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은 선생님도 상처 받아.

학기초 경계 세우기의 어려움

by 은향

학기 초는 아이들과 수업에 대해, 서로에 대해 알아가며 맞춰나가는 시기이다. 학기 초에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준비물 챙기기이다. 수업 준비물을 챙겨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기본적인 일인데, 그 기본을 못 지키는 학생들이 꽤 있다.


내 수업은 프로젝트 활동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진행하기에 활동지를 많이 배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활동지를 차곡차곡 쫄대 파일에 정리하고 챙겨와야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매 시간 반복적으로 안내하고 수십 차례 강조하면, 빠르면 2~3주 정도 지나야 몇 명 빼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준비물을 챙겨온다. 중학교에서는 한 달이 넘어도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오지 않는 학생들이 삼 분의 일이 넘었다. 그나마 지금은 고등학교라 전보다 나은 편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항을 지도하는데 너무나도 에너지가 정말 많이 든다. 기운이 빠진다.


공책이나 쫄대 파일 같은 준비물 챙겨오는 기간을 일 주일 이상 여유있게 주고 나서야 수업시간에 본격적으로 준비물을 확인하고, 안 가져 온 학생들은 체크리스트에 기록하여 학습참여도에 반영을 한다. 매시간 꼼꼼하게 준비물을 확인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인지해야만 점점 준비물 없는 아이들이 줄어든다.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은 듣는 사람도 잔소리같고 싫겠지만, 말하는 사람은 열배, 백배는 더 힘들고 지친다.



매시간 수업시간에 그러했듯이 얼마 전에 2학년 9반 수업에서 준비물을 확인했는데, A라는 남학생이 당일 수업할 활동지와 이를 정리한 쫄대 파일 없이 오티 자료 한 장만 달랑 갖고 있어서 체크리스트에 기록했다. 코로나로 인해 2주만에 학교에 온 학생이지만, A가 등교했던 수업 첫시간부터 준비물에 대해서는 계속 안내했던 내용이었고, 이를 누가기록하여 수행평가 학습참여도에 반영한다는 것을 A도 이미 알고 있었다. 당연히 깜빡하고 준비물을 안 갖고 온 것은 아이의 잘못이기에 봐 줄 사항이 아니었다.


코로나로 인해 각반에서 출석 학생들이 들쑥날쑥이다. 구글 클래스룸에 활동지와 수업 관련 안내사항을 수 차례 자세하게 올려놓아도 확인하지 않고 오는 학생들이 대다수이다. 그래서 매시간마다 전 시간에 결석한 학생들에게 활동 내용에 대해 간단하게 따로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그날도 수업을 못 들은 학생들에게 별도로 설명을 해 주기 위해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A가 나오지 않길래 물었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지금 안 들을래요. 나중에 다시 설명해 주세요."

"선생님이 이미 지난 시간에 다 설명한 내용을 결석생을 배려해서 다시 한 번 설명하는 거야. 지금 네가 안 들으면 그걸로 끝이고, 다음에 또 다시 설명하지는 않아. 그러니 들을거면 지금 나와서 듣고, 안 들을 거면 안 나와도 돼. 그러니 네가 선택하렴."

"안 들을래요."


개인 과외 교사도 아닌데, 자기가 지금 듣고 싶지 않으니 나중에 따로 설명해달라고 요구하는 당당한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요즘 아이들의 자기중심적인 태도에 대해 알만큼 안다고 생각했지만, 맞딱뜨릴 때마다 참 당황스럽다.


수업이 끝나고 나가려는데 앞문 앞에 앉아 있던 A가 할 말이 있다며 나를 불렀다.

"선생님, 준비물을 안 갖고 왔다고 그렇게 바로 학번 이름을 체크하면 기분 나쁘잖아요. 왜 안 갖고 왔는지 먼저 물어야 하는거 아니에요?"

"아... 그랬구나. 선생님이 준비물 확인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면 다른 아이들이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서 수업을 빨리 진행하려고 마음이 좀 급했었던 것 같아. 선생님이 이유를 안 물어주어서 속상했구나. 그건 미안해. 그래. 다음부터는 번호 체크하기 전에 이유를 꼭 물어보면 되지?"


새학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게 해 주시고, 온유한 선생님이 되게 해 달라고 몇 달 동안 기도했던 덕인지 A의 속상한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어서 선뜻 사과를 하며 아이의 마음을 풀어주려 했다. 이렇게 말하고 나가려는데, A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니, 준비물을 까먹고 안 가져올 수도 있잖아요. 코로나 때문에 오랫만에 학교 왔는데, 준비물을 어떻게 일일이 다 기억해요. 사람이 옹졸하게 그렇다고 바로 체크하는 건 미덕이 없는 거 아니에요?"

"네가 속상한 마음이 이해가 되어서 선생님이 이유를 먼저 안 물어본 것에 대해 사과까지 했는데, 네가 기분 나쁘다고 해서 선생님한테 '옹졸하다, 미덕이 없다'고 말하는 건 선생님한테 실수하고 있는 것 같은데?"

"실수 아닌데요?"

"아, 실수가 아니라고? 준비물 안 갖고 오면 체크된다는 건 네가 등교했던 3월 둘째 주까지 수차례 얘기해서 너도 알고 있었잖아. 지금 갖고 있는 오티 자료에도 준비물 내용 써 있네."

"아, 그럼 글씨를 좀 크게 해서 주든지요."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준비물에 형광펜으로 표시까지 하라고 분명히 말했어. 준비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는데 깜빡하고 못 챙긴건 엄연히 네 잘못인데, 지금 왜 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선생님한테 전가하고 있지? 네 기분이 상한다고 해서 네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준비물 체크했다고 선생님한테 옹졸하다, 미덕이 없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지. 선생님도 사람인데, 그런 말은 기분이 상하지. 그리고 준비물 한 번 체크되었다고 해서 그게 점수에 엄청나게 반영되지 않고, 수업 시간에 발표를 잘하면 상쇄될 수 있으니 너무 마음 쓰지 않아도 돼."


A는 다시 한번 감정적으로 '옹졸하다, 미덕이 없다'는 말을 하며 무례하게 굴었다. A와 대화를 잘 마무리하기도 전에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고, 다음 교시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셨다. 그러자 A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가세요."


사실 오랜만에 학교에 왔더라도 준비물을 놓고 온 것은 이해받을 일이 아니었고, 이유를 먼저 물어주지 않은 게 교사로서 대단히 잘못한 일도 아니었지만, 몇 달간 쌓은 기도 덕분에 A의 속상한 마음을 이해하여 사과까지 했다. 그런데도 적반하장 격으로 계속 무례한 A의 태도에 속이 끓어 오르고 두통에 현기증까지 몰려왔다. 교실에서 나와 다음 수업에 급하게 들어가서 수업을 진행하는데, 계속해서 아까의 상황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A가 선을 넘는 말을 했을 때, 딱 끊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행동에 대한 자책도 들었다. A의 마음을 충분히 헤아려주고, 되도록 갈등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A의 말을 받아주다보니 무례한 아이에게 경계 세우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경력이 쌓일수록 베테랑이 되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점점 이런 상황에 대해 늘 적응이 안 되고, 심리적으로도 평온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교사는 늘 새로운 상황,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늘 실패할 수 없다고 한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어떻게 보면 A의 무례함은 새발의 피 축에도 못 낄 만큼 점점 예의 없는 학생들은 많아지고, 경우 없는 학부모는 그보다 더 많아지고 있다. 교사도 감정 노동자이다. 그나저나 상처받은 내 마음은 어디에서 치유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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