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카풀팀 변천사, 첫 번째 이야기
같은 행정구역인데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집에서 차로 편도 1시간이 걸린다. 막힐 때에는 그보다 더 걸릴 때도 종종 있다. 매일 운전하며 길거리에서 왕복 두 시간을 허비하는 일은 체력적으로 소모가 크고,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처음에 학교를 배정받고 나서 이 먼 거리를 출퇴근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빨리 학교를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4년 동안 함께 출퇴근을 함께 한 카풀팀의 변천사를 시작으로 교사로 살아가는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와 진솔한 감정을 담고자 한다.
힐링 카풀팀의 첫 멤버, 보건 선생님
학교와 출퇴근 거리가 꽤 되는 우리 동네에 사는 선생님들이 많이 있는 편이다. 다행히 같은 동네에 사는 보건 선생님을 알게 되어 학기 초에 카풀을 시작했다. 각자 일주일에 한 번씩 번갈아 운전하기로 해서 장거리 운전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반으로 줄일 수 있었다. 출퇴근 길이 꽤 많이 막히는 편이라 혼자 다니면 지루하기고 퇴근 길에는 졸립기도 할텐데, 함께 하는 사람이 있으니 지루하기기는커녕 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즐거울 때가 많다. 한참 이야기에 빠지다보면 "어머, 벌써 도착했네요. 남은 얘기는 내일 만나서 해요."라고 말하며 서둘러 인사할 때도 많다.
나는 40대, 보건 선생님 60으로 나이 차이가 꽤 있음에도 이상하게 세대 차이가 난다거나 불편하지 않다. 부산에서 자라고 간호사와 대학 강사로 일했다가 보건 교사가 된 선생님과 충청도에서 자라고 교사가 되어 경기도에 와서 지금 이곳에 10년째 살고 있는 나는 공통점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얘기를 나눌수록 공연, 책, 영화, 음악 등 서로 관심사도 비슷하고 통하는 부분이 많다.
"보건 선생님, 주말에 친구들과 본 뮤지컬은 어떠셨어요?"
"어휴, 말해 뭐해요. 엄청 좋습디다. 다들 노래를 어찌나 잘 하는지 음악도 좋고, 무대도 화려해 볼거리도 많고 너무너무 멋졌죠."
"R석에서 보셔서 더 좋았겠어요. R석은 비싸서 저는 큰 맘 먹고 표 끊는데..."
"공연 일하는 친구 아들 덕에 좋은 구경했지요. 뭐~ 선생님은 주말에 뭐했어요?"
"저는 그냥 집에서 푹 쉬었어요. 오랜만에 소설책을 읽었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구요."
"제목이 뭔데요?"
"보건교사 안은영이요. 학교도서관에 신간 들어왔다고 사서 샘이 얘기하셔서 도서관 갔다가 우연히 고른 책인데 너무 재미있어서 후딱 읽었어요. 요즘 젊은 여성 작가들이 글을 참 재치있게 잘 쓰는 것 같아요."
"나도 그 책 벌써 읽었어요."
"그 책 나온지 얼마 안 되었던데 벌써 읽으셨어요?"
"사실은 그 작가가 우리 남편 친구 딸이에요. 남편이 친구 만나고 와서 얘기하더라구요. 책도 주길래 읽어봤죠."
"우와~ 작가가 남편 친구 딸이라니... 이런 작가와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이라니 넘 좋겠어요!"
"나를 직접 아는 것도 아닌데요. 뭐. 그냥, 남편한테 들은 게 다 입니다."
"직접 친분이 없다해도 뭔가 모르게 부러워요. 이 작가 요즘 엄청 핫한 작가거든요."
"요즘 유명하다고는 하대요."
"그러고보니 선생님은 주변에 공연 관계자도 있고, 작가도 있고 인맥이 화려하네요."
"아이고, 내 친구도 아니고, 내 아들딸도 아니고, 친구들 자녀일 뿐인데요 뭐."
"흐흐, 저는 그런 인맥이 없어서요. 샘은 그 책 어떠셨어요?"
"내가 보건 교사라 제목이 끌려서 읽어봤는데, 아주 재미있습디다."
"맞아요. 저도 너무 재미있어서 주말에 금방 다 읽었어요. 저는 원래 판타지 내용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책은 큰 거부감없이 즐겁게 잘 읽히더라구요. 작가의 표현이 넘 재밌어서요. 작가가 글빨이 좋은 것 같아요."
서로 통하는 게 많은 우리
보건 선생님과 공통의 관심사 중 또다른 한 가지는 영어이다. 우리는 영어 공부를 따로 하지는 않지만 영어에 관심이 있어서 아침마다 만나면, 7시 20분부터 시작하는 EBS 초급 영어 회화를 함께 듣는다. 아침에 만나서 짧은 인사만 나누고, 영어 회화 시간인 7시 20분에서 40분까지는 되도록이면 말을 줄이고 라디오에 집중을 한다.
"Try to stay somewhere new from time to time. (가끔은 어디 새로운 곳에서 한 번 살아 봐.)"
"from time to time. (가끔. 어쩌다 한번씩.)"
원어민의 발음을 집중해서 듣고 각자 소리내어 따라 해 본다. 중요 구문은 한 번 더 따라해 보기도 하고. 그러다가 영어 공부에서 자연스레 샛길로 빠지기도 한다.
"선생님은 계속 부산에 사시다가 서울로 언제 올라오셨어요?"
"그게 내가 결혼해서 우리 애 낳고 나서였을 거예요."
"전 서울에서 안 살아봤는데, 어떠셨어요?"
"뭐 그 때는 일도 관두고 애 키우고 하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서울이라서 어떻다는 생각도 못하고 살았네요."
"그럼, 지금 사는 곳은 언제 오셨어요?"
"여기에 신도시 생기고 가장 먼저 들어왔으니까 이제 12년 정도 됐네요."
"부산이랑 서울이랑 지금 우리 동네랑, 어떠세요?"
"그냥 살게 돼서 사는 거지요. 부산이야 나고 자란 곳이니까 고향인 거고. 이제 여기가 내 집인 거죠. 뭐"
영어 공부를 하다가 중간중간 다른 이야기들이 비집고 들어오고, 어떤 날은 할 말이 많아서 라디오 영어 회화는 BGM마냥 깔리기 일수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때 그때 나누는 이야기들이 더 즐거웠으니까. 보건 선생님과 매일 만나면서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우리 엄마도 모르는 내 얘기를 오히려 보건 선생님이 더 많이 알게 될 정도로 편안하게 삶을 나누었다.
삶을 나누고 위로하는 카풀
그 무엇보다 보건 선생님과 카풀을 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그날그날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 덩어리를 함께 공감하고, 다 깨부순 후 집에 들어갈 수 있어 마음이 가벼워진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학교의 모든 상황을 아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다른 누구에게 하소연하는 것보다 이해의 폭이 넓고 공감대가 커서 대화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보건 선생님, 오늘 퇴근길에는 유독 더 피곤해 보이시네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원...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왜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애들이 쉬는 시간만이 아니라 수업 시간에도 어찌나 많이 내려오는지, 오늘 공문 보낼 것도 있고 할 게 많았는데 일처리는 하나도 못했네요. 그래서 노트북 들고 가잖아요. 집에서 일하려구..."
"요즘에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너무 많이 보건실에 간다고 하더라구요. 쉬는 시간에는 놀 거 다 놀고, 꼭 수업 시간만 되면 보건실 다녀온다는 애들도 있는 거 같아요. 본인이 아프다고 하는데 제 판단으로 안 보낼 수도 없고..."
"내가 보기에 수업 시간에 보건실 오는 애들 중 반은 공부하기 싫어서 오는 것 같아요. 굳이 수업 시간에 올만큼 위급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참, 오늘 5교시 때 1-5반 *** 배 아프다고 해서 제가 내려보냈어요. 약 먹고 금방 오긴 했는데, 괜찮은 거죠."
"그 애는 심각한 게 아니라 다행이었는데, 3학년에 자주 쓰러지는 남학생 있잖아요. 오늘도 또 쓰러졌다길래 내가 점심 먹다말고 교실로 올라가서 상태 확인하고, 남자 선생님 이 그 덩치 큰 아이를 업고 보건실까지 데려오느라 고생했어요. 요즘 쓰러지는 빈도가 점점 커지네요. 학부모님 연락했는데, 바로 못 오신다고 해서 계속 그 학생 지켜보느라 다른 일도 못했네요."
"그 학생 담임 샘도 엄청 신경쓰던데요."
"그 담임 샘도 점심 먹다 말고 뛰어왔어요. 수시로 증상이 나타나는데... 심리적인 것도 큰 것 같고..."
"병원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학교에서 보건샘한테 치료받는 건 한계가 있잖아요."
"그러게요... 아이고, 근데 그 애 뿐만입니까. 주말에 집에서 다치고서 병원에 안 가고 월요일에 학교와서 그것도 수업 시간에 치료해 달라는 애들도 있어요."
"어머, 집에서 다친 건 집에서 치료하거나 병원을 가야지, 그걸 학교 와서 치료 받아요? 보건샘을 개인 주치의로 생각하나 보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월요일에는 내가 더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요...안 그래도 정신 없는데, 점심 시간에 3학년 몰려다니는 장난꾸러기들이 한 바탕 또 와서 키 잰다고 소란 떨어서 조용히 하라고 한 마디 하니까 문을 쾅 닫고 욕하면서 나가는데... 정말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라서...원..."
"그 애들이 아주 기름을 들이 부었군요... 그 애들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지... 아까 저도 복도 지나가다 봤는데 몰려다니면서 복도에 침 뱉어서 훈계했더니, 저한테도 눈을 부라리면서 왜 그러냐고 되려 큰 소리 치더라구요. 학교생활교육위원회에서 얼마 전에 다른 건으로 며칠 사봉(사회봉사) 하고 왔다던데 그럼 뭐해요. 그런 처분이 씨도 안 먹히죠."
"고등학교 가면 정신을 좀 차릴라나..."
"암튼, 샘 너무 고생하셨네요. 식사도 제대로 못해서 배 고프시겠어요. 얼른 집에 가서 식사하셔야겠네요."
"아휴, 집에서 누가 밥 좀 차려줬으면 좋겠는데, 남편이나 애가 나만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도 외식해야지요 뭐."
"그러세요. 이렇게 녹초가 되셨는데, 밥 하시다 쓰러지시겠어요. 그때 말씀하신 코다리찜 드세요. 약간 매콤한 거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잖아요."
하루하루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야말로 스펙타클하다. 늘 새로운 일들이 터져 그 전날 일을 기억도 못할 만큼. 전쟁과도 같은 하루를 보내고, 이 모든 것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유하는 카풀팀이야말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힘이 되고 편안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