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 대하여 (1)

왜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더 줄어들까.

by 은향

내 인간관계의 폭이 넓지는 않아도 깊이가 있다는 생각에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방학이라도 휴대폰에 개인적인 연락이 한 번도 오지 않는 며칠이 지나자 그래도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든다. 외롭다거나 쓸쓸하다는 말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아무에게도 연락이 없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날들을 애타게 기다렸고 그럴 수 있어 너무나 좋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지나가는 바람 한 줄기가 이렇게 속삭인다. 네가 살아온 날이 얼만데 인간관계가 겨우 이거니? 그 바람 소리에 살짝 위축된다.


나이가 들면 친구가 더 늘어야 하는데, 왜 자꾸만 줄어들까? 이상한 일이다. 내 주변의 정말 친한 사람을 손에 꼽으라고 하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것 같다. 외향적이던 성격이 몇 년 전부터 내향적으로 바뀌면서 더 줄어든 것 같다. 초중고, 대학교 때 친구들과도 연락을 안 한지 몇 년이 된 것 같다. 가끔씩 누군가의 경조사가 생기면 단톡방에 소식이 오고, 짧은 연락과 함께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전달하기는 한다.


현재 내 주변의 친밀한 사람들은 사회생활하면서 만난 사람들이고, 대부분은 교사이다. 하지만, 그들과의 관계도 일정하지 않다. 직업의 특성상 몇 년마다 학교를 옮기기 때문에 내가 전근을 가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떠나기도 하고, 매년 부서 이동이 있기에 같은 학교에 있더라도 교무실이 달라지면 친밀도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교직 사회의 풍토도 점차 바뀌어서 예전만큼 동료 간의 끈끈함이 적어지기도 했고, 퇴근 후의 개인의 삶에 더 비중을 두며 동료에 대한 인식도 피상적이 되었다. 그러하기에 새로 만나는 동료들과 탄탄하고 지속적인 만남이 유지되기는 어려워졌다. 오래전 끈끈한 관계를 구축한 인연들과는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느라 그 인연들을 소환하여 따로 만날만큼의 마음과 강한 에너지는 부족하다.



직장에서 만났지만 동갑인 20년 지기 친구 미현(가명)이 있다. 그녀와 나는 성격은 다르지만 통하는 게 많았다. 당시 서로 처한 상황이 비슷했고 그러다 보니 속마음을 가감 없이 터놓고 공감하거나 위로해 주는 사이가 되었다. 남들한테는 드러내지 못하는 각자의 치부조차도 말할 수 있을 만큼 서로 신뢰했고, 체면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서로의 관계가 참 편안했다. 서로가 대나무숲이 되어주었기에 답답할 때마다 더욱 찾게 되었고, 그런 상대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했다.


작년 어느 날, 별 것 아닌 일로 미현과 내가 서로에게 감정이 살짝 상하게 된 일이 생겼다. 오래전 처음으로 같이 간 해외여행에서 사소한 일로 대판 싸웠다가 사과하며 푼 적도 있었기에, 그 정도의 일로 관계가 틀어질 것은 아니었다. 단지 서로 연락이 조금씩 뜸해졌을 뿐. 미현의 딸의 입시를 앞두고 나는 수능 잘 보라는 메시지와 함께 초콜릿 선물을 보내기도 했다. 12월에는 미현이 오랜만에 만나자고 연락도 왔다. 하지만, 그때는 학기말 업무와 개인적으로 중요한 공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만날 수 없었다.

미현과 연락을 안 한지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문득 미현이 생각나고 궁금하기도 했으나 전쟁 같은 한 학기를 보내느라 연락할 여유는 없었다. 방학이 열흘이 지난 이제야 정신을 차려보니 미현과 너무 오랫동안 연락을 안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선뜻 그녀에게 연락하는 게 쉽지 않다.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조금 어색해졌달까. 나를 가장 잘 알고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미현을 떠나보낼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런데, 이 뭔지 모를 망설임을 어떡한담.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쪽이라도 더 끌어당기는 에너지와 힘이 있어야 한다. 남녀 관계에서의 밀당은 아니지만, 반드시 누군가는 상대방을 더 적극적으로 찾고 원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먼저 연락하고, 선뜻 나서서 만남을 추진하는 성격은 아니다. 나에게는 그런 에너지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향한 에너지가 확 줄어들었고 사람에 대한 피로감도 많았다.


지난 2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다시 근무지를 옮기면서 인사발령 문서에서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오래전 함께 근무하면서 친밀한 인연을 맺었고, 내가 학교를 옮긴 후에도 몇 년 동안 자주 만나던 순영(가명) 언니였다. 학교는 멀어졌지만, 언니와 같은 동네에 살아서 퇴근 후나 주말에 같이 밥도 먹고 산책도 자주 했다. 그러다 순영 언니가 40대 초반이 넘은 나이에 인연을 만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순영 언니가 주말 부부였기에 언니의 결혼 후에도 우리는 자주 만났다. 그러다 40대 중반을 바라보던 언니가 임신을 했고, 감사하게 예쁜 딸을 얻었다. 언니는 육아로 인해 휴직을 했고, 남편이 있는 천안으로 살림을 합쳤다. 그 이후에도 몇 번 통화는 했으나 그럴 때마다 언니는 아기가 깰까 봐 속삭이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한두 번 그런 통화가 반복되자 내 연락이 언니에게 민폐가 되는 것 같아 연락을 끊었다.


그리고 수년이 지났고, 순영 언니가 다시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학교로 발령이 났다는 것을 인사발령 문서로 확인했던 것이다. 오랜만에 혼자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라서 뭔가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되었던 것일까. 그때의 나는 순영 언니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전화기 신호음이 몇 번 가지도 않았는데, 언니가 전화를 받았다. "샘,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몇 년 간 끊어진 서로의 정보를 간단하게 압축하여 나누었다. 그런데, 옆에서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샘, 잠깐만 옆에서 우리 딸이 뭐라 하네." 순영 언니가 딸에게 뭐라 하는 말이 내 핸드폰에도 작게 들린다.

"아, 샘~ 딸이 벌써 많이 컸네요. 딸이랑 뭐 하셔야 하나 봐요."

순영 언니는 괜찮다고 했으나 어쩐지 길게 통화를 할 수 없어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어찌해서 한쪽에서 에너지가 생겨 상대방을 찾았어도, 서로의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끊어진 인연을 다시 잇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오래된 지인이 사람과의 인연의 흐름을 책장의 페이지를 넘기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한 시절에 나와 함께 했었던 사람들, 그들과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지나는 것이 책장의 한 챕터를 넘기는 거라고. 그리고 또 다른 시절에 또 다른 사람들과의 인연을 맺고 새로운 페이지를 맞이하는 거라고. 순영 언니와의 챕터가 이미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희(가명)에 대한 나의 태도는 어떤 면에서 참 신기하다. 사람에 대해 먼저 연락하고 손 내미는 데 소극적인 편인 내가, 이상하게도 도희에게는 그렇지 않다. 사실 이걸 깨달은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도희가 먼저 나에게 연락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도희를 찾고 전화를 건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도희에게 연락했을 때 바로 통화가 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몇 번의 엇갈린 전화와 문자를 거쳐 결국에는 도희와 연락을 하고, 만날 약속을 잡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희에게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이 그다지 억울한 기분은 들지 않는다. 섭섭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도희는 나를 왜 먼저 찾지 않나 정도의 마음. 도희가 나를 궁금해하기 전에 늘 내가 먼저 선수를 치는 걸까. 사람에 대한 에너지가 적은 편인 내가 이상하게도 도희에게는 아무렇지도 않게 에너지가 향한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예전보다 나는 사람에 대해 꽤 독립적이 되었다. 외향적이었던 나는 주말에 집에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꼭 어떤 일정이라도 만들어 밖으로 나갔었다. 하지만 내향형 인간으로 바뀌고 나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참 좋다. 주말에 혼자 뒹굴거리며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게 좋다. 이럴 때 비가 오면 더더욱 좋다. 이젠 난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게 참 많아졌다. 혼밥이나 영화 관람은 물론이고 클래식 공연보기, 달리기, 해외여행 등등 혼자 하는 게 오히려 더 편하고 좋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기 때문인지 한편으로는 인간관계에 대해 마냥 자유롭지는 못한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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