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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보석 Mar 26. 2021

5.3 범말 동물 대첩

제5장 : 이이제이



5.3 범말 동물 대첩



  닭들은 까치와 참새가 사는 그런 삶을 너무도 부러워했다. 그들이 부러워하는 건 자유였다. 그렇다. 그건 평화보다도, 안전보다도, 안정보다도 더 중요한 거였다. 인간과 친해지면서 평화롭고 안정적인 생활에 매몰되다 보니 결국은 자유를 잃은 거였다. 이렇게 사는 게 편한지는 몰라도 진정한 행복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자유가 없는 행복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었다.’ 이제까지 평화가 행복인 줄 착각하고 산 거였다.



  닭들은 방닭이의 지휘 아래 다음 공격 목표인 복식이네 채소 농장으로 달려갔다. 


  거기에도 푸른 채소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닭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마지막 파티를 여기서 즐기고 끝낸다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외참이가 하늘에서 큰 소리로 소리쳤다. 


  “방닭 장관님! 거기는 안 됩니다. 복식이네 채소밭은 공격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아니 그게 뭔 소리요? 이 멋진 곳을 공격하지 마라니요?”

  “그곳은 조금 전에 공격 목표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복식이네는 우리 참새들이 먹을 게 부족한 한겨울에 눈이 올 때 모이를 주곤 했답니다. 까치에게도 단 한 번도 해를 끼치지 않았답니다.”

  “그런가요?”

  “복식이가 동물들을 끔찍이 사랑한다는 보고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 공격 목표는 어디인가요?”

  “시내 건너에 있는 김만수네 농장입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 집은 농약을 많이 써서 함부로 채소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정보 대단히 감사합니다.”



  닭들은 방닭이 인솔 하에 김만수네 농장으로 ‘콩 콩 콩’ 달려갔다.


  “잠깐! 공격하기 전에 이곳은 농약 중독의 위험성이 있으니 특히 주의하도록!”

  “알겠습니다!”


  닭들이 채소밭을 헤집기 시작하자 김만수가 기르는 황구가 좌충우돌(左衝右突)하며 뒤를 쫓아 겁을 주고 짖었다. 그러나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주인에 대한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자세로 고군분투(孤軍奮鬪)했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라고 힘만 뺄 뿐이었다. <계룡민국 군> 쪽에서 황구의 공격에 약간의 술렁거림이 있었으나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으로 무장한 닭들의 맹렬한 저항 앞에 수적으로 열세인 황구도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참새 떼가 황구를 쫓아다니며 머리 위에서 혼을 뺐다. 황구는 참새의 약삭빠름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황구가 분해서 ‘월~월~월~’하고 짖으니 메아리만 되돌아왔다. 참새는 마침 지루하던 참에 잘 되었다 생각했다. 머리 위에서 계속 약을 올렸다.


*결초보은(結草報恩) : 죽은 뒤에라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을 이르는 말.

*고군분투(孤軍奮鬪) : 따로 떨어져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 군사가 많은 수의 적군과 용감하게 잘 싸움.

*임전무퇴(臨戰無退) 세속 오계의 하나. 전쟁에 나가서 물러서지 않음을 이름.


  “야, 인마 똥개야! 너는 그래 보았자 올해 초복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은데 뭘 그리 열심히 사냐?” 외참이가 놀리면서 약을 올렸다.

  “이 조막만 한 놈들이 어딜 대고 까불어? 너 다음에 만나면 죽었어! 월~월~” 황구가 성질이 나서 큰소리로 짖었다. 그러나 더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 혈압만 올라갈 뿐이었다. 

  “허허허, ‘다음에 보자는 놈치고 무서운 놈 없더라.’ 네 깐에는 네 주인한테 충성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보신탕 좋아하는 네 주인 김만수가 그런다고 봐줄 것 같으냐?”

  “우리 주인님이 나를 얼마나 예뻐하는 지나 알고 떠들어라, 네놈이 내가 부럽고 샘이 나서 그러는 것 같은데 네놈 살아갈 걱정이나 해라!” 

  황구는 약이 바싹 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만물의 영장인 인간한테 나보다 더 사랑을 받는 동물은 적어도 범말에서는 없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호호호, 귀여움을 받는다고? 하긴 저마다 ‘제 잘난 멋에 산다.’라고 했지만, 그 얘기를 들으면 지나가는 개가 아니, 고양이도 웃겠다. 너의 순진무구(純眞無垢)한 착각을 보면 내가 포복절도(抱腹絶倒)할 노릇이다.”

*순진무구(純眞無垢) 티 없이 순진함.

  “참새 너는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목불식정(目不識丁), 무식쟁이라 글을 읽을 줄 몰라 모르겠지만, 동구 밖에 멋지게 서 있는 충견비는 보지도 못했냐? 옛날 우리 조상님 중에 주인님이 늑대 때문에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 바쳐 지켜드려서 인간들이 감사의 표시로 그 비를 세웠다는 걸 알기나 하냐?”


*목불식정(目不識丁) : 아주 간단한 글자인 ‘丁’ 자를 보고도 그것이 ‘고무래’인 줄을 알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주 까막눈임을 이르는 말.


  “그래, 하나밖에 없는 네 귀한 목숨 바쳐서 아무짝에 쓸데없는 비석 하나를 받아서 뭐에 쓰려고 하느냐? 그게 밥 한 끼라도 먹여준다던?”

  “그게 인간과 우리는 한 가족처럼 지낸다는 의미란 걸 꼭 설명해 줘야 아느냐? 이 새대가리 무식한 놈아! 월~ 월~”

  “나보고 무식하다고 했냐? 이래 봬도 나는 6개 국어를 한다. 어디서 개소리나 하며 까불고 있냐? 짹짹”

  “흐흐흐, 그깟 단순한 동물들 말 몇 마디 한다고 잘났다고 떠드느냐? 나는 서당 개 10년째라 그 어렵다는 인간 말도 다 알아듣는다!” 

  이렇게 둘은 서로 잘났다고 자화자찬(自畫自讚)하며 허세를 부렸다.

  “하긴, 착각은 자유라 했다. 너 같은 하룻강아지가 내일의 삶을 어찌 알겠냐? 짹짹!”

  “새가슴 주제에, 참새 이놈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그러니 눈에 뵈는 게 없구나!”

  “호 호 호, 미욱한 황구야! 네 친구 멍구는 어디 갔느냐? 그 애는 너보다도 더 네 주인한테 아양 떨더니 지금 어디 있을까?” 


  외참이가 뭔가 알고 있는 듯이 놀리는 거였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보니 작년 여름 중복쯤인가 같이 지내던 친구 멍구가 갑자기 행방불명(行方不明)되어 돌아오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주인이 어디론가 끌고 가는 걸 보았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그 후로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행방불명(行方不明) 간 곳이나 방향을 모름.

*오리무중(五里霧中) : 오 리나 되는 짙은 안갯속에 있다는 뜻으로, 무슨 일에 대하여 방향이나 갈피를 잡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


  “황구야! 너는 지금 여기 와서 헛물이나 켜고 있을 게 아니라 절에 가서 부처님께 올여름을 무사히 넘길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나 열심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놀리는 외참이의 말에 언중유골(言中有骨)이 있다고 느껴졌다. 

  “네가 뭔가 알고 있다고 그러는 거 같은데, 그래도 난 절대 안 속는다.” 

  황구는 이렇게 큰소리를 쳤지만, 외참이가 올해 초복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비웃으며 한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언중유골(言中有骨) 말속에 뼈가 있다는 뜻으로, 예사로운 말속에 단단한 속뜻이 들어 있음을 이르는 말.


  과수원의 과일은 <까치 공화국 군>이 책임지고 처리하기로 했다. 


  이런 일이야말로 까치의 주특기 아니던가. 사과와 복숭아, 포도를 부리로 한 두 번씩 쪼기만 하면 되었다. 상처 난 과일은 잼을 만들거나 과일주 담그는 것 외에는 쓸모가 없게 된다. 아쉬운 게 있다면 사과와 포도는 열매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먹을 수 없다는 거였다. 

  우리 새들의 불구대천(不俱戴天) 원수인 용팔이와 칠뜨기네 사과 과수원과 복숭아 과수원을 먼저 공격했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을 한 놈들에게 이렇게라도 복수할 수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복숭아는 제법 익어서 그런대로 목도 축이고 허기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은 전가 보도(傳家寶刀)처럼 마구 쏘아대는 공기총이 무서워서 함부로 가까이 갈 수 없었지만, 오늘은 겁날 게 없었다. 


*인면수심(人面獸心) :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이나 행동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말.

*전가 보도(傳家寶刀) : 대대로 집안에 전해지는 보검의 뜻으로 무엇이 건 할 수 있는 물건을 일컬음.



  농장 한편에 새를 쫓아낸다고 설치한 ‘빵 빵’ 총소리가 나는 가짜 총이 보였다. 


  그 옆에는 새매 울음소리를 내는 스피커도 보였다. 가짜인 줄 알면서도 새가슴이다 보니 지레 겁을 먹고 가까이 갈 수 없었다. 제일 문제는 애들이 그 소리만 들으면 경기를 하고 치를 떠는 거였다. 외치는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격 방법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성경에 ‘구하라 얻을 것이니!’라고 했다. 때마침 수박 비닐하우스에서 나오는 방우가 보였다.


  “방우 장관님 대단히 수고가 많습니다. 오늘 장군께서 지휘하신 <와우 공화국 군>의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전략과 발산 기세(拔山蓋世)의 힘 앞에 적들이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쓰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동물 전쟁 역사에 길이 남을 혁혁한 전공을 올린 것을 감축드립니다.” 


*추풍낙엽(秋風落葉)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어떤 형세나 세력이 갑자기 기울어지거나 헤어져 흩어지는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아~ 외치 장관님! 뭘 그만한 일을 가지고…….” 방우는 외치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써가며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미사여구(美辭麗句) 아름다운 말로 듣기 좋게 꾸민 글귀.


  “그쪽 상황은 어떠하신지요?”

  “아~ 우리는 용팔이와 칠뜨기의 과수원을 결딴냈습니다.”

  “아~ 그러신가요. 그쪽도 우리 못지않은 혁혁한 전공을 세우셨군요.”

  “별 과찬의 말씀을……. 귀하의 전적에 비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지요.” 


  큰소리로 떠벌리기 좋아하고 칭찬에 인색하던 까치가 오늘은 그렇게 겸손할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조족지혈(鳥足之血) : 새 발의 피라는 뜻으로, 매우 적은 분량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저~ 방우 장관님께 어려운 부탁이 하나 있는데…….” 외치가 어렵게 운을 떼었다.

  “부탁이라면? 어서 말씀해 보시지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든 해드리지요. 우리는 혈맹이고 <동물 연합군>인데…….”

  “다름이 아니옵고, 과수원에 총소리 나는 가짜 총과 새매 소리 나는 스피커가 있는데 아시다시피 우리 힘으로는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라서…….”

  “아하! 그런 거라면 ‘식은 죽 먹기’ 아니겠소. 그런 걸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그러지 않아도 그것 때문에 우리도 낮잠도 설치고 보통 성가신 게 아니었소. 내 당장 함락시켜 드리리다.” 

  “아이고 그리만 해주신다면 우리 <까치 공화국>은 귀국에 백골난망(白骨難忘)이로소이다. 언젠가는 결초보은(結草報恩)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보은은 무슨, 우리는 <동물 연합군>이고 애초부터 적이 아니니 오월동주(吳越同舟)는 아니지만, 한배를 탄 동지 아니겠소?”


*오월동주(吳越同舟) : 서로 적의를 품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게 된 경우지만, 서로 협력하여야 하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언제고 어떤 일이건 이유를 갖다 붙이려면 무엇이든 있었다. 어깨가 우쭐해진 방우는 젊은 황소 둘을 보내어 가짜 총과 스피커를 단박에 박살을 내 버렸다. ‘앓던 이 빠진 격’이니 까치들이 기뻐서 하늘을 날며 손뼉 치고 환호성을 올렸다.

  사실 까치들에게 가짜 총과 새매 소리 스피커만큼 성가신 게 없었다. <까치 공화국>에서는 전체 국민 까치들 대상으로 아이디어 공모도 해 보았으나 별로 쓸 만한 게 없었다. 전깃줄을 끊어버리자는 안이 제일 좋은 아이디어였으나 까치의 능력으로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인 묘두현령(猫頭懸鈴)이나 다름없었다.

*묘두현령(猫頭懸鈴)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는 뜻으로, 실행할 수 없는 헛된 논의를 이르는 말.



  다음 까치의 공격 대상은 박 씨 아저씨네 포도 과수원이다. 


  까치의 공격을 보고 박 씨가 작대기를 들고 쫓아왔으나 요리조리 피하면서 약을 올리며 처리했다. 벌써 포도에 종이봉투를 씌워 놓은 것도 있어 여의치 않았으나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오늘을 기다려 왔는데, 여기서 힘들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부리로 안 되면 발톱으로 할퀴어 찢었다. 박 씨가 쳐 놓은 새 그물에 동료 수십 마리가 걸려 죽은 걸 생각하면 분이 풀리지 않는다. 분기탱천(憤氣撐天)한 까치들은 포도송이마다 십여 군데씩을 부리로 쪼았다. 까치를 쫓다가 지쳐버린 박 씨는 밭둑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푹푹 쉬며 줄담배를 피워댔다. 그의 머리 위에서 똥을 싸고 놀리는 까치도 있었다.


*분기탱천(憤氣撐天) : 분한 마음이 하늘을 찌를 듯 격렬하게 북받쳐 오름.



  사실 새 중에 까치만큼 지독한 새도 없을 것이다. 


  앞에서 칠점사와 싸움에서도 그 용맹성을 표현했지만, 까마귀와의 싸움도 빼놓을 수가 없다. 만날 때마다 싸우는 사이를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 하는데 까치와 까마귀 사이가 그렇다. 그래서 나는 그에 빗대 새들 사이가 좋지 않으면 오작 지간(烏鵲之間)이라 부른다. 


*견원지간(犬猿之間) : 개와 원숭이의 사이라는 뜻으로, 사이가 매우 나쁜 두 관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견우직녀가 칠월칠석에 만날 수 있게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를 놓는다는 인간의 설화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이야기처럼, 옛날에는 까마귀와 까치 사이가 지금처럼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볼 때, 까마귀가 까치보다 약간 더 크고 머리도 결코 까치보다 좋으면 좋았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기억력이 나빠서 잊기 잘하는 사람보고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라고 놀리는데 사실 까마귀가 들으면 엄청 기분이 나쁠 것이다. 까마귀가 자기에게 돌 던진 사람도 기억하는 걸 보면 선입견에 의해서 잘 못 알려진 대표적 사례가 아닌가 싶다. 그런 이유인지 몰라도 얼마 전부터 까마귀가 정력에 좋다고 비싸게 팔려서 까마귀가 수난당하는 걸 보았다. 아마 정력에 좋다면 바퀴벌레도 잡아먹지 않을까 싶다. 참으로 못 말릴 인간들이다. 

  봄에는 이들이 둥지 싸움을 하는데 집요한 까치가 빼앗는 경우가 더 많아서, 자리다툼에서 밀린 까마귀가 산으로 옮겨가서 사는 경우가 많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없었는데 워낙 살기가 어려워지니 생존 경쟁이 치열해서 결국은 까마귀가 산으로 밀려난 것으로 보인다. 


  까치는 길조라 하여 인간에게 특별대우를 받을 정도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인간의 ‘설날’이란 노래에 보면 ‘까치 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고 하며 설 전날이 ‘까치설날’이라고 하는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참새 설날’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참으로 부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까마귀는 어떤가? 


  이름 자체에 ‘마귀’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것만 보아도 인간들이 불길하게 생각하는 걸 알 수 있는데, 아주 옛날 고구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까마귀를 신성시했다는 이야기를 큰 할아범 참새에게 들은 적이 있다. 평양 진파리 1호분 등 고구려 벽화를 보면 ‘삼족오(三足烏)’ 그림이 남아 있는데 이는 태양을 의미하기도 하고, 혹은 태양 속에 살며 좋은 일과 나쁜 일을 알려준다는 신성한 새를 의미한다고 들었다. 지금도 솟대나 옛 문양에도 이들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볼 수 있다. 

  할아범 참새 말씀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지금도 까마귀를 길조로 여긴다는데, 아마 고구려가 망하고 그 유민이 일본으로 가서 큰 세력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하시며, 일본은 태양을 숭상하는 나라이니 그 역시 ‘삼족오(三足烏)’와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제멋대로 생각해서 만들어진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요즘 인간의 정치권에서는 프레임’이라는 몹시 나쁜 선전선동(宣傳煽動) 수법으로 상대방을 나쁜 이미지로 고착시키는 짓거리를 하는 걸 보았다. 어찌 한 사람을 단순하게 한 어휘로 정의할 수 있는가? 인간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소우주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단순화해서 한 어휘로 정의할 수 있는가! 또, 그렇게 악의적 프레임으로 정의하고 선전 선동하는데 말려드는 단순한 인간이 많은 걸 보면 참으로 우습기도 하다. 자기들끼리 ‘무뇌아’ ‘광신도’니 하며 폄훼해서 비하하는데 ‘제 얼굴에 침 뱉기’ 아닌가.


  텃새로 우리 이웃에 사는 까마귀의 종류로는 까마귀와 큰 부리 까마귀가 있는데, 무엇이건 가리지 않고 먹는 잡식성에 특히 죽은 동물을 깨끗이 먹어 치워서 우리는 그 애들을 청소부 또는 장의사로 부른다.

  겨울에 수만 마리가 떼로 날아다니는 까마귀는 갈까마귀와 떼까마귀인데, 이들은 몽골이나 사할린 등지에서 봄부터 가을까지 살다가 대한민국에서 겨울을 나는 철새로 텃새 까마귀보다 덩치가 작다. 인간이 까마귀를 오합지졸(烏合之卒)이라 폄훼하지만, 그 친구들은 대장도 있고 군대처럼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이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일사불란(一絲不亂) 한 오리 실도 엉키지 아니함이란 뜻으로, 질서가 정연하여 조금도 흐트러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



  까치나 까마귀 모두 공격성이 강하다.


  까치나 까마귀 모두 자기를 공격했던 사람은 잊지 않고 나타나기만 해도 큰 소리로 울고 머리 위에서 똥을 싸거나 심한 경우 직접 공격하는 걸 여러 번 목격했다. 

  수리나 맹금류가 나타나도 도망가지 않고 여러 마리가 합동으로 공격하여 결국은 쫓아버릴 정도로 영역 사수 본능과 담력이 있다. 그런 행동은 우리 참새들로서는 정말 부러운 점이다.

  요즘 인간들이 사진 촬영을 한다고 드론을 띄우는데 까치와 까마귀는 자기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하여 여러 마리가 합동으로 공격하는 걸 보았다. 똑똑한 우리야 그게 인간의 신발명품 드론이란 걸 알고 있지만, 그 친구들은 그걸 새로 알고 공격하는 건데 재미도 있고 용기가 가상하다. 

  까치집과 까마귀 집을 구분하는 방법은 까치집에는 지붕이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까치가 더 정교하게 집을 짓는다. 외치가 초대해서 까치집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진흙으로 벽을 발라서 바람과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잘해 놓고 산다. 우리 새들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들이 강남에 지었다는 타워 팰리스 수준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새싹이 막 돋아난 수수밭과 조밭, 콩밭은 메추리가 공격했다. 


  수천 마리의 메추리가 부리로 새싹을 쪼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농장 주인은 발을 동동 굴렀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속수무책(束手無策)이었다. 사실 메추리도 이런 전투가 마냥 즐겁지 않았다. 새싹도 엄연한 생명인데 그걸 죽이는 일인 데다가, 그 곡식은 인간의 식량만이 아니고, 메추리를 포함한 새들의 식량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뒤를 잴 상황이 아니었다. 메추리로서는 나라가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상황이니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했다. 견위수명(見危授命)하여 나라를 구할 수만 있다면 못 할 것이 없고 두려울 것도 없었다.

*견위수명(見危授命) 나라의 위태로운 지경을 보고 목숨을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우는 것을 말함.


  이렇게 메추리나 까치, 닭이 인해전술(人海戰術)로 밀어붙인 것은 병법 삼십육계(三十六計) 중 ‘제5계 진화타겁(軫火打劫),’ 즉, ‘기회가 왔을 때는 벌떼처럼 공격하라.’를 채택한 것이다.


*진화타겁(軫火打劫) 남의 집에 불난 틈을 타 도둑질한다.



  전세가 동물 <동물 연합군>의 일방적인 승리로 전개되자 신이 난 참새들은  사기충천(士氣衝天)해서 환호성을 올렸다. 


  철천지한(徹天之恨)이 맺힌 130 영령의 넋을 위로하고 그동안 인간에게 억울하게 당한 수많은 동료의 죽음을 대갚음할 수 있게 되었다. 


*사기충천(士氣衝天)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음.


  이이제이(以夷制夷) 계책이 먹혀서 위험하고, 힘들고, 어려운 전쟁은 <동물 연합군>인 소, 닭, 돼지, 까치, 메추리가 맡아서 수행하고 있었다. 공참이는 참새를 5개 사단으로 나누어 5개국의 전투를 응원했다. 참새들은 단지 그곳에 몰려가서 응원의 박수만 보내면 되는 상황이 되었다.  완벽한 합종연횡(合從連衡)에 이이제이(以夷制夷)였다. 


  반란은 오후 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중간에 몇 번 인간과 소가 맞붙어 일진일퇴(一進一退) 공방전이 있었고 수단을 총동원해 싸웠으나, 결국은 소들의 격렬한 공격에 부상만 입고 전의를 상실하여 체념하고 있었다. 소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 보았을 때는 더 짓밟을 곳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인간들은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애가 타서 발만 동동 구르며 바라만 볼뿐이었다. 전쟁은 이렇게 동물들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어느덧 서쪽 하늘에는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흡사 그 붉은색은 그동안 동물들이 당한 가슴에 맺힌 한이 하늘에 닿아 물든 것 같았다. 참으로 긴 하루였다.


  사람들은 저 많은 가축을 어떻게 축사에 다시 몰아넣을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미친 듯이 좌충우돌(左衝右突)하며 날뛰는 동물을 마을 사람 십여 명이 통제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야말로 ‘날은 저무는 데 갈 길은 멀다’라고 한 일모도원(日暮途遠)이었다. 설왕설래(說往說來)했으나 뾰족한 대책이 있을 수 없었다. 모두 낙담하고 있는데 이장이 나서서 그만 해산하자고 했으나 사람들은 저 많은 가축을 그대로 두고 어찌 집으로 돌아갈 거냐고 말했다.


*일모도원(日暮途遠) :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늙고 쇠약한데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많음을 이르는 말.

*설왕설래(說往說來) 서로 변론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함. 또는 말이 오고 감.


  당장 부서진 양계장과 양돈장 문을 수리하는 것이 문제였으나, 모두 나서서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거들어 아쉬운 대로 대충 마무리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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