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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풀꽃 2호' 지훈이

장난이 좀 심하고 산만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

by 은향

우리 반 지훈이는 '풀꽃 1호'인 세현이와 함께 수업 시간이나 조종례 시간에 떠들고 산만한 행동을 많이 했다. 선생님이 말하고 있는데 끼어들어서 말하는 것이 기본이고, 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거나 잠을 자기 일쑤였다. 십자수반 동아리를 들었는데, 십자수에 흥미를 느꼈는지 가끔은 수업 시간에 십자수를 하다 지적을 받기도 했다. 공부에 관심이 전혀 없고, 친구들과 놀고 장난치는 것에만 재미를 느끼는 짓궂고 산만한 중2 남학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개학 첫날, 내가 보낸 '학부모님께 보내는 안내장' 회신서의 '주 연락자'란에 지훈이는 엄마가 아닌 아빠로 쓰여 있었다. 요즘은 담임이어도 학생들의 사적인 가정환경을 정확하게 알기 쉽지 않다. 예전처럼 주민등록 등본을 따로 제출받지도 않아 부모의 이혼 여부나 한부모 가정 여부도 본인이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회신서를 보고 지훈이가 어머니와 따로 살 수도 있겠다 어림 짐작하고 있었다.


한 번은 수업 시간에 교실에 들어갔더니 지훈이가 가운데 윗머리를 묶어 깡충 올라와 있는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어린아이 같이 귀엽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지훈이에게 "머리는 누가 그렇게 했어?"라고 물었다.

지훈이가 "왜요?"라고 묻길래,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그대로 터져 나왔다.

"너무 귀엽잖아."

그 말을 듣고 지훈이가 좋았나 보다. 그날은 평소답지 않게 수업 태도가 어찌나 좋은지 딴짓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 반의 다른 '풀꽃들'이 쓸데없는 소리를 해대면, 도리어 "수업 시간에 그런 헛소리를 하면 되냐?"라고 나서서 제법 어른스럽게 훈계를 한다. 역시 말의 힘이 큰 것일까. 이런 말을 내뱉으니 지훈이에 대한 내 생각과 마음도 전보다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청소 시간에 지훈이가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고도 "어유, 우리 지훈이 청소도 참 잘하네."라고 칭찬을 했다. 확실히 학기 초와는 달라진 지훈이의 모습을 보며 역시 사랑이 위대하구나 느끼며, 나의 애정 어린 지도 덕이라 자평하며 내심 뿌듯했다.


그 뒤부터는 학기 초의 까불고 산만한 장난꾸러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나한테 오면 귀여운 강아지처럼 칭얼거린다. 그래서일까. 지훈이가 하는 짓이 좀 더 사랑스럽게 보였다.

"선생님, 근데요. 저 배가 너무 아파요. 똥 누고 와도 돼요?" 유치원생도 아닌데 지훈이는 이런 말도 서슴없이 한다. 내가 "중학생답게 다른 표현으로 해 봐." 하면, "응, 그니까, 대변이 너무 마려워요." 한다.

내가 웃으며 "다음부터는 화장실 다녀와도 되냐고 해. 알았지?"라고 하자, 이 모습을 본 우리 반의 여학생 한 명이 이렇게 말한다.

"지훈이가 선생님이 자식 같아요."

"지훈이만 자식이니? 너희들 모두가 샘의 자식이지?"

그러자 여학생 무리가 "오우~~ 오오~"하며, 닭살이라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으로 웃는다.



5월의 어느 금요일 점심시간, 2학년의 까불이 남학생 무리가 운동장 한쪽 끝에서 권투 장갑을 끼고 스파링을 했다. 수많은 아이들이 빙 둘러서서 그걸 즐기며 구경을 했다. 교무실에서 무심코 창밖 운동장을 내다본 3학년 부 선생님이 이 상황을 매의 눈으로 캐치하고 우리 교무실로 전화를 했다. 교무실에 있던 선생님들은 창문을 열고 소리를 치며 스파링 하는 아이들에게 그만두고 교무실로 오라고 했으나 실컷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 소리가 전달되기는커녕, 선생님들의 목만 아플 뿐이었다.


마침 교무실에서 다른 일로 지도받은 아이가 있길래, 난 그 아이를 시켜 운동장에 가서 권투 하는 아이들 모두 바로 교무실에 오라고 전달했다. 역시나 불려 온 아이들은 수차례 교무실에서 지도를 받는 단골손님들, 각반의 '풀꽃들'이었다.

금 5,6교시는 동아리 활동인데, 수업시수가 20시간으로 가장 많은 나는 동아리를 하지 않아도 되어 교무실에서 혼자 쉴 수 있는 꿀 같은 시간이다. 하지만, 그 문제의 스파링을 한 수많은 '풀꽃들'을 지도하느라 나의 소중한 5,6교시 공강이 몽땅 날아가버렸다. 상황에 대한 설명을 중언부언하는 아이들에게 문자로 읽히는 말이 되는 사실확인서를 받기까지 나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진해야만 했다.


모든 선후 관계를 정리해 보니 10반의 '풀꽃' 정현이(가명)가 권투 장갑을 가져왔고, 아이들은 돌아가면서 권투 장갑만을 낀 채 신나게 스파링을 했다. 그중에서도 우리 반 지훈이는 여러 명과 신나게 스파링을 날렸다. 싸운 것도 아니고 단순히 스파링을 한 게 무슨 문제가 있냐는 아이들에게 안전장비나 보호 장구도 하나 없이 스파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며, 자칫했다가 맞은 게 감정적이 되어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긴 시간 동안 주지시켰다. 아이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반성의 태도를 이끌어내기까지는 엄청난 인내와 자제력이 필요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심판이 있는 데서 하는 안전한 스포츠와는 지금 한 행동은 엄연히 다른 거라며 엄한 모습으로 훈계했다. 그 무리에 있던 유일한 우리 반 아이인 지훈이도 따로 불러서 지도했다.

그 이후로 지훈이에게서 강아지 같이 귀엽게 굴던 모습은 사라지고, 다시 학기 초의 산만한 말썽꾸러기로 되돌아왔다. 나의 사랑이 아이를 변화시켰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오만한 일이었던가.



며칠 전에는 복도에 지나가고 있는 나에게 7반 여학생 다영이(가명)가 다가와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들어보니 지훈이가 다영이의 가방에 있는 머리빗을 마음대로 꺼내고 던져서 코에 맞았다고 했다. 지훈이를 혼내줬으면 좋겠다고. 방과 후에 지훈이를 불러서 다영이에게 어떻게 했는지 물으니, 절대 자기는 던지지 않았고 그냥 빗을 건네주다 다영이가 맞은 거라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키도 작은데 어떻게 건네주면 상대방의 얼굴에 맞게 하냐고 반박하니, 실수로 던져진 거란다.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가장 화가 나고 피곤할 때가 이렇게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을 늘어놓을 때이다. 아이들이 잘못을 꼼짝없이 인정하고 시인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너무나 큰 피로감을 준다. 어차피 밝혀질 텐데 깔끔하게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하면 될 것을, 말도 안 되는 소리로 회피하려 한다. 왜 하나같이 아이들은 이런저런 변명과 핑계만 늘어놓을까. 긴 시간의 논리적인 지적을 듣고서야 지훈이는 던졌다는 것은 인정했지만, 멀리서 건네주려다 보니 던졌고 그게 실수로 맞은 거라고 합리화했다.

또, 아이들은 바로 들통날 거짓말도 너무나 잘한다. 자신의 잘못을 곧바로 인정하고 사죄하는 아이를 거의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결국에 사실이 다 밝혀지고 나서도 나쁜 의도가 없었다거나 실수였다 거나, 자기 말고 다른 친구도 같이 한 거라며 물귀신 작전으로 나간다.



6월 말쯤, 아침 조례가 끝나도록 지훈이가 오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어떤 연락도 없었다. 우리 반 아이들도 다들 지훈이가 결석한 이유를 몰라 의아해했다. 조례 후에 바쁘게 처리할 일들이 있어 지훈이에게 연락을 못하고, 1교시 수업을 들어갔다. 수업을 마치고 우리 반에 들러 지훈이가 왔는지 확인했는데, 안 왔다고 했다. 급하게 교무실로 와서 지훈이의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는데 전원이 꺼져 있었다. 학기 초에 주연락자로 회신받은 대로 지훈이 아버지 핸드폰으로 연락을 했다. 세 번이나 전화를 해도 지훈이 아버지는 받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걱정도 되고, 한편으로 지훈이 엄마에게 연락을 해도 되나 잠시 망설였다. 급한 마음에 지훈이 엄마에게 일단 전화했다. 몇 번의 신호가 울리고 "여보세요?" 전화를 받았다. 지훈이 담임이라고 말하고, 상황을 전달했다.

"아, 그래요? 오늘 제가 아침에 일이 있어서 일찍 나오는 바람에, 지훈이가 일어나는 것을 못 봤어요.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얼른 집에 가서 지훈이 깨워서 보낼게요."

아, 지훈이가 엄마와 같이 사는 거였구나, 다행이다 싶었다.


2교시가 끝나고 지훈이가 잠이 덜 깬 얼굴로 교무실에 들어왔다.

"선생님, 죄송해요. 핸드폰이 꺼져서 못 일어났어요."

"어이구~ 연락도 안 되고, 선생님이 많이 걱정했잖아."

"네, 죄송해요..."


7월 방학을 앞둔 어느 날, 아침 조례를 마치고 나오는데, 우리 반 '풀꽃 1호' 세현이와 '풀꽃 2호' 지훈이가 나란히 따라 나오며 나를 불렀다. 뒤를 돌아보며 "왜?"라고 묻는데, "선생님 이거 받으세요."라며 조화 두 송이를 내민다.

"어머, 이게 웬 꽃이야?"

"선생님 드리려고요."

두 녀석이 웃으면서 꽃을 건넸다.

"그래. 고마워."

꽃을 받아 들고, 잠시 생각했다. 학기말이라고 어떤 수업 시간에 꽃 만들기를 했나, 꽃 만들기 한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직접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웬 꽃이지 싶었다. '에이, 뭘 그리 생각하나, 그냥 우리 풀꽃들이 나 생각해서 준 건데, 고맙게 받으면 되지.'라고 다른 생각들은 떨치고, 교무실 책장 위에 꽃을 나란히 올려놓았다. 훗, 기특한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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