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 외삼촌의 장례식장
얼마 전 막내 외삼촌이 72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암이었다. 처음에 피부암이 발병했는데, 폐암으로 전이되었다고 했다. 막내 외삼촌은 피부암 치료를 받고, 폐암치료는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했다. 큰 외삼촌이 50대에 폐암으로 돌아가셔서 그랬는지, "내가 무슨 폐암이냐"며 초기에 치료를 안 하셨다고 했다. 하필 의사가 폐암 치료를 제때에 받지 않았다는 내용을 진료 기록에 남겼고, 보험회사에서는 그걸 핑계로 피부암에 대한 보험료만 지급했다고 들었다.
나는 막내 외삼촌이 일도 계속하신다고 들어서 치료를 받고 괜찮으신 줄로 알고 있었다. 7월 말에 오랜만에 뵌 둘째 외숙모가 막내외삼촌이 요양원에 있는데 많이 안 좋다고 알려주셔서 병이 악화되었나 싶었다. 그땐 방학한 직후여서 내 밑바닥에 있는 에너지까지 모두 끌어다 쓴 상태라 지친 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8월이 되어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이런저런 미뤄 둔 일들을 신경 쓰며 처리하다 보니 곧 개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개학 전에는 꼭 막내 외삼촌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8월 중순의 더운 날, 둘째 외삼촌, 엄마와 함께 막내 외삼촌을 뵈러 인천으로 갔다. 몇 년 만에 요양원에서 만난 막내 외삼촌은 다른 사람 같았다. 몸은 뼈가 느껴질 듯 앙상했고, 얼굴도 양쪽 볼이 움푹 패일 정도로 비쩍 야위었다. 음식을 먹으면 자꾸 사래에 걸려서 포도당만 맞고 있다고 했다.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었다. 다리에 힘이 없어 걷다가 쓰러지기도 해서 거의 침대에서만 지낸다고 했다.
특별히 우애가 좋았던 둘째 외삼촌과 막내 외삼촌은 서로 손을 맞잡고 따스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조금 있으니 막내외삼촌의 오랜 친구분이 문병을 왔다. 둘째 외삼촌이 문병 올 때마다 그 친구분을 볼 정도로 막내 외삼촌과 막역한 오래된 벗이었다. 어렸을 때 같은 동네에 살아서 우리 엄마도 그 친구분을 기억하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옛 추억을 소환하여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병실이 우울한 분위기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난 오래전에 막내 외삼촌이 책 한 권을 읽어보라고 보내 준 일이 기억났다.
"외삼촌, 예전에 저한테 책을 우편으로 보내주셨던 거 기억나세요?"
"기억나지. 스베덴 보리가 쓴 <위대한 선물>. 내가 출판사에 따로 연락해서 그 책을 100권을 사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어."
"진짜요? 100권이나요?"
"응. 그 책을 읽고 엄청 놀랐어. 세상에 이런 경험을 하고 쓴 책이 있다니, 이건 많은 사람들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지."
오래전에 읽어서 책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당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삶을 잘 살아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해 주었던 것만은 생각났다.
막내 외삼촌은 딸과 아들을 한 명씩 두었다. 미진(가명)이는 결혼해서 수원에 살고 있고, 형식(가명)이는 인천에서 살고 있었다. 미진이는 휴가 중이었는데, 매일 수원에서 인천까지 지하철을 타고 와서 막내외삼촌을 간병했다. 늦은 오후, 땀을 흘리며 미진이가 병실에 들어왔다. 막내 외삼촌은 미진이를 보자 미지근한 물을 떠다 달라, 산소호흡기를 끼워달라, 편안한 표정으로 사소한 몇 가지를 주문했다. 요구사항을 다 처리한 미진이가 막내외삼촌의 손을 주무르고 얼굴을 매만졌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막내외삼촌은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나는 막내외삼촌을 중심으로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그날 저녁 미진이에게 카톡으로 사진을 전송하며 말했다. 다음 주말에 혼자 요양원 가게 되면 연락하라고, 내 차로 같이 가자고. 외삼촌을 한 번 더 문병하고 싶었다.
다음 주말이 되기 이틀 전, 목요일 오전에 막내 외삼촌은 돌아가셨다. 부고 소식을 듣자마자 둘째 외삼촌과 외숙모, 엄마는 인천의 장례식장으로 부리나케 출발했다. 목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나는 엄마가 잘 도착했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했다.
"잘 왔지. 동생이 죽었는데, 나는 지금 떡을 먹는다. 떡이 입으로 들어가네."
전화기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쓸쓸하게 들렸다.
나는 금요일에 조퇴를 하고 장례식장에 갔다. 오랜만에 사촌들과 이모들을 만났다. 어느덧 엄마의 형제들은 70대가 되었고, 그 자녀들은 30~50대가 되었다. 큰 외삼촌의 아들인 지훈(가명)이 오빠는 중년의 신사가 되어 있었다. 돌아가신 큰 외삼촌과 너무도 흡사한 모습에 놀랐다. 지훈이 오빠는 큰 외삼촌이 하던 사진관을 이어받아 오랫동안 해 왔는데, 얼마 전 가게 문을 닫았다고 했다. 코로나 때에도 끄떡없이 해 왔던 사진관이었다.
"아니 왜 문을 닫았어? 어렸을 때 사진관 갔던 기억도 있고, 사진관 이름 쓰여 있는 천으로 된 가방도 다 생각나고... 속상하네."
"내가 눈이 너무 나빠져 더 이상 컴퓨터 작업을 하기 어려워서 어쩔 수 없었어. 사진관 닫는다니까 단골들이 찾아와서 계속 하면 안 되냐고, 자기네 가족의 추억이 담겨 있다며 어찌나 아쉬워하는지 말이야..."
"오빠, 나도 넘 아쉬워."
같은 장소에서 50년 넘게 대를 넘게 해 온 사진관은 그 지역의 랜드마크였다. 외삼촌네 사진관이 없어졌다는 말에 왠지 모를 섭섭함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어렸을 때 외갓집에 가면, 가끔 외삼촌의 사진관에 들렀었다. 엄마와 큰외삼촌이 얘기하는 동안 가게에 진열되어 있던 카메라를 구경하며 놀았었다. 사진관 앞에 있는 백화점에서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었던 기억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저녁 늦게 예산에 사는 막내 이모네 식구들이 왔다. 사촌들 중에 가장 막내인 30대 현진이(가명)가 곧 결혼할 신랑감까지 같이 왔다. 막내 이모는 하나밖에 없는 사위라며 예비사위를 소개했다. 막내 이모네 가족들이 좀 떨어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아서 긴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장례식장에는 외갓집의 친인척들, 막내 외삼촌의 친구들, 미진이와 형식이의 회사 사람들 등 막내 외삼촌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 파도처럼 왔다 갔다. 그들은 고인을 기리고,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다 갔다. 그리고, 그들은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 삶을 살아가겠지.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장례식장 입구에 줄지어 늘어선 화환에 적힌 각종 회사와 단체명을 보았다. 근조 화환을 보면 고인이나 유족이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안내판에는 고인이 된 막내 외삼촌의 이름과 유족인 딸과 사위, 아들 이름만이 단출하게 적혀 있었다. 몇 달 전 오빠가 보여 준 할머니의 장례식장 안내판 사진이 떠올랐다. 101세로 돌아가신 할머니는 자녀 8명과 손주들만으로도 유족란의 이름이 빽빽하게 들어가 배우자들의 이름은 적지도 않았다고 했다.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몸은 피곤했지만, 한참 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세상을 왔다 간다는 것은 무엇을 남기고 가는 걸까. 혈육이나 해 왔던 일, 사람들과 맺었던 다양한 관계들일까... 나는 지금 무엇을 남기며 살고 있는 걸까. 책장에서 오래전 막내 외삼촌이 보내 준 스베덴 보리의 <위대한 선물>을 찾았다. 문득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