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다가올수록 그 징조는 여기저기에서 툭툭 발현된다. 4개월간의 한 학기 대장정에 몸과 마음에 무리가 간 것인지, 학기말에는 살짝만 건드려도 독을 뿜어내는 독초처럼 시커먼 표정으로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뾰족하게 곤두서있다.
7월초 한 주간은 학교 자율과정 주간이었다. 학교의 특색을 살린 다양한 교육과정이 운영되는데, 그 중에는 하나의 주제로 모든 선생님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4차시의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는 활동이 있었다. 프로젝트의 제목과 소개를 보고 전교생이 신청하여 운영되는 수업이라 대부분은 평상시에 내가 가르치지 않은 처음보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1,2차시에는 내가 간단하게 강의를 하고, 주제와 관련된 영상 자료를 본 후에 학생들이 활동지에 자료를 조사한 후 챌린지 활동 아이디어를 작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이 활동을 할 때 순회하면서 지도를 하는데, 핸드폰으로 자료를 찾는 척하면서 게임을 하는 아이들도 있고, 잠을 자는 아이들도 종종 있었다. 수시로 순회하면서 일일이 깨우고 활동에 참여하도록 했다.
처음보는 여학생 A는 2차시에 쿠션까지 가져와서 대 놓고 자길래 깨웠더니 "다 했는데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가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깨우면 일어나서 하는 척이라도 하거나, 딴 짓을 해서 지적을 하면 반성의 기미를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A는 할 거 다하고 자는 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뻔뻔한 태도였다. 할 게 없어 잔다고 하니 3,4차시에 활동할 읽기 자료를 미리 전체 학생에게 배부했다. 다음 차시 활동 내용을 미리 설명하며 1,2차시 활동지를 다 한 사람은 다음 활동지를 하라고 했다.
3,4차시에는 내가 간단히 강의를 한 후 학생들이 각자 인터넷에서 자료를 조사한 후 자신의 생각을 활동지에 정리하고 발표하는 활동이었다. 혹시 활동지를 다 했다고 자거나 딴 짓 하지 말고, 관련 영상과 자료를 더 찾아보라는 당부를 하고, 순회지도를 하는 중에 A가 또다시 엎드려 있는 것이 보였다. 자는 것 같아서 A쪽으로 가서 깨우는데, 쿠션 앞에 핸드폰을 세워둔 채 요즘 인기있는 핫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켜놓고, 귀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은채 엎드려 있었다.
"지금 뭐하니?"
"활동지 다 해서 잤는데요."
"핸드폰에 이 영상은 뭐니?"
"소리만 듣고 있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너무나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A는 2차시 때와 마찬가지로 할 거 다 해서 할 게 없어서 그랬다며, 자신이 뭘 잘못했느냐며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슈퍼 당당한 A의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 버릇없는 태도와 반항적인 눈빛으로 나를 째려보기까지 하는데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 기세를 꺾으려 나역시 눈빛 레이저를 쏘았지만,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안 되겠다 싶어서 내가 큰소리로 "수업 시간에 지금 이게 뭐하는 거야!!" 한 번 언성을 높이고서야 A는 눈빛을 거두었다 .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로 들어왔는데, 기분이 너무 불쾌하고 속이 상했다. 기운도 빠지고, 씁쓸한 뒷맛이 너무 강해서 점심먹을 마음도 사라졌다. 점심 시간이 끝나갈 무렵 A의 담임인 2-5반 선생님한테 전화가 와서 A와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길래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A와의 일을 나에게 다 듣고 난 2-5반 담임이 말했다.
"A는 2차시부터 잤다는 이야기나 자기가 수업시간에 핸드폰으로 드라마 본 내용은 저한테 쏙 빼놓고 얘기했어요. 자신이 잠깐 잤는데 선생님이 툭툭 치고 가서 기분이 너무 나빴다고 엄청 씩씩거리더라구요."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가 한 잘못은 감추고 선생님의 말이나 행동에서 꼬투리와 트집을 잡아서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내가 툭툭 치고 갔다니...? 아이들의 왜곡된 말로 인해 멀쩡한 선생님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곤란한 경우를 종종 보았다.
사실의 왜곡을 바로잡고 A와의 감정도 풀기 위해 2-5반 담임에게 A를 불러달라고 했다. A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었으나, A는 끝까지 당당함을 넘어 뻔뻔한 태도로 자신의 잘못은 은근슬쩍 넘어가려 했다. 내 지도가 기분을 상하게 했다는 것만을 항변하는 A와의 대화는 결국 개운하지 않은 상태로 끝났고, 오히려 기분만 더 찝찝해졌다.
A를 먼저 보내고 나서 2-5반 담임이 말했다.
"선생님, A가 버릇이 좀 많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없으면, 선생님한테 더 버릇없이 굴까봐 같이 있었는데... A가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기 잘못은 인정을 잘 안 하고, 남탓을 많이 해서 사실 친한 친구도 별로 없어요. 선생님이 그냥 이해하세요."
"제 수업 시간에 일어났던 일 때문에 안 그래도 학기말에 담임 샘들 바쁘신데, 괜히 저 때문에 선생님 시간 뺏고 신경쓰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2-5반 담임을 보내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애초에 문제의 원인이 되는 자신의 잘못은 얼버무려 넘어가려 하고, 선생님의 말이나 행동에서 꼬투리를 잡아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이 상처 받았다고 덮어 씌우는 아이들을 만날 때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애당초 이런 일이 없도록 수업 시간에 자든지 말든지 내버려 두어야만 했던 걸까. 괜히 자는 아이를 깨우다가 툭툭 쳤다는 소리를 듣고, 불손한 언행을 지도했다가 상처를 준 사람이 된다. 오해받거나 다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그냥 모른척 외면하고, 아무런 지도를 하지 말아야 한단 말인가.
사실상 아이들이 자든지 게임을 하든지 드라마를 보든지 막무가내로 나가도 교사가 제지할 방법이 딱히 없다. 지금껏 내가 만났던 아이들은 그래도 착하니까 지적하면, 순순히 "네."라고 말하고 반성의 기미라도 보였던 것이다. A처럼 버릇없이 대들어도 막상 지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학생 인권이 강조되면서 상벌점 제도도 폐지된 지 오래되었고, 교사의 손발은 다 묶여 버려 수업 중 발생하는 학생의 문제행동에 마땅한 제재 방법이 없다. 교원단체에서는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강화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으나 입법화 되기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며, 입법화 된다해도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 부장님이 친한 2학년 부장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와서 말했다.
"샘, 지금 2학년이 전반적으로 상태가 아주 안 좋은 것 같아요."
"왜요?"
"어제는 2-3반 남학생이 담임 샘한테 엄청 대들었나 봐요. 담임 샘도 엄청 열받고... 또 담임 샘들끼리도 어떤 사소한 일로 교무실에서 큰 목소리로 다투기도 했대요. 다들 엄청 예민한가봐요. 그래서 2학년 부장이 살얼음을 걷는 거 같다고 빨리 방학해야 한다고 이대로 며칠 더 가면 전쟁날 것 같대요."
"그렇군요. 나한테 대들었던 2-5반 애도 예민해서 그랬던 걸까요...?"
"그 아이는 내가 봤을 때 너무 버르장머리가 없던대요. 얘기 들어보니까 좀 삐딱하고 자신의 잘못을 원래 잘 인정 안 하고 남 탓을 많이 한대요. 성격도 넘 세고 그래서 사람들이랑 종종 부딪힌다고 하더라고요."
"아~ 스트레스 받아서 머리가 쑤시네요. 다 털고 재충전하게 빨리 방학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러게요. 남들은 교사들은 방학이 있어서 좋겠다고만 생각하는데, 방학이 없으면 애들이나 교사나 모두 정신이 확 나가버렸을 거에요. 딱 돌아버리기 직전에 방학이 오니까 그나마 다들 털 거 털어내고, 재충전해서 다음 학기를 시작할 수 있는 거죠."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교사가 미치기 직전에 방학이 오고, 엄마가 미치기 직전에 개학이 온다고. 학교와 가정과 온 땅의 평화를 유지하게 해 주는 방학이 드디어 왔다. 이번 방학만큼은 온전히 쉬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2학기 수업 준비도 하려고 했으나.... 어찌 하다보니 또 연수받느라 바쁜 방학이다. 지난 주에 3박 4일 합숙 연수를 하고 오니, 어느 새 7월이 훌쩍 다 지나갔다.
오늘도 서울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연수가 있었고, 제출해야 할 연수 과제도 있다. 2학기 평가계획과 수업 준비도 해야 하는데, 방학은 속절없이 끝나가고 있다.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한 방학, 이제는 몸도 마음도 온전히 재충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