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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Jul 29. 2024

터지기 일보 직전

2부. 처절한 연대로 방어한 1시간의 시수

  이번에도 또 교무부장이었다. 얼마 전 다른 일로 2층 본교무실에 갔다가 교무부장이 시간표를 짜는 수업계 담당 실무사와 얘기하는 것을 얼핏 들었다.

  "그러니까 영어과 진로 5시간은 국어과로 가고, 3시간은 수학과로 가고..."

 올해 2월, 시수배정 협의 당일에 갑자기 국어과가 진로 3시간을 가져가야 한다고 통보해서 받아왔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계속 국어과가 어쩌고 하길래 교무부 쪽으로 가서 물었다.


  "부장님, 국어과가 왜요?"

  "아, 국어과가 2학기에 진로 5시간을 더 가져가야 해서요."

  교무부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네? 갑자기 왜요? 우리 이미 진로 3시간 맡고 있어요."

  "2학기에 문학 4 단위가 독서 3 단위로 바뀌어서 시수가 줄잖아요."

  "그 대신 2학년 고전 읽기가 2 단위에서 3 단위로 바뀌어서 4시간 늘기도 해요."

  "그거까지 계산해도 전체적으로 국어과 시수가 줄어요. 영어과 2학기 시수가 늘어서 시수가 줄어드는 국어과와 수학과가 영어과에서 하던 진로 과목을 맡아야 해요."

  "작년에 국어과 티오감 시키면서 기타 과목 안 주기로 해 놓고, 1학기 때도 3시간 줬는데 2학기에 5시간이나 더 하라고요?"

  "어쩔 수 없어요. 평균 시수보다 적은 교과가 가져가야 하니까."


  마침 교무실에 들어오던 교감님이 나와 교무부장이 하는 얘기를 듣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상황 설명을 듣고 난 교감님은 "전체 시수 잘 확인해서 고르게 배정하세요."라고 교무부장에게 말했다.



  며칠 후 수요일 아침. 교무부장이 국영수 교과 부장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2학기 수업시수 배당 안내

A. 2학기에는 교과 이수단위 변경으로, 진로-미과탐-심리학을

  [국어과 - 진로 5, 미과탐 3], [영어과 - 진로 2], [수학과 - 진로 4, 심리학 5]으로 배정할 예정입니다.

B. 의견이 없으시면, A에 따라  아래 링크 2번째 탭에 국영수 선생님 담당과목과 시수배당을 기입해 주셔요.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스러웠다. 국어과 부장인 나는 해당 내용을 국어과 샘들한테 보내고, 국어과 협의를 하자고 했다. 난데없이 추가로 날아든 5시간 수업에 여러 국어 선생님들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고 문의가 빗발쳤다. 며칠 전에 교무부에서 얼핏 진로 5시간 얘기 들었는데, 오늘 갑자기 이렇게 메시지가 온 거라서 나 역시 당황스럽다고 답했다. 


  한 시간 후 2학년 부 조 샘과 이 샘이 노트북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시수 계산이 뭔가 잘못되었다며 같이 확인해 보자고 했다. 1학기 시수와 2학기 시수를 꼼꼼히 확인해 보니 교무부장의 계산이 틀렸다. 1년 치 시수 평균을 내 보니 국어과가 영, 수, 과학과보다 평균 시수가 가장 높았다. 교사수가 같은 수학과보다도 시수가 2시간이나 더 많았다.  2학년 부 샘들은 이거 당장 가서 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번에 교무부장한테 나 혼자 얘기하니까 안 되겠더라고요. 이따 같이 가서 얘기해요."


  다른 국어선생님들과도 몇 차례의 통화 후, 소통 안 되는 교무부장한테 말해봤자 소용없으니 교감님과 같이 논의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들 했다. 마침 6교시에 교무부장이나 많은 국어선생님들이 공강이라 그때 모이기로 하고, 국어과 부장인 내가 교감과 교무부장에게 6교시에 시수 관련 논의를 했으면 한다고 메시지를 남겨 놓았다.   


  5교시에 외부 출장에서 돌아온 교감님한테 전화가 왔다. 

  "메시지 확인했어요. 미과탐 3시간 때문에 그러나요?"

  "미과탐 3시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얘기를 해 봐요."

  "지금 전화로 교감 선생님께 말씀드리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이따 6교시에 다 같이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내가 6교시에 교육과정부 윤 선생님 대신 2학년 1반 교실에 임장을 들어가야 해요."

  "아니, 왜 교감 선생님이 임장을....?"

  "오늘 교육과정부에  '교육과정 컨설턴트' 행사 때문에 바쁜 거 알죠? 지금 교육과정 부장도 병가 중이고, 윤 선생님이 그 업무 추진하느라 수업에 들어갈 상황이 아니라 내가 들어가게 됐어요."

  "보강 들어갈 다른 분이 없으실까요? 부장님 대신 오신 선생님도 있고..."

  "그분은 시간 강사잖아요. 시간 강사한테 한 시간 보강시키면, 그게 다 돈이고요. 선생님, 너무 일방적이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7교시는 시간 괜찮으실까요?"

  "7교시 괜찮습니다."

  "네, 국어 선생님들한테 7교시로 다시 전달하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이상하게 기분이 상했다. 왜 나한테 이렇게 딱딱하고 사무적이다 못해 적대적으로 말씀하시나 싶었다. 교감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말을 나눌 일이 별로 없어 잘 모르지만, 주변의 부장들이나 다른 선생님들한테 합리적이고 좋은 분이라고 들었었는데, 오늘 나에 대한 태도는 분명 뭔가 부정적이고 시비조였다. 


  국어 선생님들한테 교감 선생님이 6교시 임장을 해야 해서 7교시로 회의가 미뤄졌다고 다시 안내를 했다. 내 메시지 2학년 부 샘들이 이렇게 회신했다.

 - 교육과정 컨설턴트 때문에 시청각실에 3개 반 내려보내는 것을 제비 뽑기 했는데요. 그럼 처음부터 윤샘이 맡은 2학년 1반을 내려보냈으면 됐는데요. 뭐 하러 교감 선생님이 보강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최 샘은 "교감 선생님 임장 때문이라면, 내가 협의 안 들어가고 대신 2학년 1반 임장 들어갈게요."라고 했다.   

  5교시가 끝나기 10분 전, 교감 선생님한테 다시 메시지가 왔다. 다른 사람이 임장 들어가게 됐으니 원래대로 6교시에 보자고. 급하게 다시 국어 선생님들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졸업앨범 촬영으로 운동장에 나가 있는 3학년 부 샘들한테는 따로 연락을 했다. 그 사이에 나는 회의 자료까지 만들었다. 교무부장이 구글 시트에 올려놓은 전체 교과 시수표를 캡처하고, 국영수과 1,2학기 교과 시수와 교양 시수, 평균 시수까지 계산해서 깔끔하게 표 안에 보기 좋게 정리했다. 평균시수가 가장 높은 국어과 시수에 붉은색으로 굵게 표시까지 했다. 국어 선생님들한테 메신저로 회의에서 논의할 내용과 시수 계산표를 보내고 출력까지 마치자 6교시 시작종이 울렸다. 


  출력물을 들고 정신없이 도서관으로 갔다. 잠시 후 교무부장과 교감 님이 들어왔다. 국어과 샘들은 회의 시간이 변경된 것을 확인하지 못했는지 2학년 부 샘들과 몇 명뿐이었다. 최 샘이 운동장에 있는 3학년 부 샘들한테 급하게 연락해서 5분 만에 겨우 모였다. 교무부장이 구글에 올려놓은 본인이 계산한 시수표를 출력해서 나누어 주었다. 나도 만들어 놓은 회의 자료를 배부했다. 경직된 분위기에서 내가 말을 열었다.


  "바쁘신데 급하게 회의 요청드려 죄송하고,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아침에 교무부장님의 메신저 내용을 받고, 국어 선생님들의 문의가 빗발쳤습니다. 저 역시 많이 당황했고요.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진로와 교양 과목은 시수가 적은 교과에 평균 시수 고려하여 배분한다고 하셨는데, 교무 부장님이 계산한 시수가 잘못 됐습니다. 제가 나눠드린 표를 보시면, 1,2학기 1년 시수를 확인해 보니 국어과 평균 시수가 가장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사수가 같은 수학과에 비해 2시간이나 더 많습니다."

  "내가 나눠드린 2학기 시수표 보세요. 국어과가 가장 시수가 적어요."

  교무부장이 내 말을 자르고 말했다. 

  "그건, 2학기 시수만 봤을 때죠. 1,2학기 시수를 같이 봐야죠."

  내 말을 듣고, 교감 님은 교무부장에게 시수 계산을 다시 해 보라고 말했다. 나는 이어서 두 가지 문제점을 더 말했다. 시수 배정에 대해 매번 닥쳐서 통보하는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꼬집었다. 2월에 시수 배정표 줬을 때, 당연히 2학기 교양과목 시수까지 알려줬어야 했다고. 국어과는 이미 2월에 1,2학기 시수 배정을 다 마친 상황에서 갑자기 5시간을 얹어주니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고. 또 한 가지는 진로나 교양 과목이나 학년이나 과목에 대해 선택권을 주지 않고, 어떤 합당한 설명 없이 교무부에서 몇 학년 진로 몇 시간, 무슨 과목 몇 시간을 임의로 주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국어 선생님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그 와중에 교무부장은 2학기 시수를 보면, 국어과가 가장 적지 않느냐는 말만 반복했다. 도무지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이다. 답답하고 화가 나서 국어 선생님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요!"

  "목소리 높이지 마세요. 여기 목소리 다 높일 수 있습니다. 나도 목소리 높아요. 그럼, 싸우자는 거고요. 다들 목소리 낮춰 말하세요."

  교감 님은 목소리를 높인 국어 선생님들한테 딱딱하게 말했다. 다시 국어 선생님들이 상황에 대해 한 마디씩 발언했다. 한참 동안의 이야기 끝에 교감 님이 입을 열었다.


  "교무부장님은 시수 계산 다시 하고, 수학과도 시수 협의 중인 걸로 알고 있는데 재안내하세요. 시수 배정에 대해 작년에 올해 교원수 정해졌을 때 함께 안내를 했었어야 했는데, 그걸 놓친 부분 인정합니다. 다음부터는 시수 배정은 미리 안내하도록 하겠고요. 진로나 교양 과목 배정에 대해서도 해당 교과 부장들이 모여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지금 국어 선생님들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국어과 시수가 더 많으니 고르게 배정해 주세요. 수학과가 우리 보다 2시간 적으니 수학과에..."

  내가 하는 말을 3학년 부 김 샘이 급하게 막았다.

  "굳이 우리가 어느 과에 어떻게 하라고 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요. 원래 교무부에서 시수가 공평하게 배분하는 것이니 계산해 보시고, 저희보다 시수 적은 과에 진로 시간을 주시면 됩니다."   

  "그런데, 다른 과들은 이미 협의가 다 됐을 텐데 그렇게 되면 국어과 때문에 다 틀어지는 건데요. 그러면 국어과 이미지도 그렇고, 전체 다른 교과에서 말들이 있을 텐데 그런 거 감당하는 거 괜찮습니까?"


  교감 님이 느닷없이 엉뚱한 논리를 폈다. 국어 선생님들은 순간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을 교환했다. 왜 이 모든 것이 국어과 때문이란 말인가. 처음부터 시수 계산을 제대로 못한 교무부장 탓이지. 

  "처음부터 시수 적은 교과에 기타 과목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게 원칙이지 않았나요? 그 원칙대로 해 주세요."

  2학년 부 조 샘이 말했다. 다른 국어 선생님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2월에 시수 배정표 받고, 동시 수업이 너무 많아서 서로 조금씩 배려하면서 힘들게 하루 종일 걸려서 겨우 시간표를 짰다. 갑자기 2학기에 5시간이 더 들어오니 국어과 입장에서는 너무 당황스럽다. 국어 선생님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침묵하던 교감 님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선생님들의 뜻은 알겠고요. 일단, 시수 계산 다시 해서 시수 적은 과에 다시 전달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과에서 안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점은 아셨으면 합니다.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기로 하죠."

  교감 님과 교무부장이 먼저 일어섰고, 국어 선생님들은 자리에 남아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다른 과에서 안 받아들이면, 그럼 우리는? 우리는 왜 받아들여야 해요?"

  "교무부장은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답답해서 정말... 시수 계산 다시 해서 준 유인물의 표를 보면 다 나와있는데, 계속 2학기 시수만 말하고..."

  "교감 님도 참 이상하시네. 이건 분명히 교무부장이 잘못한 건데, 교무부장 실드만 치려하고, 실드가 쳐 지지도 않았지만... 왜 이 상황에 대해 국어과 탓을 하시지?"

  "요즘 아무리 본인이 병가 낸 교육과정부 신경 쓰고, 이것저것 하는 일이 많아서 과부하가 왔다 해도 우리한테 너무 적대적이시네요. 마치 봉기하러 온 시위대 대하듯이 하잖아요."

  국어 선생님들은 한참 동안 하소연을 늘어놓고 헤어졌다. 


  퇴근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무렵, 교감 님이 내가 있는 교무실에 올라오셨다.

  "수학과에서 진로 1시간 더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국어과는 진로 4시간, 미과탐 3시간 하면 돼요. 그럼 됐죠?"

  국어 선생님들한테 결정된 사항을 바로 메시지로 알렸다. 느닷없는 교무부장의 메시지에 아침부터 퇴근 시간까지 정신없이 대응하고, 처절하게 연대한 결과였다. 진로 1시간을 겨우 막아냈지만, 승리했다고 하기엔 뭔가 기쁘지만은 않은 씁쓸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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