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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반 '풀꽃' 1호 세현이

말썽꾸러기이지만 밉지는 않아.

by 은향

드디어 여름방학이 왔다. 오랜만에 중학교에 와서 하루 네, 다섯 시간이나 되는 주당 20 시수의 수업을 하면서 내 목소리는 득음한 것처럼 거칠다 못해 꺼슬꺼슬해졌다. 하루에도 수 십 개의 메신저로 요구되는 각 부서의 협조사항을 처리하랴 정신이 없는데, 아주아주~ 자세히 봐야만 예쁜 우리 반 '풀꽃'들은 어찌나 자주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키는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 퇴근 이후의 시간까지 아주 내 혼을 다 빼놓았다. 세상 일에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골고루 있다 하는데, 어찌 된 게 학교를 옮겨서 좋은 점이 출퇴근 거리가 가까워진 것 말고는 그다지 없는 것 같다. 한 학기 동안 매일매일 끌어올려 쓴 내 에너지는 바닥이 났다.



우리 반의 '풀꽃 1호'는 단연 정세현(가명)이다. 그동안 세현이가 저지른 크고 작은 잘못 중에 가장 큰 건은, 1반의 다문화 가정 아이인 명훈이(가명)를 친구들과 수차례 괴롭히고 폭력을 가한 사건이다. 참 신기하게도 각반의 말썽꾸러기 '풀꽃'들은 서로 친하다. 어떻게 그렇게 서로를 잘 알아보는지 아이들의 무리들을 보면, 참 끼리끼리 비슷한 성향의 아이들끼리 어울린다. 세현이는 다른 반의 말썽꾸러기 '풀꽃' 두 명과 함께 우리말이 어눌하고 지능이 다소 떨어지는 다문화 가정 아이 명훈이를 상대로 장난하고 지속적으로 괴롭혔다. 단순한 장난에 속하는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뒤에서 명훈이의 이름을 부른다. 명훈이가 뒤를 돌아보면, 서로 자기가 안 불렀다고 하며 지들끼리 낄낄거린다.

조금 더 심한 괴롭힘은 이런 거다. 한 번은 명훈이가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세현이와 그 무리들이 밖에서 문을 막아 가두고 못 나오게 했다. 밖에서 문을 막고 있던 말썽꾸러기들이 힘이 풀린 사이에 명훈이가 겨우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최종적으로 세현이가 행한 잘못은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우리 반 세현이가 복도에서 명훈이를 업어치기 하고 발로 걷어찼다. 다행히 4반 담임 선생님이 복도에서 그 장면을 목격하여 상황이 종료되었고, 해당 아이들이 교무실로 불려 왔다.


처음에 세현이는 무슨 일인지 묻는 나에게 자신이 명훈이를 폭행한 사실은 쏙 빼고 말했다. 4반 선생님이 나중에 알려주셔서 알게 되었다. 폭행 사실을 알고 나서 다시 세현이에게 무슨 잘못을 했는지 물었는데, 그때도 사실을 바로 말하지 않았다. 세현이가 자신이 폭력을 행사했다는 것을 시인하기까지는 지난한 시간이 걸렸다. 그날 세현이에게 성찰문을 쓰고 부모님께 확인 사인을 받아오라고 했는데, 세현이는 부모에게도 폭행 사실은 빼고 자신의 잘못을 축소해서 알렸다. 세현이의 부모에게 내가 전화해서 사실을 전달하면서 확인해 보니 단순한 장난으로 약간 괴롭혔다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폭행 사실과 지속적인 괴롭힘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니 세현이 아버지는 그제야 죄송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그 이후의 세현이의 태도였다. 처음 며칠은 반성하는 척하며 내가 시킨 벌청소도 잘하는 것 같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조종례 시간과 수업시간에 떠들고 쓸데없는 소리로 수업의 흐름을 끊기 일쑤였다. 전혀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세현이의 크고 작은 잘못은 그 이후도 계속 일어났다. 교실에서 물장난을 하여 다른 친구의 옷을 젖게 하기도 했고, 다른 친구를 수시로 조롱하고 비아냥 거리기도 했다. 이런 갖가지 종류의 사건사고로 5월 초에 이미 체크리스트 8개를 채웠다. 체크리스트 10개를 채우면 생활교육위원회(일명 선도위원회)가 열리기 때문에 그나마 작은 잘못은 탈무드 쓰기와 교실 청소로 봐주고 있어서 이 정도였다.


나중에 1반 담임으로부터 명훈이에 대해 들은 바는 이렇다. 명훈이의 엄마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왔는데, 얼마 전에 엄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명훈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명훈이의 이모가 그나마 아이를 가끔 돌봐주고 있다고 했다. 이런 힘든 상황에 있는 아이가 학교에서는 세현이 무리들에게 수차례 괴롭힘까지 당했다는 것이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우리말이 어눌하고 자기보다 약하다는 것을 알고, 세현이 무리가 괴롭히고 폭행했다는 것이 너무나 괘씸했다. 이 사안 관련하여 수차례 세현이를 지도하면서 강한 사람에겐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한 '강약약강'하는 놈이 가장 비열하고 야비한 사람이라고 강조해서 말했다. 그 당시 국어 시간에 가르쳤던 시조인 <두꺼비 파리를 물고~>를 인용하면서 '두꺼비' 같은 놈이 되지 말라고.



두꺼비 파리를 물고 두엄 위에 치달아 앉아

건넛산 바라보니 백송골이 떠 있거늘 가슴이 끔찍하여 풀떡 뛰어 내닫다가 두엄 아래에 자빠졌구나

모쳐라 날랜 나이니 망정이지 어혈 질 뻔했구나


설명을 하자면, 이 시조가 지어진 조선 후기에는 백성들이 탐관오리들에게 큰 고통을 받았다. 탐관오리들은 자신보다 더 힘이 있는 권력자에게는 아첨하거나 뇌물을 바치고, 힘없는 백성들은 못살게 굴었다. 이 시조는 탐관오리의 횡포를 두꺼비를 통해 희화화하고 우의적으로 풍자한 작품이다.



5월 중순에 세현이 무리의 명훈이에 대한 괴롭힘 및 폭행 관련하여 생활교육위원회가 열렸다. 사실 이 정도의 사건은 엄연한 학폭인데, 피해자인 명훈이가 학폭으로 사건을 넘기지 않겠다고 했다. 4월 말쯤에 각반 담임들이 보는 데서 괴롭힌 아이들이 공개적으로 서면으로 써 온 사과문을 읽었고, 명훈이는 그 사과를 받아주었다. 나는 그때 명훈이를 처음 봤는데 참 순해 보였다. 우리 반 세현이가 서면 사과문을 읽고 나서, 명훈이에게 마음속에 혹시 조금이라도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거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얼마든지 하라고 했더니, 아무것도 없단다.


그리고 얼마 후 명훈이는 자신의 엄마의 나라인 키르기스스탄으로 아주 떠났다. 엄마의 친척이 명훈이를 입양하기로 했다고 들었다. 이런 사건의 경우 가정에서 부모가 제대로 아이를 케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학폭을 요구하고 더한 경우에 민형사 소송을 했을 것이다. 피해 학생은 사과만 받겠다고 하고 떠났지만,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은 엄중하게 처리해야 할 사안이었다. 피해 학생이 원치 않아 학폭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학교에서 당연히 엄중하게 잘못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현이 무리가 속한 다른 반 담임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가해 학생의 담임들이 체크리스트와 상관없이 별건으로 생활교육위원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생교위에 참석한 우리 반 세현이의 아버지는 그나마 상식적이었다. 세현이가 저지른 괴롭힘과 폭력이 잘못된 행동임을 통감하고 가정에서도 지도하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 세현이가 같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아이한테 맞은 적이 있어서 자신의 아이가 밖에서 맞고 오지는 않을까 걱정만 했지, 이런 일을 저지를지는 전혀 몰랐다고 했다. 이번 일로 담임인 나와 여러 번 통화하며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고, 집에서 회초리를 들기도 하며 교육하고 있다고 했다.


담임이 보기엔 세현이의 생활태도가 어떻냐는 생교위 위원의 질문에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다. 처음 며칠은 반성하는 척했으나 그 이후에도 자잘한 일들을 계속 일으키며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학기 초부터 여러 가지 잘못으로 이미 체크리스트가 8개라고 사실대로 말했다. 생교위가 끝나고 세현이 아버지에게도 세현이가 그동안 잘못해 온 일들을 세세하게 알리며, 가정에서도 함께 지도해 주셔야 한다는 것을 당부했다. 생교위 결과는 출석정지 3일과 특별교육 이수.



그 후, 세현이는 물론 개과천선하지는 않았다. 한문 시간에 다른 친구 자리에 앉아 놀다가 의자를 부수기도 했으며, 수업 시간에 나대고 떠들며 수업을 방해하는 것도 여전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세현이를 불러서 타이르고 세현이 스스로 지켜야 할 약속을 정하여 실천하도록 했다. 세현이는 잘못을 자주 저지를 때마다 내가 시킨 탈무드를 쓰고, 교실 청소를 하는 일은 곧잘 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의 잘못에 대해 나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말하며, 오래가진 않았지만 조금은 조심하기도 했다. 세현이를 지도할 때마다 나는 "세현아, 말로만 하지 말고, 이제 좀 행동으로 보여 줘라."라고 했고, 세현이는 "알겠습니다. 선생님!"이라고 대답했다.


6월 말쯤에 세현이의 체크리스트는 10개를 꽉 채웠다. 하지만, 나는 세현이에게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 다른 선생님 두 분께 칭찬을 받아서 그 선생님이 나에게 세현이를 칭찬하면, 내가 표시한 체크리스트 중 한 개를 지워주기로 했다. 세현이는 음악 시간에 대답도 잘하고 과학 시간에도 수업에 열심히 참여했고, 교실에 쓰레기도 자발적으로 주워서 이틀 만에 칭찬 2번을 받았다. 나는 약속대로 체크리스트를 1개 지워 주었다.


7월 초, 수업이 끝나고 복도를 지나가다가 여러 명의 말썽꾸러기들이 화장실 앞에 있는 좁은 공간에 한꺼번에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뒤에서 밀고 있는 위험한 장난을 치는 장면을 하필이면 내가 목격했다. 나는 그 무리를 교무실로 데리고 와 지도하면서 그들에게 체크리스트를 1개씩 추가했다. 그 무리에 우리 반 세현이도 있었다. 겨우 9개로 줄여놓은 체크리스트가 다시 10개로 채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세현이만 봐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현이는 그날 방과 후에 나를 찾아와서 한 번만 더 마지막으로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나는 이번에는 세 명의 선생님께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이게 정말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세현이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갔다. 그리고, 3일 만에 세 명의 선생님의 칭찬을 받아서 다시 체크리스트는 9개가 되었다.


지난 넉 달 동안 세현이는 끊임없이 크고 작은 잘못을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지치지 않고 세현이를 지도했다. 피곤한 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세현이가 꼴 보기 싫거나 밉지는 않았다. 세현이를 지도할 때도 전혀 감정적으로 혼내거나 비난하지 않았고, 세현이의 잘못에 대해서만 말했다. 그래서인지 세현이도 나에게 늘 예의를 지켰고, 하교할 때면 "선생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라고 깍듯하게 인사했다. 한문 시간에 한자를 활용해서 카드엽서 쓰기 활동에서 세현이는 '존경'이라는 한자를 넣어서 나에게 감사 엽서를 써 주었다. 얼마 전에는 뜬금없이 우리 반 '풀꽃 2호'인 지훈이(가명)와 함께 조화 한 송이를 선물하기도 했다.

세현이가 말썽꾸러기로 살아온 게 한두 해도 아닐 텐데, 어디 한 순간에 아이가 확 바뀌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잘못을 하면 또 지도하여 반성하게 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지지 않겠나 싶었다. 그래도 학기 초에 비해 잘못을 저지르는 빈도가 점점 줄어든 게 어디냐 싶다. 또, 이제는 폭력을 행사하는 게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는 제대로 알고 그런 짓은 하지 않으니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7월 어느 날, 세현이가 자신의 청소 구역인 구름다리를 쓸고 있었다. 나는 교실 청소 확인을 끝내고 구름다리 청소 점검을 하러 갔다. 그때 11반 민수(가명)가 구름다리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자기 담임 선생님한테 받은 쭈쭈바를 먹으려고 비닐을 뜯었다. 청소 상태를 확인하던 내가 민수를 쳐다보자, 민수는 방금 꺾은 쭈쭈바 꼭지를 나에게 내밀며 "선생님, 드실래요?"라고 말했다. 제 딴에는 소중한 것을 선생님한테 나눠주는 거라는 듯 수줍게 웃으며 손을 내민 민수의 모습이 귀여웠으나 나는 짐짓 이렇게 말했다.

"뭐? 너는 그렇게 커다란 몸통을 먹고, 선생님한테 고작 이런 꼬다리를 줘? 선생님은 김밥 꼬다리도 안 먹는 사람이야. 몸통 줄 거 아니면 됐어."

그러자 민수는 들고 있던 쭈쭈바를 소중히 감싸 쥐며 "그래도 이건 드리기가 좀...." 했다.

이때 청소를 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세현이가 어느새 내 옆으로 와서 말한다.

"선생님, 그럼 그 꼬다리 제가 먹어도 되겠습니까?"

나는 세현이를 쳐다보며 "안 돼!"라고 말하며, 강하게 눈으로 레이저를 쐈다. 그러자 세현이는 아쉬운 눈빛으로 쭈쭈바를 쳐다보며 입맛을 다신 채 "네에..." 한다.

퇴근하는데 자꾸 세현이가 쭈쭈바 꼬다리를 간절하게 쳐다보며 뒤돌아 섰던 모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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