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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란 보석 Apr 29. 2016

잔인한 봄

임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내님 보내드리던 날도 진달래가 흐트러지게 피었습니다.


나는 님 떠나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멀리 있어 함께 할 수 없어서

전문 한통으로 님이 떠나신 걸 알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

땅이 꺼지는 듯

스무 살 어린 청년은 그렇게 님을 떠내 보냈습니다


꽃가마 태워 드릴 때 님이 정말 가시는 걸 알았습니다

아무리 길을 막고 잡아도 님은 말없이 가셨습니다

아무리 땅을 치고 울어도 무심하게 떠나가셨습니다

님 보내드리고 되돌아 올 때 뻐꾸기도 구슬피 울었습니다

허무합니다

너무도 아쉽습니다


그렇게 잔인한 봄날 나는 님을 보내드렸습니다


바쁘게 일하며 살 때는 잊고 살다가

밥 먹을 때 문득 생각납니다

아 -----  님이 떠나가셨지!!

한없이 슬퍼서 눈물짓습니다.


또 잊고 살다가

잠자리에 들어 문득 생각납니다

아 -----  님이 떠나가셨지!!

또다시 서러워 눈물짓습니다.

베갯잇이 젖도록 흐느껴 웁니다.


잠에서 깨어 또 문득 생각납니다

아 -----  님이 떠나가셨지!!

믿기지 않는 현실에 눈물짓습니다


스무 살 청년은 잔인한 봄을 그렇게 보냈습니다






*오늘은 아버님 기일이다.

 울산에서 직장 생활하던 나는 아버님 임종을

 하지 못했다. 전보 한통으로 받아 든 믿기지 않는

 비보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중앙선 기차를 타고 밤새 달려 새벽에 청량리 역에

 도착했다. 택시를 잡아 타고 안성 고향으로 갔다.


 둘째 아들 오길 기다리다 시간에 쫓겨 도착하자 발인한다.

 얼떨결에 선산에 아버님을 모셨다.


 울산에 돌아와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한 동안 아버님을 

 보내 드리지 못하고 낙담하던 일이 생각난다.

 임종도 못하고, 염습도 참관하지 못해서 실감이 나지 

 않아서 알 거라 생각된다.


 일제시대 징용에 끌려가셔서 전기에 감전되어 죽었다

 살아나셨다. 그 때문에 평소에도 몸이 아파 고생을 

 많이 하셨다.


 대기업에 취직하여 효도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안타깝게도 폐결핵으로 세상을 뜨셨다.


이제 내가 아버님 나이가 되어 그날을 잊지 못하고

눈물로 이 글을 쓴다. 노란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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