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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향 Aug 25. 2024

터지기 일보직전(3)

3부. 결국 상처만 남은 국어과 내전

  2학기에 현문감을 하기로 되어 있는 3학년부 김 샘이 중요하고도 현실적인 문제를 짚었다. 

  교무부장과 교감 님, 국어과의 처절한 외전을 치른 후 교무부장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 그 어떤 사과도 없고, 늘 그렇듯이 아무런 생각이 없는 태도였다. 하지만, 그 일 이후로 교감 님과는 뭐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공기로도 느껴지는 어딘가 신경 쓰이는 불편함이 생겼다.  


  진로 1시간을 줄여서 받게 되었어도 기존 진로 3시간 외에 추가된 4시간의 교양 과목 시수까지 총 7 시수를 9명의 국어 교사가 어떻게 나눠 가져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내가 국어과 부장이라서 교과 협의를 소집해야 했다. 이 시수를 어떻게 나눠야 좋을지 몇 가지 안을 준비하려 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그런 고민을 한참 하던 차에 복도에서 우연히 3학년부 김 선생님을 마주쳤다.

  "2학기에는 내가 2학년 고전읽기 수업을 안 맡게 되어 시수가 줄어드니, 추가된 교양 시수 4시간을 다 가져갈게요."

  "4시간을 다요? 그걸 혼자 다 맡기엔 너무 많아요. 안 그래도 지금 어떻게 나눌지 고민 중인데, 한 사람이 부담을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더 좋은 방안을 생각해 볼게요. 그렇게 말해준 것만으로도 너무 고마워요."

  사실 김 선생님은 워낙 말투가 강하고 성격이 센 부분이 있어서 어려웠는데, 올해 근처에서 자주 보다 보니 사람이 생각보다 괜찮은 점이 보였다. 센 말투와 달리 은근히 남을 배려해 주는 사람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김 샘의 말에 고마운 마음이 밀려왔다. 


  교무실에 올라와서 나와 같은 비담임인 최 샘한테 연락을 해서 김 샘의  제안을 말하고, 교양 시수를 나누는 좋은 방법을 같이 생각하자고 했다. 

  "샘, 그런데 미과탐 3시간은 어차피 3개 반 동시수업이라 한 명이 맡을 수 없을걸요."

  정신이 없어서 미과탐이 동시 수업인 것을 잊고 있었다. 

  "아, 맞다. 미과탐이 동시수업이었죠?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는 2학기에 1시간 시수가 늘더라도 교양과목 1시간을 가져갈 생각이었는데, 샘은 어때요?"

  "저도 교양 1시간은 가져갈 생각이었어요."

  내 말에 최 샘도 1시간을 흔쾌히 맡겠다고 답했다. 최샘과 나는 비담임이라서 올해 국어과에서 동시 수업으로 된 3과목을 도맡게 되어 담당하는 과목과 시수가 같다. 

  "그럼, 샘이랑 내가 미과탐을 한 시간씩 가져가기로 해요. 나머지 두 시간은 2학기에 시수가 주는 3학년부 샘들한테 맡아달라고 내가 얘기해 볼게요."

  나는 교양 과목 배분 안을 2가지로 생각해서 3학년부 김 샘한테 가져갔다.

  "좋아요. 근데, 샘이랑 최 샘은 비담임이라 지금도 담당 과목이 3개인데 미과탐까지 하게 되면 4과목인데, 괜찮겠어요?"

  "어쩔 수 없죠. 뭐. 그래도 3학년부 샘들이 한 시간씩 맡아주시니 서로 불편한 교과 협의를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고마워요." 

  "아니에요. 우린 어차피 2학기에 수업 시수가 주는데요 뭐. 이 샘이랑 협의해서 미과탐과 진로 중 누가 어떤 과목을 담당할지 정해서 말해 줄게요."

  3학년부 샘들의 협조 덕분에 추가된 교양 4시간이 잘 배분되었다. 국어과 샘들한테 메신저로 2학기 시수 내용을 정리해서 보내고 별도 협의는 안 한다고 가벼운 마음으로 알렸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니 2학년부 샘들이 국어과 협의를 했으면 한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2학년 샘들은 1학기에 맡은 진로 1시간씩을 2학기에 그대로 가져가기로 이미 학기 초에 얘기가 됐었는데, 무슨 이유로 협의를 하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1학기에 4 단위였던 문학 과목이 2학기에는 3 단위 독서로 바뀌면서 오히려 시수가 1시간씩 줄어드는데, 왜 협의를 하자는 걸까 불안했다. 


  급하게 국어과 선생님들한테 메신저로 2학기 시수 협의 날짜를 공지했다. 며칠 전 교무부장과 교감 님과의 불편한 외전을 벌인 그 자리에서 나와 최 샘은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상처로 너덜너덜해졌다. 2학년부 조 샘과 이 샘의 주장은 이러했다.


 - 1학기에 문학, 2학기에는 독서를 담당하다 보니 과목이 바뀌어 2학년 샘들은 교과세특 쓰는 반이 많다. 문학이나 독서 과목은 지필평가도 한 학기에 2번씩 보는 내신 9등급 과목이라 평가에 대한 피로도 높은데, 진로까지 한 반씩 맡으니 힘들다.

 - 비담임 샘들이 담당하는 2학년과 3학년 고전읽기, 현대문학감상은 ABC 절대평가이고, 지필 평가도 적게 보지 않느냐. 3학년은 2학기에 수업 부담도 적으니, 차라리 본인들이 3학년 현문감과 미과탐 가져가겠으니, 2학년 독서 과목을 비담임 2명이 1 반씩 가져가라.


  2학년 샘들의 요구는 1학기에 정해 놓은 수업 배정을 완전히 다 뒤집는 의견이었다. 3학년 현문감과 관련하여 아이들한테 이미 2학기 수업은 현대 소설을 할 계획이라고 전달까지 했는데, 이런 식으로 담당 교사가 바뀐다는 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2학년 선생님들 의견대로라면 2학년 독서와 3학년 현문감과 미과탐을 하겠다는 건데요. 3과목을 담당하는 교사가 다 다른데, 협의하는 건 괜찮으신 거예요?"

  2학년 샘들의 요구대로라면 2학년 샘들과 비담임 2명이 독서과목을 맡게 되는데, 이런 불편한 상황을 겪고 나서 자주 만나 수업과 평가에 대한 협의를 해야 하는 것이 괜찮겠냐는 전제가 깔린 최 샘의 말이었다. 2학년 샘들이 순간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래도 할 수 없죠 뭐."


  그러자 2학기에 현문감을 담당하기로 되어 있는 3학년부 김 샘이 중요하고도 현실적인 문제를 짚었다.  

  "그런데요. 지금은 비담임 두 분이 동시수업 맡아주시면서 평가계획을 비롯해서 모든 수업 준비와 학습지 준비, 수업 자료를 다 만들어 주시는데요. 2학년 선생님들이 현문감을 맡으신다면, 현문감 수업과 평가를 총괄해서 모두 준비해 주시는 거 맞죠?"

  2학년 샘들은 막상 본인들이 그 과목의 수업과 평가를 도맡아 준비하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전에 비담임이 맡고 있는 3개 과목은 지필도 적고 수행 위주라서 수업이 수월하고, 3학년 2학기라서 거의 하는 게 없다고 내뱉은 말과는 다른 표정이었다.


  "그럼, 우리 2학년에서 맡고 있는 진로 1시간씩 2시간이라도 가져가 줘요."

  한참을 고민하더니 조샘은 진로 1시간씩을 넘기는 쪽으로 이내 전략을 바꿨다. 그들은 자신들이 맡은 수업이 가장 힘들다는 하소연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맡은 일은 수월하게 치부하는 식의 말들을 내뱉었고, 여러 사람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냈다.


  긴 시간의 설왕설래 끝에 또 다른 비담임이면서 1학년 부장인 조 부장과 3학년부 김샘이 2학기 시수가 줄어들어 2학년 샘들이 하던 진로를 맡기로 했다. 조 부장은 1학기에 1학년 국어와 2학년 문학을 맡느라 지필과 수업의 부담이 컸던지라 2학기에 시수를 줄여주기로 했었는데, 결국은 똑같아졌다. 2학기에 추가된 4시간은 비담임인 나와 최샘, 3학년부 김샘과 이샘이 각자 1시간씩 맡기로 하면서 상처뿐인 회의가 끝났다.



  교무부장발 교양 시수 5시간이 처음에 국어과에 폭탄처럼 떨어졌을 때, 내 메시지를 보자마자 2학년 샘들이 올라와서 시수 계산을 하나하나 같이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었더랬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조 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와, 국어과 정말 부럽네요. 나는 음악이라서 이런 일 생겨도 같이 연대할 사람이 없는데... 국어과, 멋지다."

  조 부장의 부러움이 무색하게 2학년 샘들은 하루 만에 이렇게 뒤통수를 쳤다. 바쁜 와중에 회의자료를 만들고 여기저기에 연락하며 정신없이 보냈던 그 짧은 연대가 무슨 의미가 있나. 진로 1시간을 이런 식으로 남에게 떠넘기고 그래, 얼마나 좀 나아지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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