했다. 외참이가 외교관 생활을 하게 된 건 6개 국어를 하게 된 것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들이 ‘눈치 없는 게 인간이라고~’ 하면서 친구를 놀리는 걸 보면 인간에게는 이 기관이 없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요즘 인간들을 보면 정말 눈치가 없다. 우리가 보면 누가 나쁜 놈인지, 거짓말하는지 모두 알 수 있는데 눈치 기관이 없으니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것 같다. 인간 정치인이 교언영색(巧言令色) 감언이설(甘言利說) 국민을 쉽게 속여 먹을 수 있는 것도 이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전에도 얘기했지만 보이스 피싱에 잘 속아 넘어가는 것만 보아도 인간이 얼마나 눈치가 없는지 알 수 있다.

*교언영색(巧言令色) : 아첨하는 말과 알랑거리는 태도.

*감언이설(甘言利說) : 귀가 솔깃하도록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이로운 조건을 내세워 꾀는 말. 꾐 말, 달콤한 말.


  이어서 국방부 장관 공참이를 소개하면 참새 공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세계 전사는 물론 중국의 손자병법, 병법 삼십육계(三十六計) 등을 통달한 전략가로 동물의 세계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다. 특히 그의 비행 기술은 까치는 물론 매에도 뒤지지 않게 빠르고 민첩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별명이 스패로 미사일(Sparrow missile)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미군이 개발한 유명한 단거리 미사일 이름으로 비록 크기는 작지만, 기동성과 명중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과 비슷하다며 공군사관학교 친구들이 붙여 주었다. 그는 이 별명을 매우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외참이는 공참이와 함께 새 중에서 머리가 가장 좋다는 이웃사촌 <까치 공화국>을 방문했다.


  “아이고 <참새민국>에서 이게 웬일 이시오?” <까치 공화국> 외교부 장관인 외치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반갑게 외참이 일행을 맞았다.

  “외치 장관께서 잘 아시다시피 인간의 핍박은 점점 심해지고, 우리가 살아갈 터전을 잃어 참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신세가 되었기에 귀국의 도움을 요청하러 왔습니다.” 외참과 공참 장관은 날개를 살짝 펴서 공손히 앞으로 모은 후 방문 목적을 정중하게 말했다.

*풍전등화(風前燈火) : 바람 앞의 등불이라는 뜻으로, 사물이 매우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 그러시군요. 그렇다면, 귀국에 무슨 애로 사항이라도……?”  외치가 정중하게 다시 물었다.


  외참이는 전 참새 대통이 물러나고 용참이가 새로운 참새 대통이 된 것과 국가의 정책이 바뀐 것을 상세히 설명했다.

  <까치 공화국>에서도 전에 130마리의 참새가 보석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은 들어서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던 터였다. 외치도 환영의 뜻을 표했다. 그동안 까치들도 농부들로부터 공기총 공격을 받아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한 터라 절치부심(切齒腐心)하던 터였다. 더구나 외치는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아끼던 딸을 칠뜨기의 공기총에 잃었기에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기회를 엿보는 중이었다. 까치들도 인간이 쏜 공기총에 동료들이 무참히 희생되고 있다며 대규모로 모여서 성토하고 있던 참이었다.

*금지옥엽(金枝玉葉) : 금으로 된 가지와 옥으로 된 잎이라는 뜻으로, 임금의 가족을 높여 이르는 말. 혹은 귀한 자손을 이르는 말.


  이번엔 공치가 나서서 말하길, 인간들이 전에는 까치가 울면 기쁜 소식이나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길조라 하여 온갖 대우를 다 해주더니, 요즘은 유해조수(有害鳥獸)로 낙인찍어서 무차별 공격을 해대고 있다며, 이제는 철천지한(徹天之恨)이 맺힌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 사이가 되었다고 했다.

*철천지한(徹天之恨) : 하늘에 사무치는 크나큰 원한.

*불구대천(不俱戴天) : 하늘을 함께이지 못한다는 뜻으로, 이 세상에서 같이 살 수 없을 만큼 큰 원한을 가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인간들이 전에는 감을 따더라도 위에 있는 감은 까치밥으로 십여 개 정도 남겨 놓았었는데 요즘은 심성이 각박해져서 하나를 보기도 어렵다고 불평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따로 긴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입장이니 일사천리(一瀉千里)로 합의가 도출되었다.


  <까치 공화국>과 <참새민국>은 군사동맹(軍事同盟)을 맺고 공동전선(共同戰線)을 펴기로 했다. 다른 동물들과 연합군을 결성하는 데 대하여도 합의했다. 외치와 공치 장관은 즉시 까치 대통의 승인을 받았고 그날로 양국 외교부 장관은 협정서에 서명했다.



  다음에는 <계룡민국>에 협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계룡민국>은 <닭국>의 개명된 이름이다. 오래전부터 <닭국>으로 불러왔으나 발음이 좋지 않아 타국의 놀림감이 되자 최근에 <계룡민국>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남들은 그대로 <닭국>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계룡민국>은 온 세상에 해 뜨는 시각과 기상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맡고 있어 자부심이 있고 따라서 자존심도 강했다. 또한, 한때는 조류 세계에서 높은 벼슬을 도맡아 해서 영원히 머리에 벼슬을 달고 살 수 있도록 조물주께서 허락했기에 그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러나 ‘차면 넘치는 법’이라고, 그런 옛날의 영화에 너무 연연한 나머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던져주는 모이에 만족하다가, 이제는 날지도 못하고 자유를 속박당하며 영고성쇠(榮枯盛衰)의 무상함을 한탄하는 처지가 되었다.

*영고성쇠(榮枯盛衰) : 인생이나 사물의 번성함과 쇠락함이 서로 바뀜.


  닭장은 지난번 <용참 의용대>의 공격 후 참새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작은 그물을 쳐 놓아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 어디건 빈틈은 있게 마련이다. 수탉끼리 싸우다 밀어서 벌어진 틈새로 참새가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곳을 발견했다.

  <계룡민국> 정부에서는 참새의 방문을 그다지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당신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먹을 것을 빼앗아 먹으러 침입했었는데 ‘족제비도 낯짝이 있지’ 뭣 하러 예까지 온 거요?” <계룡민국>의 국방부 장관인 수탉 방닭이가 못마땅한 듯 목을 빼서 깃털을 세우고 힐난했다.

  먼젓번에 있었던 일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 그리되었는데 참으로 미안하게 되었소. 앞으로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을 참말로 약속하겠소!” 두 참새 장관은 날개를 쭉 펴서 앞으로 내밀며 허리를 숙여서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표하며 말했다.


  외참이가 그동안 있었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설명하고 동물 연합군을 만들어 인간에게 복수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닭들은 참새가 후안무치(厚顔無恥)하다고 생각하여 들으려고 조차 하지 않았다. 닭들은 인간이 자기들에게 매일 모이를 주며 생명을 지켜주는데 의리 없이 그걸 배반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후안무치(厚顔無恥) :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이 없음.


  “그 참사는 정말 안 되었으나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 아니오? 게다가 당신들 <참새민국>과 우리 <계룡민국>은 나라의 근본이 다르오. 우리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형제국이오. 신의와 예의가 없는 당신들과 달리 우리는 믿음으로 벗을 사귀는 교우이신(交友以信)의 의리를 지키는 동물이오. 어떤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우리를 설득하려 해도 속지 않을 것이오.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한 당신들과는 상대하기도 싫소! 당장 돌아가 주시오.” 외닭이는 사자성어(四字成語)까지 써서 유식을 뽐내며 참새의 제안을 강하게 거부했다.

*상부상조(相扶相助) : 서로서로 도움.

*교우이신(交友以信) : 세속 오계의 하나. 벗을 사귐에 믿음으로써 함을 이른다.


  역시 가문의 전통이 있어서인지 말하는 것이 품위 있고 어조 자체가 남달랐다. 외참이는 참으로 난감했다. 애초 예상과는 달리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외참이가 아니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고 외참이는 적극적으로 닭들을 설득했다.

*난공불락(難攻不落) : 공격하기가 어려워 쉽사리 함락되지 아니함.


  “당신들은 지금 참말로 속고 있는 거요. 지금 당장 편하다고 그렇게 지내는지 모르지만, 당신들의 말로를 참으로 생각해 보았소?”

  “우리의 말로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옆에서 다소곳하게 서 있던 암탉 꽃닭이가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다.

  “당신들은 당신이 낳은 소중한 달걀을 참으로 한 번만이라도 품어 보았소? 어제 당신이 낳은 달걀은 지금 어디에 있소?”

  “----------” 닭들은 외참이의 예상치 못한 질문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 달걀이 어디로 갔는지 참말로 알고나 있소?” 외참이가 이렇게 다시 한번 묻는데 모든 닭이 솔깃해서 벼슬을 고추 세우고 숨죽이며 듣고 있었다. 외참이는 자신감을 얻었다.

  “당신들이 낳는 달걀은 인간들이 참말로 요리해 먹는 데 사용하고 있소. 부침도 해 먹고 쪄도 먹고!” 닭들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외참이는 더 강하게 밀고 나갔다.

  지난번에 이 집주인 보석에게 잡혀 나간 어미 닭은 어디로 가셨는지 참말로 알고 있소?” 외참이가 큰소리로 물었다.

  “----------” 그러나 이 역시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순간 장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렇다, 일주일 전에 어머니가 잡혀 나갔는데 벌써 다 잊고 있었다. 그래서 머리 나쁜 놈을 지칭할 때 ‘닭대가리’라 하는가 보다. 외참이는 잠깐 뜸을 들였다. 모든 닭이 두 날개를 축 늘어뜨리고 숨소리도 죽인 채 외참이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우리 어머니가 어디 계지 알고 있소? 물론, 지금 잘 계시겠지요?” 방닭이가 궁금해하며 재촉해서 물었다.

  “우린 참으로 다 보았소! 당신 어머니가 주인한테 잡혀 나가서 당하는 참혹한 광경을…….”

  “뭐? 뭐라 했소? 우리 어머니가 참혹하게 당하셨다고 했소?” 방닭이가 놀라고 궁금해서 큰소리로 물었다.

  “그렇소! 참으로 안 되었지만 이런 소식을 전하게 되어 나도 심히 유감이오. 나는 참말로 보았소! 당신의 어머니가 처참하게 목이 잘리고 털이 뽑혀서 닭백숙이 되는 것을!”


  순간 여기저기서 ‘꾹, 꾹, 꾹’ 하며 닭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모든 닭이 날개를 늘어트리고 목을 길게 빼 땅으로 내리고 눈물을 흘렸다. 순식간에 닭장 안은 비탄에 빠지고 분노가 치솟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그동안 우리를 속이고 있었단 말이요?” 외교를 맡은 외닭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흥분하여 소리쳤다.

  “그렇소! 당신들은 참말로 이용만 당하고 있었던 거요!” 외참이가 단호하게 힘주어 대답했다.

  “당장은 주인이 주는 먹이가 참으로 편하고 맛있다고 느낄지 모르나 ‘세상에 공짜는 없소!’ 옆집 닭장의 육계들은 태어난 지 한 달이면 삼계탕용으로 팔려나간다는 사실도 참말로 알고 계시겠지요?” 이번엔 조용히 지켜만 보고 있던 공참이가 적극적으로 거들고 나섰다.

  “그런 거였소? 우린 다른 농장으로 팔려가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소. 이런 천하에 나쁜 놈이 있나!” 드디어 방닭이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몇몇 닭들은 분노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외참이와 공참이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젊은 육계들도 당신들이 낳은 달걀로 부화기에서 태어난 당신의 자식들이란 것도 참말로 잘 알고 있겠지요?” 외참이는 잔인하지만, 확실하게 못을 박아 버렸다.

  “태어나서 수놈은 버려지고 암놈은 비좁은 철창(케이지)에 갇혀 한 달간 모이만 받아먹다가 삼계탕용으로 팔려가서 젊은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 말이오.”

  “홍보석, 이놈이 우리를 완전히 농락하고 이용해 먹고 있었네. 내 이놈을 당장 그냥!” 닭들은 배신감과 함께 까맣게 모르고 철저히 속은 자신들에 대하여 화가 나는지 어쩔 줄 몰라했다. 수탉들은 목을 길게 빼고 깃털을 올린 후 한자리에 있지 못하고 우왕좌왕(右往左往)하고 있었다. 암탉들은 아직도 머리를 떨구고 ‘꾸꾸 꾹’ 울고 있었다.

  “<까치 공화국>에서도 이번 거사에 참으로 동참하기로 했소. 우리와 참말로 동맹을 맺었소.” 외참이는 더는 지체하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계룡민국>도 이번 거사에 참으로 동참해 주시면 원수를 갚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동참해 주시면 좋겠소.” 이번에는 공참이가 기회를 놓칠세라 적극적으로 거들었다.

  “아무리 화가 난다 해도 우리 조류들이 어찌 인간과 싸워 이길 수 있단 말이오. 그런 일에 섣불리 나라의 명운을 걸 순 없소.” 외닭이가 신중 모드로 나왔다. 외참이는 상대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쟁은 우리 조류뿐만 아니라 <와우 공화국>도 참여시켜서 힘센 소들의 힘을 빌릴 작정이오. 싸워서 이기 못할 전쟁은 아니 하니만 못하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괜한 걱정일랑 내려놓으시지요.” 이번엔 공참이가 설득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우리는 <와우 공화국> 참여 여부가 결정된 후에 결정하겠소.” 방닭이도 한 발 빼고 있었다.

  “협정을 맺는다고 해서 당장 전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작전 수립 중에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니 우선 협정을 맺어 주시지요. 우리도 <와우 공화국>이 불참한다면 승산이 없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계룡민국>도 외참이의 설득에 더 이상 발을 뺄 수는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더 무슨 긴 얘기가 필요할 것인가? 외닭이와 방닭이는 즉시 계룡 대통의 승인을 받아 왔다. 양국은 그 자리에서 동맹을 맺고 협정서에 양국의 외교부 장관들이 서명했다. 당연히 동물 연합군 구성에도 합의했다.


  “전쟁 전에 <계룡민국>에서는 우선 두 가지 일을 해 주시지요.” 공참이가 숙연한 분위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무엇이든 이야기만 하시오. 어떤 일이든 다 하겠소.” 방닭이가 굳은 표정으로 상기되어 말했다. 다른 닭들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는 당분간 참으로 알을 낳지 말아 주시오.”

  “그런 일이라면 식은 죽 먹기요. 걱정하지 마시오.” 꽃닭이가 아직도 눈물이 남아있는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둘째는 새벽이 되기 전 한밤중에 수시로 울어서 인간들이 참말로 잠도 못 자고 헷갈리게 해 주시오.”

  “그거야 우리 주특기 아니겠소. 걱정하지 마시오. 이제 인간과 우리는 빙탄지간(氷炭之間)이 되었소.” 이번엔 외닭이가 비통한 표정에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협의는 일사천리(一瀉千里)로 진행되었다. 다른 작전은 다음에 합동으로 수립해서 펼치기로 했다.

*빙탄지간(氷炭之間) : 얼음과 숯의 사이라는 뜻으로, 서로 맞지 않아 화합하지 못하는 관계를 이르는 말.

작가의 이전글 3.3 대책 수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