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양평으로 1박 2일 출장을 다녀왔다. 토요일 점심 무렵 출장이 끝났는데, 아름다운 가을을 모른척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달 넘게 공동으로 하는 어떤 작업에 몰두하느라 추석 연휴 내내, 그리고 한글날 휴일까지 날 좋은 가을에 바깥바람 한 번 못 쐬고 집콕하면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던 터라 더더욱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출장 중에 급히 검색하여 양평에 갈만 한 곳을 몇 군데 추렸다. 두물머리와 용문사는 예전에 가 본 적이 있었지만, 이곳의 가을 풍경이 보고 싶어 다시 가기로 했다. 마침 장이 열리는 맑은물시장 구경도 하고, 근처에 갈산공원 산책로를 가볍게 걷는 코스도 포함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용문사까지 올라가는 길에서 벌써 가을 향기가 물씬 느껴졌다. 색색들이 화려한 단풍이 눈길을 끌었고, 맑은 하늘과 청량한 공기는 기분까지 시원하게 해 주었다. 친구나 가족들과 가을여행을 즐기는 인파 속에서 문득 혼자온 사람이 나 말고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나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용문사로 올라가니, 황금색 용포를 입은 황제처럼 1,100년 넘은 은행나무가 품위 있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고약한 은행 냄새 따위야 응당 감내해야 할 것으로 여겨질 만큼 은행나무의 크기와 화려함에 압도당했다. 천연기념물인 이 은행나무는 세종 때 당상직첩까지 하사 받았으며, 오랜 세월 전란 속에서도 살아남아 천왕목으로 불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핸드폰으로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용문사의 주인공답게 은행나무 주변으로 사람들이 계속 몰려오기를 반복했다. 은행나무가 잘 보이는 벤치에 앉아 샌드위치를 천천히 먹으며 충분히 경치를 감상했다.
내려오는 길에서 어느 분이 친구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길래 기꺼이 여러 장을 찍어드렸다. 그리고 나도 독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여 붉게 물든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예쁜 사진을 두 장 건질 수 있었다.
<용문사 은행나무와 단풍>
다음 코스는 갈산 공원. 양평읍사무소 주차장이 만차라서 생활체육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공원 쪽으로 갔다. 가다 보니 실내탁구장 주차장이 더 가깝고 넓었다. 갈산 공원 입구를 몰라 물어물어 찾아가 보니 남한강 물길을 따라 예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자전거길도 잘 되어 있어서 자전거를 타는 일행들도 꽤 많았다. 시간이 많았으면 강을 보며 긴 산책로를 따라 쭉 산책을 하고 싶었으나 맑은물시장 쪽으로 가는 짧은 코스를 걷는 것으로 만족했다.
갈산 공원에서 걸어서 십 여분이면 맑은물시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말이라서 시장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과일과 채소, 먹거리들이 가득했다. 내가 좋아하는 꽈배기와 찹쌀도넛을 사려고 가게를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대신 인절미와 약식, 모시 송편 등 떡을 세 팩 샀다.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니 어렸을 때 갔던 시골 장터의 느낌도 나고, 이것저것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남한강을 보며 걷는 갈산공원 산책로>
마지막으로 간 곳은 두물머리. 전에도 와 봤지만, 두물머리의 가을을 느끼고 싶어 차가 심하게 막히는 곳인 줄 알면서도 다시 왔다. 역시 이번에도 좁은 두물머리 입구까지 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물머리의 주차장은 3개. 두물머리 근처에 유료주차장은 가깝지만, 나오는 시간이 오히려 더 걸리기 때문에 패스. 교각 아래 두물머리 제5공용주차장은 장소가 비좁다고 하여 패스. 다행히 두물머리 입구 쪽 제3공영 주차장에 자리가 있었다. 여기에서는 두물머리까지 15분 정도 걸어야 했지만, 나중에 차를 뺄 때는 오히려 이곳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두물머리까지 걸어가는 길도 예쁘고, 산책 삼아 걷기에 좋았다.
은행나무와 액자 틀이 있는 두물머리 포토존에는 정말 사람이 많았다. 포토존에서 사진 찍을 엄두를 낼 수가 없이 대기줄이 길어 사람들이 사진 찍고 나갈 때 풍경 사진만 남겼다.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졌다. 산책로를 따라 두물머리 나루터에서 두물경까지 갈수록 한산하고, 깊은 가을 풍경이 아름답게 드러났다. 불그스름한 옷을 입고 있는 아름드리나무들과 티 없이 청명한 하늘, 그리고 푸른 풀빛의 조화로운 자연은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었다.
저녁이 되니 슬슬 썰렁한 기운이 감돌았다. 돌아가기 아쉬운 마음에 셔터를 눌러 멋진 풍경을 몇 장 더 담았다. 이곳에서도 역시 혼자 온 사람은 나 혼자뿐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할까 하다가 그냥 셀피를 찍고, 다시 주차장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가 많이 막혀서 돌아오는 길은 국도로 택했다. 두물머리 쪽에서 나올 때 덜 막혀 보이는 길로 좌회전을 하는 바람에 한참 동안 길을 헤매고 돌아가야 했다. 1박 2일 출장 끝에 하루 종일 사람들 북적이는 명소를 돌아다니느라 몸은 피곤했으나 이렇게 아름다운 가을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한없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