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해서 좋은 분들, 첫 번째 이야기
학교에서 일하는 사람은 교사 말고도 교육행정직원, 교육공무직원, BTL 관련 업체 직원들이 있다. 이 중에서 행정실무사는 교무실에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무기계약 교육공무직이다. 행정실무사가 학교에 들어와서 일정 업무를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사의 행정업무가 크게 줄어든 것은 아니다. 행정실무사가 무기계약이 되고부터 노조를 만들어 강한 연대의식으로 권리를 주장하다보니 업무 배분과 관련하여 갈등을 빚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행정실무사가 생기고 지금까지 여러 학교에서 실무사들을 만나왔다. 특성화고에서 근무했을 때 처음 만났던 실무사는 20대 후반의 젊은 여성이었다. 그녀는 치렁거리는 긴 머리에 몸에 딱 들러붙는 스키니진과 니트를 주로 입고 다니며, 볼륨감을 자신있게 뽐내고 또각또각 소리가 나는 굽 높은 신발로 교무실을 누비고 다녔었다. 업무 분장에 명시된 약간의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다보니 낮에도 한가하게 인터넷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대외적인 학교 행사로 업무 담당자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데에도, 실무사는 인쇄물을 스테이플러로 찍는 일조차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모른 척했다. 연말 업무 분장 때에는 다른 학교 실무사들이 이미 하고 있던 학교일지와 학적 업무 넘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교감 선생님한테 업무의 과중함을 하소연하기 바빴다. 소규모 학교에서 업무 과중으로 매일 야근하는 교사들에게 그녀의 존재는 그다지 도움도 되지 않았고, 그녀로 인해 행정실무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만들었다.
그 뒤에 근무한 중학교는 규모가 큰 학교여서 3명의 행정실무사가 있었다. 두 명의 실무사는 맡은 업무를 책임감있게 잘 하는 분들이었다. 그 분들을 보면서 행정실무사가 학교에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비로소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40대 중반의 실무사 한 명은 유난히 뺀질거렸다. 교무부장조차 그 실무사에게는 일을 맡기지 못하고 자기가 처리하고 말 정도였다. 어떤 분이 실무사로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현재 우리학교에 계신 행정실무사님은 지금까지 만났던 실무사들 중에 단연 최고로 멋진 분이다. 일을 처리하는 속도와 능력도 월등히 뛰어나고, 인성까지 겸비한 분이다. 실무사들이 부서에 공문을 배분할 때, 업무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제목만 보고 배정을 하다보면, 자칫 부서들간에 괜한 업무 떠넘기기 신경전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다. 우리 실무사님은 공문 배정을 정말 깔끔하게 잘 하신다. 혹여 어느 부서로 보낼지 애매한 내용의 공문이 오면 본인이 직접 처리하고 만다. 그것도 아주 빨리, 후딱후딱, 완벽하게 처리한다.
업무 담당자가 공문을 처리할 때 관련 교사의 이름을 일일이 찍어서 공람 처리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바쁜데 일일이 공람처리를 하고 있자니 은근히 번거롭고, 때로는 신경질나고 짜증도 난다. 우리 실무사님은 항상 본인이 공문내용과 관련자들을 파악하여 공람처리를 직접한 후에 담당자에게 공문 배정을 한다. 별거 아닌 듯 하지만, 그런 사소한 배려가 교사들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올해 외부기관에서 정기적으로 몇 달간 연수를 받게 되었다. 그 연수 건과 관련하여 출장 상신을 했더니 교무부장에게 인터폰이 와서 무슨 출장인지를 꼬치꼬치 물었다. 내가 대답하려는데 벌써부터 수화기 저편에서 우리 실무사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 아, 부장님! 그 공문 제가 부장님께 공람해 드렸어요.
교무부장이 나한테 전화하는 내용을 센스있게 파악하고, 실무사님이 직접 교무부장에게 하는 말이었다. 교무부장은 공람된 공문을 확인하겠다며 바로 전화를 끊었다. 공문을 다시 확인해 보니 우리 실무사님이 교무부장, 교감, 교장 선생님한테까지 이미 공람을 다 해 놓았다. 역쉬, 우리 실무사님은 최고!
한 번은 교직원 스포츠 동아리에서 야구 관람을 간 적이 있다. 실무사님도 우리 동아리라 야구장을 같이 가기로 했는데, 당일에 급한 일이 생겨서 준비만 다 해 놓고 함께 하지는 못했다. 야구장에 앉아서 실무사님이 챙겨준 종이백을 보고 우리는 또다시 감동했다. 각자 마실 얼음물과 시원한 음료, 종이컵에 자리를 닦고 앉으라고 물티슈까지 세심하게 넣어 챙겨놓았다. 실무사님이 미리 주문해 놓은 치킨과 쫄면, 비빔 만두까지 맛있게 먹으며 덕분에 아주 편안하고 즐겁게 경기를 보고 올 수 있었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에 여러 명의 교사들이 코로나 확진으로 한꺼번에 병가를 내게 되었다. 수업계를 담당하는 실무사님도 갑작스런 수업변경으로 정신이 없고 힘들었을텐데도 활기차고 여유있게 일을 처리했다.
- 선생님들, 코로나 의심 증상이나 확진으로 출근 못하면, 바로 저에게 연락주세요. 저는 아침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출근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들 건강이 최우선입니다!
짧은 메시지 안에 실무사님이 가지고 있는 일에 임하는 자세와 책임있는 태도, 사람에 대한 배려와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우리 실무사님을 만나고 행정실무사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 우리 실무사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