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멤버와의 치유의 시간

힐링 카풀팀 변천사, 다섯 번째 이야기

by 은향

올해 우리 카풀팀은 또 멤버가 바뀌었다. 보건 샘은 학교를 그만두셨고, A 샘은 다른 학교로 가게 되어 나와 영양 샘 이렇게 단 둘로 단출해졌다. 그러던 중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 H부장님이 우리 카풀팀과 함께 할 의사를 밝혀 왔다.


H부장님은 다른 동료와 작년까지 카풀을 했었는데, 그 동료가 올해 전근을 가면서 혼자 다니게 된 상황이었다. H부장님은 평소에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고, 사석에서 언니라고 부를만큼 믿고 의지하는 분이었기에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았다. 영양 샘도 H 부장님을 좋아하는 터라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H부장님과 함께 새롭게 카풀을 이어나갔다.



이번 여름, 우리가 함께 한 첫 번째 힐링 공간은 수목원.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거리에 아주 넓고 잘 가꾸어진 수목원이 있다. 아주 오래 전 한 두번 가보고 그 동안 왜 안 갔는지 후회가 될 정도로 좋은 휴식 장소이다. 일단, 주차도 편하고 수목원이 굉장히 넓어서 코로나 상황에서도 사람이 북적이지 않아 안심이 된다. 돗자리와 간단한 먹거리만 준비해 가면 하루 종일 편안하게 쉬고 오기에 딱 좋았다.


우리는 돗자리 펴놓고 먹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다가 졸리면 자고, 저녁까지 편안하게 쉬고 오기로 했다. 각자 집에서 과일과 음료 등 간식거리와 돗자리를 챙겨오기로 했다. 전날부터 우리 카풀팀의 단톡방이 또 분주해졌다.


- (H부장님) 아이스박스 있으신 분 좀 챙겨오세요.

- (영양 샘) 제가 집에 아주 좋은 것 있으니 걱정마셔요~

- (나) 저는 돗자리가 작은 것밖에 없으니 혹시 2개 있으신 분은 2개 챙겨오세요. 전 집에 마땅한 간식이 없어 음료 준비하고, 가면서 김밥 살게요.

- (H부장님) 우리 집에 돗자리 2개 있어요.

- (영양 샘) 운전은 제가 할게요. 내일 저희 집에서 10시 40분 출발, **마을 10시 40분 경유, 수목원 11시 도착 예정입니다.

- (H부장님) 나는 아침에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11시까지 수목원으로 따로 갈게요.



아침에 영양 샘 차를 타고 내 짐을 뒷좌석에 싣다가 나는 빵, 터지고 말았다. 영양 샘이 H부장님 대신 준비한 아이스박스가 **컬리에서 받은 엄청난 사이즈의 크기로 뒷좌석의 반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샘, 이 아이스박스만 보면, 우리 2박3일로 캠핑장 가는 줄 알겠어요. 호호!"

"크기만 크지 안에 든 건 별로 없어요. 집에 아이스박스가 이것밖에 없어서요."


수목원에 도착해 입장권을 보여주며 들어가려는데, 직원 분이 아이스박스를 보면서 거기에 뭐가 들었느냐고 따로 묻기도 했다.


"아, 그냥 물이랑 얼음이랑 간식 같은 거에요..."

"네, 좋은 시간 되세요."


먼저 도착한 우리는 쉬기 좋은 장소를 물색했다. 우리가 생각한 좋은 쉼터의 조건은 나무 그늘이 넓고, 화장실이 멀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이 모두를 만족하는 장소로 산림전시관 근처에 있는 큰 나무 아래에 자리를 폈다. 둘레에 작은 나무들이 가림막 역할을 해 주고, 아래로는 작은 분수와 원두막도 있어 뷰까지 아름다운 완벽한 장소였다. 기분 좋게 돗자리를 펴고 한 10분쯤 누워 쉬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우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지나갔다.


"저 아저씨는 왜 우리를 저렇게 쳐다보고 갈까요?"

"그러게요. 수목원에서 돗자리 펴고 누워있는 사람 처음 봤나, 기분 나쁘게..."


이런 대화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여직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지금 이 자리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곳입니다. 돌로 주변이 둘러져 있는 곳은 모두 화단이니 이 곳을 제외한 곳으로 이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래요? 몰랐어요. 그럼, 이 바로 아래는 괜찮나요?"

"네, 괜찮습니다."


표지판도 없이 화단이라니... 할 수 없이 첫 번째 장소의 조금 아래 쪽으로 짐을 다 옮기고 돗자리를 다시 깔았다. 두 번째 장소는 첫 번째 장소에 비해 나무 그늘이 좀 적고, 길에서는 거리가 있으나 나무 가림막이 없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이 신경쓰였다.



다시 장소를 옮겨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H부장님이 도착했다. H부장님에게 그간의 상황을 전하자, 오는 길에 아주 좋은 장소를 발견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며 이따 오후에 가 봐서 자리가 비면 옮기기로 했다.


일단 배가 고프니 점심을 먹고 좀 쉬기로 했다. 워낙 김밥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밖에서 돗자리 펴고 먹는 김밥은 유독 더 맛있게 느껴진다. H부장님이 싸 온 과일로 후식을 먹고, 탄산수에 블루베리 원액을 넣어 에이드까지 만들어 먹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었다. 영양 샘이 가져 온 블루투스 스피커로 잔잔한 음악까지 틀어 놓으니 자연 속 힐링 카페가 다름없었다.


잠시 쉬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근처에 있는 산림전시관에 가보니 코로나로 인해 건물 자체가 닫혀 있어 화장실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거리가 좀 먼 다른 화장실을 다녀오며, H부장님과 함께 더 좋은 장소가 있는지 물색했다. H부장님이 아침에 오는 길에 봐 둔 장소는 그 화장실과도 가까운 곳이었는데, 마침 사람들이 가고 없었다. H부장님에게 그 곳을 찜하고 있으라고 하고, 나와 영양 샘이 돗자리를 접고 짐을 챙겨 다시 장소를 이동했다.


물향기-1.jpg 우리 세 명이 챙겨간 짐들. 아이스박스, 돗자리, 우산(가림막), 음료, 과일, 김밥, 과자 등 다양한 먹거리가 들어 있다.

세 번째 장소는 나무 그늘도 넓고 화장실이 가까운 점이 아주 좋았다. 또 긴 나무벤치가 있어 짐을 놓거나 간식을 먹기에도 편리했다. 우리는 신이 나서 다시 돗자리를 펴고 누워서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잠시 누워보니 세 번째 장소의 단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까 장소에 비해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 근접해서 누워 있는 것이 좀 불편했다. H부장님이 챙겨 온 큰 우산을 펴고 가린 후 다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우리를 괴롭히는 존재가 또 등장했다. 누워 있는 우리의 몸을 종횡무진하며 바쁘게 돌아다니는 커다란 개미들. 어찌나 빠른지 잡을 수조차 없었다. 연신 개미들을 쫓느라 책을 제대로 읽을 수도 잠을 편히 잘 수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아무래도 다른 장소를 모색하는 게 낫겠다는 의미를 주고 받았다. 세 번째 짐을 싸니 이제 챙기는 속도로 빨라지고 돗자리 접는 것도 수월하기까지 했다. 각자 가져 온 세 사람의 짐이 꽤 되었으나 개의치 않고 자리를 털었다.


넓은 수목원을 돌아 우리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최적의 장소를 드디어 발견했다. 네 번째 장소는 화장실도 가깝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뜸했다. 나무 그늘도 넓었으며, 돗자리를 폈는데 개미도 없었다. 역시 발품을 팔아야 좋은 장소를 찾는 거지, 생각하며 기분 좋게 누웠다. 짐을 옮기느라 허기진 배에 삶은 감자와 과일, 음료로 급격히 당 보충을 해 주었다. 먹고나니 잠이 솔솔 왔다.



수목원을 샅샅이 돌아 비로소 찾은 최적의 장소에 우리는 " A공간"으로 이름을 붙였다. 카풀하면서 아침 출근길 코스를 A, B, C코스로 명명했듯이, 오늘 찾은 수목원의 장소의 순위를 매겼다. 화장실 근처에 벤치가 있는 곳은 B, 나무 그늘이 적고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는 곳은 C공간으로 정했다.


하지만, 이마저 큰 의미가 없음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잠시 낮잠을 자는데 온 몸이 가렵고 팔다리 여기저기가 발갛게 부어 올랐다. A공간에 개미는 없었으나 벌레와 모기가 많았던 것이다. 세 번의 이동 끝에 얻은 결론은 그 어느 공간도 우리가 원하는 모든 조건을 만족하지는 못했다. 화장실이 가까우면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 불편하거나, 사람들은 뜸하면 나무 그늘이 적고 화장실이 멀거나, 각 장소마다 장단점이 있었다. 각 장소의 장단점 중에 자신이 가장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을 고려하여 단점은 과감하게 포기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이와 같지 않을까. 세상에 다 좋은 것도 다 나쁜 것도 없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공간이 없듯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존재도 없고, 모든 것이 다 좋기만 한 일도 없다. 너무나 간단하고 뻔한 이치이지만, 새삼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몇몇 사람들로 인해 일하면서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지만, 또다른 누군가로 인해 힘을 얻고 웃을 수 있었다. 나를 이해해주고 위로와 격려를 해 주는 존재를 통해 위로를 얻고, 힘들게 하는 존재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떨쳐버릴 필요가 있다. '그래도 지금 이 정도면 괜찮네.'라고 긍정적으로 여기고 감사하게 여기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요즘 왜 이리 깨달음이 많아지고 있나. 40이 넘어서야 제대로 철드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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