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잠식당한 아이들

부모도, 교사도, 국가도 아무도 못 막아.

by 은향

중학교에 몇 년 있다가 지금 근무하는 고등학교에 오니 놀라웠던 점 중에 하나가 쉬는 시간의 교실과 복도 풍경이었다. 야생 동물들이 설치고 다니던 위험천만한 밀림의 세상에 살다가 안전하고 질서있는 인간 사회에 온 느낌이었다. 여기에서는 쉬는 시간인데도 아이들이 복도에서 차분하게 걸어다녔다. 중학교에서는 뛰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몸싸움하는 아이들을 뜯어 말리며 주의를 주어야 했고, 어디에서 돌진해 올지 모르는 아이들을 피해서 겨우 걸을 수 있었다. 교실 풍경 또한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게 느껴졌다. 수업 시간에 들어가보면, 어떤 때는 불을 끄고 조용하게 앉아 있었고 대체적으로 차분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우리 학교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다 전근오신 K 선생님께 여쭤 봤다.

"선생님이 근무하던 고등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이렇게 조용했어요? 중학교에서는 복도에서 뛰고 소리지르고 난리였거든요."

"중학교에 비하면 고등학교니까 아이들이 차분한 건 맞을텐데, 전에 학교 애들은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안 그래도 나도 왜 비슷한 지역에 있는 똑같은 고등학생인데, 여기 아이들이 더 조용한지 그 이유를 생각해 봤거든요."

"정말 궁금한데요. 그 이유가 뭐예요?"

"스마트폰이요."

"네? 스마트폰이 왜요?"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호기심 어린 내 눈빛을 확인하고, K 선생님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학교에서는 스마트폰을 안 걷어서 그래요.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니까 애들이 하루종일 폰만 들여다보고 있잖아요. 복도 다니는 애들도 보면, 스마트폰 보면서 걷는 애들이 얼마나 많아요. 아니면, 무선 이어폰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걷구요. 아이들이 언제든지 틈만 나면 스마트폰 세상에 들어가 있느라 현실 세계에서는 친구들과 소통하지 않으니 조용할 수밖에요. 전에 근무하는 고등학교에서는 아침에 등교하면 핸드폰을 걷고 하교 때 줬었거든요. 그러니까 거기 아이들은 쉬는시간이면 교실이나 복도가 소란하긴 했어요. "

"아하, 이유는 스마트폰이었군요. 전 또 우리학교 아이들이 고등학생이라 조금 더 성숙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내 말을 듣고, K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스마트폰만 하고 있는데, 이게 과연 학생 인권만 중요시할 일인지는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고등학생이지만 아직은 스스로 절제하지 못해서,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 눈 피해가며 몰래 핸드폰 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아요."

"맞아요. 제 수업 시간에도 게임하고, 유튜브 보는 애들이 종종 있었어요."


간혹 수업이 몇 분 일찍 끝나서 아이들한테 자유시간을 주면, 아이들은 자동적으로 스마트폰을 한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걸까, 가만히 교실을 돌아보면 웹툰이나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거나 메시지를 보내고 게임을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책을 읽거나 무언가 의미있는 것을 하는 아이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스마트폰 중독 검사를 하면, '스마트폰 과의존'으로 상담이나 치료를 요하는 아이들도 매해 늘어간다. 모든 정보를 영상으로만 얻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인지 요즘 아이들은 예전 아이들에 비해 스스로 사고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시험 전 자습 시간을 주어도 혼자 공부하지 않고, 인강을 보는 아이들도 많다. 책을 거의 안 읽다보니 문해력도 떨어지고, 수업 시간에 집중력도 짧은 것 같다. 심지어 영상을 보여줄 때도 십 여분이 넘어가면 산만해지고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으로 시력도 나빠지고, 거북목증후군이 생기는 등 신체적인 문제도 심각하다.

폰을 걷지 않으니 언제든지 정보 검색하고 필요한 연락주고받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그에 비해 우려되고 걱정스러운 점이 훨씬 더 많다는 생각이 든다.



친구 MK은 올해 고1이 된 딸을 키우면서 받은 스트레스로 몇 년동안 적잖이 힘들어했다. MK는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하느라 경기도에서 서울의 학군 좋은 곳을 찾아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하고 이사까지 갈 정도로 교육열이 넘치는 엄마이다. 하나밖에 없는 딸 아이의 건강을 위해 신선하고 영양가있는 음식을 매끼 준비해서 대령할만큼 헌신적이기도 하다. 그러한 엄마의 뒷받침과 달리, 아이는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를 겪으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MK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가끔씩 통화할 때마다 딸에 대한 속상함과 원통함을 토로하는데, 요즘에는 주로 스마트폰 때문에 딸과 겪는 갈등이 대화의 주된 소재이다. 매일 스마트폰만 하느라 과제도 미루고 새벽 두 세시까지 잠도 안 자다가 아침에 겨우겨우 일어나서 힘들게 등교하는 딸 때문에 분통이 터진다며 한참 동안 속풀이를 한다.

"스마트폰 붙잡고 있느라 학원 과제도 못해가서 내가 학원 선생님한테 전화받고 죄송하다고 굽실거린 게 한 두 번이 아니야. 어떤 때에는 다음 날 학교 수행평가가 있는데도 공부도 안하고 밤 늦게까지 웹툰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속이 아주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끓어 옳라. 쟤 때문에 아주 내 몸에서 사리가 몇 사발은 나올 지경이야."

전화할 때마다 이런 레퍼토리가 반복되면 MK의 속상한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이를 키우지 않는 내 입장에서 매번 딸과 치르는 전쟁 얘기가 지루하게 들리기도 했다. MK은 자뭇 심각하게 말했다. "학교에서는 스마트폰도 걷고, 애들이 스마트폰을 일정 시간 이상 못하게 교육을 제대로 시켜야 하는 거 아니야?"

그말에 뜨악하며 내가 말했다. "셧다운제 폐지된 거 봐, 이건 국가에서도 어떻게 못하는 문제야. 요즘 같이 학생 인권만이 강조되는 시대에 학교에서 무슨 명목으로 핸드폰을 수거하니? 지난 번에 내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길래 자는줄 알고 가봤더니 영상 보고 있어서 지적했다가, 자는 거 아니였는데 뭐라고 했다고 적반하장으로 애가 따지는 바람에 오히려 내가 당할 뻔했어. 부모도 어떻게 못하는 아이를, 학교에서 선생님이 무슨 수로...."



얼마 전 가족 모임이 있어 오빠네 식구들이 주말에 잠깐 집에 왔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된 이란성 쌍둥이 조카들이 몇 시간 동안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을 보니, MK가 왜 그렇게 딸을 보며 분통터져 했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오빠네 식구들은 모두 2G폰을 쓰다가 이년 전쯤 2G폰 서비스가 종료되면서 조카들도 스마트폰을 사 주었다. 그 전에는 우리 집에 와서도 책장에 있는 책을 먼저 꺼내 읽었는데, 이제는 스마트폰 보느라 오랜만에 본 할머니나 고모와 별 대화도 없다.


"언니, 얘네들 집에서도 스마트폰만 해요?"

내 말에 초등학교 교사인 새언니가 한숨을 푹 쉬며 하소연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밤 새는지 모른다고, 우리 애들이 딱 그러네요. 집에서도 매일 저렇게 폰만 보고 있어요."

"시간을 딱 정해 놓고 못하게 하면 되죠."

내 말을 듣고, 새언니는 택도 없는 소리라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체념하듯 말했다.

"그 놈의 스마트폰 바꿔주고 나서 내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아요. 그냥 건강하게 자라는 것에 만족해야 할까 봐요."


아이들의 스마트폰 과다 사용으로 인한 부모와 자녀의 갈등은 어느 집이나 다 심각한 것 같다. 자식 교육에 아주 야무진 내 친구 MK나 초등학교 교사인 새언니마저 두 손 들 정도면 다른 집들도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은, 스마트폰만 하루 종일 보고 있는 우리학교 아이들을 봐도 정말 많이 걱정된다. 심각한 문제인 것을 알면서 무력하게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것에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하면 지나친 기우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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