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늙어 봤니?
늙어서 추하다 했더냐
죽지 않고 버텨 낸 수백 년 세월인데
가지 몇 개 잘리는 아픔쯤은 수없이 겪었고
사라호 태풍에도 넘어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곧게 서서 위로 크는 것만 좋은 줄 알았는데
낮추고 넓게 퍼지는 것이 더 좋다는 것도 깨달았다
혹독한 풍상에 피부가 갈라지고 벗겨졌지만
그것이
시련을 딛고 선 내 이력서요
훈장인 것을
동네 입구에 서서
자네 고조할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의 자네까지 지켜봐 왔다네
이 동네의 역사가 나와 함께 했다는 것을 아는가
어린이는 나를 타고 놀았고
동네 사람들 내 그늘에 멍석 깔고 온갖 세상사를 함께 했다
그래도 제일 즐거웠던 것은
단오 때 가지에 그네 매고 처자들 그네 탈 때였고
가장 슬펐던 것은
친구의 꽃상여 앞에 놓고 노제 지낼 때였었지
새들도 내 품에 집 짓고 번식하며 살아오고
꿀벌도 내 몸속에 들어와 집을 틀었지
사슴벌레 장수하늘소도 여기서 크고 자랐다
여름엔 매미가 시끄럽게 울었지만
너는 내 그늘에서 낮잠만 잘도 잤었지
그런 네가 이제 반백이 되었구나
맞소!!
늠름한 불굴의 그 자태와
하늘로 솟구친 기백
넓게 퍼져 주위를 아우르는 위용
영역을 나누어 공존하는 여유로움까지
모두에게 한없이 베풀되 거만하지 않고
당당함을 잃지 않는 변함없는 자세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몸소 실천하며 삶의 지혜를 보여주네
보아라
비록 늙었어도 왕성한 생명력으로
보란 듯이 꽃까지 멋지게 피워내니
감히 존경과 경외감으로 드리는
최고의 찬사는
정말 아름답소!!
어렸을 적 동네 어귀에 수 백 년 된 느티나무가 있어 거기에서 놀던 기억이 아련합니다.
그때 당시 수령이 팔백 년 정도 되었다고 하니 고려시대부터 살았던 거지요.
장정 넷이 두 팔 벌려 손을 맞잡을 수 있을 정도의 굵기를 갖고 있었으니 그 크기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 나무에는 토종 벌꿀도 굴속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요즘으로 치면 목청이 되겠네요. 그러나 누구도 그 꿀을 따 먹을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각종 새들도 집을 짓고 살았지요. 콩새가 살고, 올빼미도 살고 온갖 새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습니다.
나무 위에는 가지가 엉켜 있어 올라가 누우면 편안한 잠자리가 만들어져 거기서 낮잠을 자는 간 큰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가지에 동아줄을 매고 그네를 뛰었고, 밑에서는 멍석을 깔고 앉아 온갖 놀이를 즐겼습니다. 장기도 두고, 바둑도 두고, 씨름도 하고, 놀이도 하고.....
동네 놀이터와 사랑방 노릇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내가 초등학교 오 학년 때쯤으로 기억하는데 바람이 몹시 불고 천둥 번개가 머리 위에서 쳐대서 깜짝깜짝 놀라며 마음을 졸이 던 때에 별안간 천지가 진동하는 굉음이 들렸습니다.
조금 있으니 웅성 우성 하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가
"느티나무가 쓰러졌다!!"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비가 쏟아지는데도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느티나무 있는 곳으로 내 달렸습니다.
그 큰 나무가 넓은 땅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하~~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지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모두가 망연자실하고 볼 수밖에 없었죠.
먼저 나와 본 사람은 그 나무에서 1미터도 넘는 커다란 구렁이 두 마리가 기어 나왔다고 합니다.
마을에서는 그 나무를 팔아서 큰일 때 쓰는 채일(베로 만든 대형 텐트)을 마련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싸게 그 좋은 괴목을 팔아넘겼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이제 우리 동네에는 동네 수호신 같은 그런 나무가 없습니다.
마을을 한 가족처럼 공동체로 묶어 주던 일을 하던 그 나무가 없어진 것입니다.
이 글은 그 느티나무를 회상하며 쓴 것입니다.
묵묵히 많은 사람들의 놀이터가 되고 쉼터가 되고 구심점이 되어 주었던 고목 느티나무가 그립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왜 그 느티나무처럼 크게 감싸 안을 수 있는 큰 어른이 없을까?
아쉽기만 합니다.
늙은이가 존경받고 젊은이가 꿈을 마음껏 펼치는 세상이 되길 희망합니다.
노란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