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복'이 복이 맞을까.
'일복'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아주아주 싫어하는 말이다. 최근 몇 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교직생활에서 나는 속상하게도 '일복'이 많은 축에 속했다. 매일 뛰어다니며 화장실도 참았다 갈 만큼 바쁘게 보내면서 느낀 것은, 일은 그냥 '해야 할 업무'이지, 절대 '복'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 일은 이상하게 공평하지 않다. 누군가는 항상 많은 일을 맡아 처리하느라 분주하고, 상대적으로 누군가는 한가하다. 학기초에 진상을 제대로 부리고, 자신에게 던져지는 일들을 막무가내로 막아내어 1년을 편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다.
이번 2학기에 업무 분장이 변경되고, 교사 자리배치표가 수정되었다고 실무사로부터 안내메시지가 왔다. 확인해보니 1학년 1반 담임이었던 Y 선생님이 담임 업무를 놓고, 방과후 업무 담당의 비담임으로 바뀌어 있었다. 기간제 영어 샘이 계약 만료로 떠나고, 원래 영어 선생님이 복직을 하면서 기간제 샘이 했던 비담임을 이어서 맡지 않고, 의아하게도 Y 선생님이 맡았던 1학년 1반 담임을 하게 되었다. 복직하는 영어 선생님이 기간제 샘이 했던 방과후 업무를 이어하지 않고, 왜 Y선생님이 뜬금없이 비담임이 되어 그 일을 맡게 되었을까. 2학기에 갑자기 담임이 바뀐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여러가지 일들이 꼬이게 되었다.
기존 담임이 임신이나 병가, 휴직에 들어간 부득이한 경우에 담임이 중간에 바뀌기도 하지만, 중대한 사안이 아니면 학생들을 고려하여 중간에 담임이 교체되지 않는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Y 선생님이 어떠한 이유로 담임을 못한다고 했고, 그러다보니 2학기에 복직하는 영어 샘이 그 담임 자리로 가게 되었다고 들었다. Y 선생님이 기간제 영어 샘이 연구부에서 하던 업무를 맡게 되었으면, 그대로 연구부 자리에서 그 일을 맡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Y 선생님이 방과후 업무 비담임으로 가면서 방과후 업무를 맡은 주무부서까지 연구부에서 창의융합부로 바뀌었다.
방과후업무를 해 온 연구부는 1층 본교무실에 있고, 창의융합부는 별실인 4층 교무실에 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Y 선생님이 1층 본교무실이 불편해서 별실로 가고 싶다고 해서 비롯된 일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교무실만 원하는대로 4층에 쓰게 하고, 방과후업무는 원래 맡았던 연구부에서 그대로 맡는 걸로 하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부장과 계원이 같은 부서로 속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창의융합부 안에 Y 선생님이 오면서 난데없이 방과후 업무까지 혹처럼 붙게 되었다. 떠도는 말 이외에 무슨 속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던 담임을 빼 준 것도 대단한 배려를 받은 것인데, 원하는 교무실에 있게 하기 위해 업무부서까지 바꿔주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구부장 입장에서야 맡았던 업무와 계원자리가 함께 떼어나간 것이라 홀가분해졌겠지만, 창의융합부장은 과학 선도학교로 가뜩이나 업무가 많은데, 부서 특성과 연결점 하나 없는 뜬금없는 업무를 하나 떠맡게 된 셈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3명이 쓰던 좁은 교무실에 Y 선생님이 앉을 책상까지 하나 더 들어오는 바람에 교무실 공간까지 더욱 비좁아졌다.
생각해보니 우리 교무실도 3층 별실인데, 우리 부서로 방과후 업무와 책상자리가 넘어오지 않아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층에도 별실이 있는데 왜 4층 별실이었을까, 갑자기 의문이 들어 우리 부장님한테 슬그머니 물었다.
"1층 교무실이 싫었다면, 2층 건강생활부도 있고 3층 우리 부서도 있는데, Y 선생님은 왜 4층 창의융합부로 가게 되었을까요?"
잠시 생각을 하던 우리 부장님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 이유를 생각해 봤는데요. 건강생활부장이나 나는 올해 부장이 처음이라 맡은 업무하기에도 급급하다는 것을 관리자도 알고 계시겠죠. '누울 자리 보고 다리 뻗는다'고, 관리자들이 봤을때 일 잘하고, 일을 넘겨도 될 만한 사람에게 맡긴 거 아닐까요. 창의융합부장은 일을 별로 어려워하지 않고 잘 하거든요. 또 창의융합부의 굵직한 업무는 1학기에 대부분 끝나기도 했구요. 이건 그냥 내 생각을 말한 거예요."
40대 창의융합부장은 밝은 에너지가 풍기는 사람이다.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편이고, 일처리도 판단도 빠르다. 2학기에 갑자기 업무와 계원이 늘게 되어 스트레스를 조금 받은 것 같긴 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재빨리 받아들이고 깔끔하게 업무를 추진했다. 라벨지에 프로그램명을 깔끔하게 써 붙인 방과후수업 출석부를 일일이 만들고, 출석부 안에 일정을 표시해 놓은 달력도 세심하게 붙여 놓았다. 글씨가 잘 써지는 예쁜 삼색 볼펜까지 출석부에 끼워서 수업하는 선생님들 자리에 배부했다. 1학기에 처리하지 않은 방과후예산의 일부를 아이들 간식비로 책정하여 초콜릿과 대용량의 마이쮸를 제공하기도 했다.
"1학기에는 연구부에서 방과후출석부 파일만 메시지로 첨부하고 말았는데, 창의융합부에서 방과후업무 맡으니까 뭔가 달라도 다르네요."
"그러게요. 삼색 볼펜도 퀄리티가 달라요."
"안 그래도 저녁 때 하는 수업이라 애들 간식을 좀 사서 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간식까지 챙겨주니 최고네요."
"창의융합부장님이 이렇게 일을 잘하니까 교감 선생님이 쌩뚱맞지만 방과후업무를 그쪽으로 보냈나봐요."
선생님들마다 한마디씩 창의융합부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학교일은 질량보존의 법칙이 존재하여 누군가가 일을 넘기면, 또다른 누군가가 반드시 그 일을 해야만 한다. 학교 일은 특히 일 잘하는 사람에게 몰리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이리저리 다 재보고 가장 잘 해낼 사람에게 맡기게 되니, 업무에서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생길 수밖에. 일 잘하는 창의융합부장님 덕분에 맛있는 초콜릿과 간식으로 아이들의 환심을 사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방과후수업을 하고 있으니 감사하게 여기면 되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