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이웃이 생겼다

서로 간의 배려가 필요해

by 은향

우리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주차 공간이 늘 부족하다. 저녁 8시 정도면 주차 라인 안쪽에는 이미 차가 꽉 차서 그 앞에 일자 주차를 하고 기어를 중립으로 해 놓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아침에 출근할 때면, 주차한 내 차 앞에 다른 차가 막혀 있어 가뜩이나 바쁜 출근 시간에 차를 밀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출입구와 가까운 A구역의 몇몇 주차라인 외에는 대부분 이중주차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출근 시간을 되도록 아끼기 위해서는 바로 차를 뺄 수 있는 A구역에 주차를 하든지, 아예 내 차를 이중주차해야 했다.


올해, 학교를 옮겨 운전하는 출퇴근 시간만 왕복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퇴근시간은 어쩔 수 없다해도 아침에 막히는 것을 피하려고 매일 새벽 6시 30~40분에 출근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아침 시간에 남의 차를 밀어야 하는 번거롭고 시간이 지체되는 일을 만들지 않아야 했다. 혹시라도 차를 빼기 곤란한 상황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A구역에 주차를 하는 것이 너무나 절실한 일이 되었다.



지난 주말, A구역이 아닌 우리 동 바로 앞의 주차 라인 안쪽에 주차를 해 두어서 월요일 출근 전에 차를 미리 이동해야 했다. 지하주차장으로 가 봤더니 내 차 앞에 떡 하니 검정 승용차가 가로막은 채 주차되어 있었다. 차를 밀어보았으나 바퀴 방향이 주차 라인쪽으로 삐뚤어져 있어 잘못 밀다가 주차되어 있는 다른 차의 앞 범퍼와 부딪힐 것 같았다. 휴대폰 번호도 남겨두지 않아서 관리실에 전화를 해서 차주에게 연락해달라고 부탁했다.


조금 뒤, 관리실에서 차주에게 연락 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다시 전화가 왔다. 하지만, 5분이 지나도 차주는 내려오지 않았다. A 구역에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은 단 두 자리였기에 마음이 더 조급했다. 차주를 기다리는 사이에 A 구역의 남은 자리는 단 한 자리로 줄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가 슬슬 화가 차 올랐다. 연락을 받았으면 빨리빨리 나와서 빼 줘야지, 뭐 한다고 안 나오는 건가. 짜증이 점점 치밀어 올랐다.


화가 점점 고조되고 있는 찰나, 그제서야 트레이닝복을 입은 아저씨가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자마자 내뱉은 말은, "차, 안 밀려요?"였다. 우선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게 상식 아닌가. 기분이 더 상했다.


"한 번 밀어보세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나도 부드럽게 말이 나가지 않았다. 내 말에 그 아저씨도 기분이 상했는지, 차를 뺄 생각은 안 하고, 자신의 차를 앞으로 밀었다. 차를 밀고 빼면 될 것을, 자신이 주차한 게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검증이라도 하려는 듯이 자신의 차를 천천히 손으로 밀었다. 주차라인에 있는 차의 범퍼와 겨우 1센티 정도 아슬아슬하게 남겨둔 상태에서 그는 나더러 내 차를 빼라고 했다. 앞으로 더 확 차를 밀지 못해서, 내 차가 나가기에는 너무 좁아서 아무래도 운전하기가 불안했다.


"이 상태에서는 제가 차 못 빼요. 차를 옮겨주세요."

"이 정도면, 충분히 뺄 수 있어요."

그 아저씨는 차를 빼주면 간단할 것을, 굳이 앞으로 밀어서 좁은 공간에서 힘들게 내 차를 빼라고 했다.


"저는 운전이 미숙해서 못한다구요. 그냥 차를 빼 주세요."

"아니, 운전이 미숙하면서 차를 왜 몰아요?"

그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딴지를 걸었다.

"제가 운전을 못하겠다구요. 왜 제가 그렇게 위험을 감수해야 해요? 그냥 차 빼 주세요!!!""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치는 나에게 심술궂은 표정으로 그가 말했다.

"내가 차 안 빼면 어쩔 건데요?"

"아니, 이게 무슨 억지예요? 빨리 차 빼세요!!"

나도 지지 않고 내 할말을 하고, 바로 뒤돌아 내 차에 올랐다.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차에 오르면서 낮게 혼잣말을 내 뱉었다. 그가 혼잣말을 들었는지, 내 차 정면 쪽으로 와서 "어디 살아요?"라고 물었다. 참 나, 어디 살면 뭐 어쩔려고? 그와 더 이상 불필요한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았다. 그가 정말 못돼먹은 심보로 차를 안 빼주면, 곤란한 것은 결국 나였다.


"얼른 차 빼세요!"

차 안에서 내리지 않은 채 나도 강하게 말했다. 그는 잠시 나를 노려보더니 내가 응대하지 않고 시동을 걸자, 천천히 자기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A 구역의 하나 남은 자리가 그대로 있었다. 다른 차가 들어올세라 나는 급히 차를 옮겼다.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리려다 말았다. 지금 나가면, 우리동 엘베 쪽에서 나온 그 아저씨와 엘베에서 다시 마주칠 것 같았다.


<왼쪽은 주차된 차 앞을 가로막는 이중 주차 구역, 오른쪽은 출입구 근처 이중 주차를 못하게 막아놓은 A구역>


'에잇, 잘못은 그 아저씨가 했는데 내가 왜 피해야 해?'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가, 괜히 엘베에서 다시 마주쳐서 더 큰 싸움이 될 수 있으니 굳이 지금 나가지 말자 싶었다. 잠시 차 안에 있다보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아저씨가 먼저 사과하지 않고, 차가 안 밀리냐고 퉁명스럽게 말했더라도 내가 조금 더 부드럽게 응수했다면 어땠을까. '차를 밀어보니 주차된 차와 부딪힐 것 같아서요. 쉬시는데 불편하게 해 드렸네요.' 이렇게 말했어야 했나. A구역을 뺏길까봐 조급한 마음에 내뱉은 말들이 하나하나 복기되었다. 차를 제대로 주차하지 않고, 사과도 없이 퉁명스러웠던 그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해도, 나역시 그에게 따뜻하게 말하지 못한 문제가 있었다.

얼핏 본 주차 스티커에 1203호라고 되어 있던 것 같은데, 같은 라인은 아니지만, 같은 동이어서 언제라도 그와 마주칠 수 있다. 본의 아니게 마주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이웃이 생겼다. 에휴, 이제와서 후회해 봤자 어쩌랴. 항시 내 말그릇을 크고 깊게 키웠어야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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