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수능이 무사히 끝났다 (2)

수능 감독을 하며, 두 번째 이야기

by 은향

정신없이 본부로 가니 일단 예비고사실로 가 있으라고 했다. 예비고사실은 또 어디였던가. 내가 감독하는 분리 시험실 위치만 기억하고 있었기에 또다시 당황했다. 내 표정을 읽은 엄 부장님의 안내를 받으며, 부랴부랴 3층 예비고사실로 향했다.


예비고사실에 가 보니 막상 수험생은 없었고, 다른 감독관 한 명이 뒤에 먼저 와 있었다. 그 선생님은 대기실 감독관이었는데 나처럼 급작스럽게 투입되어 전달받은 내용이 없다고 했다. 1교시 감독 때 반입금지 물품 회수용 바구니와 배부할 컴싸와 샤프펜 등 본부에서 가져와야 하는 물품도 많은데, 그런 건 갖다 주는 건가.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구체적인 안내를 받지 못하고 무작정 예비고사실로 투입되니 우왕좌왕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잠시 후 서무요원 샘과 함께 수험생이 들어왔고, 뒤이어 교무부장님이 와서 내가 정감독이라고 전했다.

"네? 예비감독관 올 때까지 있는 거 아니었어요?"

"선생님이 정감독이라니까요. 예비감독관 오려면 시간이 걸리잖아요."

깜짝 놀라서 묻는 나에게 교무부장은 급한 상황에서 그 정도도 못해주느냐는 듯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린 채 답하고 바로 나가버렸다.


이런, 잠시 대타로 있는 게 아니라 정감독이라니... 상황을 파악했으니 이제 그만 당황하고 정신을 차려야지. 심호흡을 크게 하고, 어제 두 시간 동안 공부하듯 열심히 연수 받은 자료와 요약본에 따로 메모한 주요 내용을 빠르게 스캔했다. 수험생 유의사항과 휴대 금지 물품, 4교시 한국사 필수 응시에 대한 고지 등을 침착하게 안내했다. 수험생에게 마스크를 내리라하고 본인확인까지 철저하게 했다. 역쉬, 열심히 연수받은 보람이 있네. 차분하게 전달하고 본인 확인까지 잊지 않고 한 나를 셀프 칭찬하기까지 했다. 그 사이에 서무 요원 샘이 와서 반입 금지 물품을 회수해가고, 답안지와 문제지 한 부씩을 전달해 주었다.


1교시 본령이 울리고, 갑자기 나는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본령 후에는 수험생 답안지를 확인하고 정감독이 감독관 확인란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근데 이 경우에는 내 도장을 찍는 게 맞는 건지, 수험생이 원래 있던 시험실의 정감독이 도장을 찍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수험생이 작성한 답안지의 기입 내용을 빠르게 확인했다. 막상 내 도장을 찍으려는 순간, 뭔가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망설여졌다. 아무래도 모를 때는 묻는 게 상책. 부감독관을 통해 본부에 질문을 했다. 본부의 답변은 정감독관이 도장을 찍으면 된다는 것.

가만, 답안지에 내 도장을 찍으면, 답안지 회송용 봉투를 별도로 주어서 거기에도 감독관에 내 이름을 쓰고 똑같이 도장을 찍어야 하는 게 맞을텐데... 그런데, 답안지 회송용 봉투는 안 주었잖아. 아까 수험생이 있던 기존 시험실에서 문제지와 답안지를 한 부씩 빼서 준 거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답안지도 원래 시험실의 회송용 봉투에 넣을 거 아닌가. 근데 이 답안지에 내 도장을 찍으면, 한 시험실 답안지에 감독관 도장이 다를텐데 그래도 괜찮은건가. 본부에서 내 도장을 찍으라고 했지만, 나는 계속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허무하고도 단순했다. "에잇, 위에서 하라는대로 해야지 뭐."


시험 시작한 지 15분도 채 안 되어서 답안지를 찍고 자는 학생 옆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답안지에 도장을 찍었다.

기침이 심해서 따로 시험 보겠다고 수험생이 요청해서 예비 시험실로 옮긴거라고 했는데, 사실 1교시 동안 딱 한 번 기침을 잠깐 했을 뿐이었다. 수험생은 15분 정도 앉아서 답안지에 자기 나름의 규칙적인 모양으로 마킹을 한 후, 종료령이 울릴 때까지 쭈~욱 푹 잤다.


정감독인 나는 1교시 감독에 투입된 120분 중에 부감독 샘이 교대해 준 30분 정도 뒤에 잠깐 앉아 있고, 90분을 쭉 서 있었다.

그나저나 나는 오늘 감독이 어떻게 되는 거지? 유일한 휴식시간 1교시를 이렇게 꼬박 감독했는데, 설마 원래대로 2~4교시를 그대로 감독하라고는 안 하겠지. 배려없이 그냥 감독시간표 대로 다 들어가라고 하면, 어떻게 항변을 해야 할까. 무리하게 감독하다가 이석증이 도져 쓰러질 수 있다고 귀여운 협박을 할까. 1교시 감독하는 동안 답안지에 감독관 도장찍는 문제와 이후 감독 시간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종료령이 울리고, 부감독 샘이 나오면서 말했다.

"저 학생은 기침이 심한 것 같지도 않은데 굳이 예비시험실에 왜 있는지 모르겠네요. 십 여분 동안 답안지 찍고 자는 학생 한 명을 위해 예비 시험실 운영하느라 너무 많은 인력 낭비되는 것 같아요."

"어쩌겠어요. 오늘은 수험생을 위해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수능날이잖아요."


1교시 감독이 끝나고 나서야 긴장감이 사라지고 맥이 풀렸다. 분리 시험실 본부로 가니 엄 부장님이 고생했다고 반기며 말했다.

"분리시험실 수험생이 2교시 미선택이래요. 샘들 모두 1교시 고생했는데, 2교시는 쉬세요."

와우~ 다행히 한 번은 쉴 수 있구나. 신이 나서 쉬고 있는데, 본부에서 서무 요원 샘이 나를 부르러 왔다. 급하게 본부로 가보니 예비고사실에서 시험 본 학생이 원래 있던 시험실의 1교시 회송용 봉투에 내 이름도 정감독으로 쓰고 도장을 찍어야 한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당연히 회송용 봉투에도 내 이름과 도장이 있어야지 답안지 도장과 일치하는 거지. 뭔가 풀리지 않은 수학 문제를 해결하고 난 것 같은 개운한 마음으로 도장을 찍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분리실 본부로 돌아왔는데, 잠시 후 교감 선생님이 직접 찾아와 나를 불렀다. 뭐지?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가슴이 철렁했다. 놀라서 본부에 가니 1교시에 감독한 예비고사실 수험생의 답안지에 수험번호 마킹이 잘못되어 있었다. 수험번호 1,9를 수험생이 같은 라인에 마킹을 한 것이었다. 이런!!! 내가 왜 이걸 제대로 확인 못했지?

"어머, 아까 분명히 답안지 확인 했는데..."

너무 부끄럽고 민망한 마음이 들었다. 답안지에 감독관 도장을 내가 찍는 게 맞는 건지에 너무 몰두하다가 정작 중요한 인적사항 확인을 급하게 해서 놓쳤나 보다. 시험 본부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꽂힌 것 같아서 마스크를 썼는데도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수정사항 확인 후 도망치듯 본부에서 빠져 나왔다.


분리시험실로 돌아가니 엄 부장님이 왜 불렀냐고 물었다. 답안지에 수험 번호 마킹 오류를 확인 못했다고 말했다.

"달랑 답안지 한 장인데, 그거 하나 제대로 확인 못했어요. 너무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어요."

옆에서 쉬고 있던 다른 감독 샘들도 내 말을 듣고 웃으며 한 마디씩 거들었다.

"샘, 아마 이거 1년짜리 놀림감 될 거 같은데요."


"그러게요. 제가 왜 그걸 제대로 못 봤을까요." 샘들을 따라 함께 웃었지만, 속으로는 수험번호 마킹도 제대로 못한 그 수험생에 대한 원망과 답안지 하나조차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한 나에 대한 자책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이 일을 떠올리며 잠 못 이루고 혼자서 이불킥을 얼마나 날리게 될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점심을 먹으며, 오후에 남은 분리시험실 감독은 아주 깔끔하게 잘해야지 비장한 각오까지 다졌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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