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냥 '일희' 할래요

은혜로운 하루

by 은향

A와 한 달여 전에 있었던 일을 쓰고 저장해 두고, 망설이다 이제야 발행합니다. 지난 내용을 먼저 읽으시면, 내용 이해가 더 쉬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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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A와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가끔씩 반항적인 언행으로 당황시키기는 했지만, 선을 넘었다고 하기엔 경계가 모호한 구석이 있어 그럴 때마다 혼자서 불쾌한 기분을 떨쳐 버리고 마음을 삭이느라 온 몸에 사리가 몇 사발씩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어떤 때에는 준비물을 놓고 왔다며 죄송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건방졌다 괜찮았다, 밀당도 아니고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더이상 선을 넘지 않는다면, A를 더 신경쓰지 말고 내 기분과 감정을 최대한 영향받지 않으려 했다.


몇 주간 계속된 말하기 수행평가가 끝나고, 얼마 전부터 기출문제 수업을 하였다. A는 기출문제 제본 책자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수업을 한참 진행하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은 A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길래 가 봤더니 한국지리 수행평가지를 꺼내놓고, 지리 관련 검색을 하고 있었다.


'절대 화 내지 말자, 차분하게 잘못한 점만 지도하자.' 속으로 되뇌이며 지금 국어시간인데 뭐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A는 당당하게 뭐가 문제냐며, 지리 수행평가가 급해서 해야 된다고 정말 눈을 똑바로 뜨고 반항적으로 말했다. 지금 당장 넣지 않으면, 학생생활교육위원회에 보내겠으니 알아서 선택하라고 차분하고도 단호하게 말했다. A는 전혀 굽히지 않으며, 적반하장으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끓어오르는 화를 누르고, 교탁으로 돌아와서 태연한 모습으로 겨우 수업을 마쳤다. 수업 종이 치기 전에 A에게 교무실로 오라고 하니, 당당하게 "네!"라고 대답하고 따라왔다.


양 손에 수업물품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교무실로 향하는 짧은 복도에서, 뒤따라오는 A의 삐딱한 기운이 고스란히 등뒤로 전달되었다. '하나님, 저와 함께 해 주세요!' 속으로 짧게 기도했다. 교무실의 둥근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A와 앉았다. A의 태도는 황당할만큼 당당하고 버릇이 없었다. 자기가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다른 과목을 했을 뿐인데 그게 뭐가 잘못이냐며 적반하장으로 따졌다.


그리고 이번에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그전에 내가 한 말 때문에 기분이 많이 상했다고 책임을 나에게 돌렸다. 선생님을 트집잡아 탓하는 말은 더이상 들어주지 않겠다고 딱 잘라 말했다. 지난 번에는 준비물을 왜 안 갖고 왔는지 먼저 물어봐주지 않았다고 기분 나빴다고 하고... 이번엔 또 무슨 생트집을 잡을지 어이가 없었지만, 내 감정은 누르고 차분하게 어떤 이유로 감정이 상했는지 자세히 물었다.


이유인즉슨 아까 수업 시간에 A가 질문해서 두 번이나 자세하게 설명해 준 내용을 또다시 잘못 작성하고 있는 것을 보고 내가 했던 말을 오해해서 무시당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었다는 것이다. 전혀 A를 질책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지만, 내 말이 기분을 상하게 했다하니 일단 A에게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다고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한편으로는 A의 상한 감정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이해해 주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국어시간에 다른 과목 수행평가를 한 A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말했다. 기분 상한 건 상한 거고, 그렇다고 해서 다른 과목 수행평가를 하면서 선생님한테 예의없고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는 건 잘못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했다.


"이번에는 네가 감정이 상해서 아까 선생님한테 그런 버릇없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갈게. 하지만, 다음부터는 용납하지 않을거야. 그리고 고2나 되었으면서 수업시간에 다른 과목 수행평가 하는 게 잘못인지 모르겠다고 하는 건 이해할 수 없어. 그건 기본적인 예의도 아니고 아주 잘못된 행동이야. 이 점은 분명히 알아 둬. "

"사실 선생님한테 반감이 있어서 아까 그렇게 말했어요."

"반감? 그 반감은 오늘 생긴 거니, 원래 선생님에 대한 반감이 있는 거니?"

"지난 번에 선생님과 그 일이 있고, 그날 딱 반감있었고 그 뒤로는 별로 없었어요. 근데, 아까 수행평가지 작성할 때 시간 여유 없다고 재촉하고, 잘못 쓴 내용을 지적할 때 기분이 확 상했어요."

"아,,, 너는 재촉을 받으면 특히 예민하구나. 그리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거나 설명할 때도 그걸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네. 알았어. 이제 네가 감정 상하는 포인트가 어디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으니까 선생님도 다음부터는 그런 부분은 더 신경쓸게. 그렇더라도, 네가 감정 상했다고 해서 너의 잘못된 행동이 합리화 되는 건 아니야. 앞으로는 너도 네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네 행동을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해서 그렇게 했을 뿐이라는 식으로 남탓으로 돌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가다가 자연스럽게 지난 번 일에 대해 얘기가 이어졌다. 어쩌다보니 내 속마음을 길게 말하게 되었다.

"사실은 그날 네가 선생님한테 '옹졸하다, 미덕이 없다' 이런 말을 세 번 정도 했잖아. 그게 선생님한테 굉장히 상처가 되었어. 화살로 가슴에 콱 박힌 것처럼... 그래서 그 상처를 털어버리려고 오랜 시간 동안 굉장히 많이 노력했어. 선생님이 기도하는 사람이거든. 새벽마다 기도도 하고, 주변 분들에게도 기도해 달라고 부탁도 하고... 무엇보다 너한테 받은 상처를 다시 너에게 돌려주지 않으려고 엄청 애썼어."

나도 모르게 A에게 나의 진심을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올해 이 학교 오기 전부터 몇 달 동안 기도를 엄청 많이 했거든. 아이들을 더 많이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최대한 너희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려 하는데, 그날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선생님이 (팔을 벌리면서)이~~만큼~~ 주려고 했던 사랑을, 그만큼 줄 마음이 식더라. 여기 와서 학생과 갈등이 있었던 게 네가 처음이었거든. 선생님도 부족한 사람인지라 상처를 받으니까, 아이들은 나의 마음과는 다르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자꾸 너희들에게 갈 사랑이 줄어들더라고. 그런 게 또 힘들더라."


이 말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가가 뜨거워지며 붉어지는 게 느껴졌다. 다행히 목소리가 떨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A와 눈이 마주쳤다. 하필... 놀라운 건, 그 몇 초 사이에 A의 눈도 금새 붉어졌다. 뜨거운 눈으로 그 아이와 잠깐 눈이 마주친 사이에, 내 눈에 눈물이 맺히더니 또르르 떨어졌다. 찰나의 간격을 두고 A의 눈에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렸다.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뜻밖의 눈물의 대화란 말인가. 학생과 둘이 테이블에 앉아서 둘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라니... 지금까지 학생 앞에서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있던가. 내 기억에는 전혀 없다. 이런 내 모습에 당황스러웠지만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놓이 휴지를 가져다가 눈물을 닦았다. A도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사실은 지난 번에 제가 선생님한테 그런 말하고 나서 저도 계속 신경이 쓰였어요. 일 주일쯤 뒤엔가 선생님한테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릴까 생각도 했었어요. 근데, 지난 일이기도 하고, 샘한테 찾아와서 말하기도 좀 그렇고 해서 그냥 말았어요. 그리고 선생님이 그 일로 인해서 저한테만 안 좋게 대할까봐 저도 많이 예민했었어요."

"아, 정말? 그랬구나. 그때 찾아왔으면 선생님 마음이 그때부터 참 편했을텐데. 그래도 고마워. 그렇게 말해줘서. 그 말을 해 준 것만으로도 정말 진심으로 고마워. 선생님이 마음이 너무너무 편해졌어."

"아니에요. 선생님도 교사 하시면서 이런 일 없으셨을텐데, 저 때문에 그런 경험하게 해 드려서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우습게도 그 순간 속으로 '아니야, 너보다 심한 애들 엄청 많았어. 너 정도 버릇없고 반항적인 태도는 숱하게 겪었어. 이 정도면 정말 양호하지.' 이런 생각이 잠깐 스쳤다. '그리고 너는 이렇게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 있잖니, 잘못했다고 말하면 샘은 그걸로 끝이야. 더 이상 뭐가 더 필요해.' 부글거리던 감정이 잠깐 사이에 평온해졌다.


"오늘 이렇게 진심으로 대화하게 되어서, 오히려 정말 잘 되었네. 너무 고마워. 그런데, 선생님이 너를 일대일로 상대하는 게 아니고 서른 명이 넘는 아이들을 지도하다보니 또 어느 상황에서 시간에 쫓겨 재촉할 수도 있어. 그리고 선생님이니까 당연히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다른 애들과 똑같이 또 지도를 하게 될 거야. 선생님이 이렇게 너의 특성에 알게 되었으니 네가 예민한 부분에 대해 조심하겠지만, 사람이다보니 내 의도와 달리 네 감정이 또 상할 수도 있어. 그럴 때는 선생님한테 찾아와서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아."

"이제 선생님의 진심을 알았으니 선생님이 지적하더라도 감정이 상할 일은 없을 거에요."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너무너무 고마워! 선생님이 마음이 정말 많이 편해졌어. 정말 고마워~ 수업 시작했으니 얼른 들어가 봐."

"네.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A는 70도 넘게 깍뜻하고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A가 나가자마자 저절로 기도가 나왔다. A와의 대화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A의 마음을 만져주셨기에 진심을 나누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나도 A에게 사실은 네 말이 상처가 되었었다고, 그래서 계속 기도하면서 노력했다고, 너에게 받은 화살같은 상처를 되돌려주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말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내 기도에 하나님이 나의 입술을 움직여 주셨다고 생각한다. 평상시의 나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말을 하고, 눈물까지 보였으니 말이다.


하루에도 수백명의 아이들을 상대하다보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인지라 별 거 아닌 일에도 감정이 상하기 쉽다. 아이들의 사소한 언행 하나하나에 기분히 확 상하고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도, 어떤 때는 또다른 누군가의 사소한 언행에 마냥 웃게 되고 기분이 들뜨기도 한다.


누군가로 인해 일희일비 하지 말자고, 내 기분과 감정을 외적인 것에 휘둘리지 말자고, 아무것도 나를 흔들 수 없다는 태도로 단단하게 중심을 딱 잡고 살자고 다짐하며 애쓰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로 기분이 참 좋다. 오늘은 그냥 마음껏 '일희'하고 싶다. 오늘은 너무나도 은혜로운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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