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가 소진된다고 생각될 때
전직을 했을 때, 나는 나의 연봉과 직급을 포기했다. 팀장이라는 직급과 명함, 그리고 또래 대비 적지 않은 연봉을. 새로운 곳에서는 경력이 없기에 경험을 쌓기 전까지는 그것들을 당연히 내세울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것들은 있다. 근로시간, 밥시간, 휴게시간, 연차사용 등 어느 정도 규모의 회사라면 당연시 지켜지는 것들이 이곳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처음 근무를 시작하고 계약서를 봤을 때 이건 처음 이야기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계약서에는 협의되지 않은 내용의 '수습 기간'이 적혀있었고, 심지어 수습 3개월 기간 동안은 급여가 90%라는 것이다. 수습 이야기도 처음 들어 황당한데 급여 삭감은 더 황당했다. 요즘은 수습기간이어도 100프로 급여를 지급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사장님께 건의를 했고, 그러자 3개월을 2개월로 조정해 준다고 했다. 이게 맞는 조정인 걸까? 입사 시에 없던 이야기라 당황했지만, 전직을 하는 입장이니 알면서도 조금 손해 보자고 생각하며 이 일을 시작했다. 당연히 있어야 할 점심시간도 없었다. 손님 없을 때 알아서 챙겨 먹으라는 식. 그래서 우린 각자 집에서 먹을 것을 챙겨 와 나눠먹기도 했고, 돌아가며 식사를 주문해서 먹기도 했다. 물론 개인 돈으로. 동료 중 한 명은 "내가 돈을 벌려고 일을 하는 건지, 쓰려고 일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라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점심 식비가 꽤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 52시간이라는 법정 근로기준법과는 다르게 나는 54시간을 근무했다. 점심시간도, 휴게시간도 생략된 채. 그러다 사장님도 이건 너무하다 싶었는지 아님 본인이 법을 어긴 것을 인지한 것인지 마감 시간을 한 시간 줄이면서 겨우 주 52시간이 되었다. 여전히 점심시간과 휴게 시간은 없었지만.
아무리 내가 손해 보더라도 이 열악한 근무 환경을 그러려니 이해하며 다니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를 매우 화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평일 월, 화를 쉬고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근무를 하는 것으로 계약되어 있는데, 계약서에는 언제든지 월차를 사용할 수 있다고 적혀있었다. 대신 월차를 사용하면 급여에서 연차수당이 제외된다는 말과 함께 적혀있었다. 오랜 직장생활을 한 나로서는 연차수당이 제외되고 급여가 지급되는 것도 이해가 안 갔지만, 이 분야는 사무직과 다르기에 급여가 깎일 각오로 연차를 사용하겠다고 했다. 한 해 목표 중 하나였던 중요한 마라톤 대회가 있었고 (빵과 관련된) 취소표를 겨우 신청해서 된 것이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마라톤은 일요일에 진행되었고, 어쩔 수 없이 일요일에 월차를 사용하겠다고 하자 주말이라 사용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입사 후 처음으로 월차를 사용하겠다고 말한 상황이었다. 주말도, 점심시간도, 휴게시간도 없이 6개월쯤 근무를 한 시점에.
억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사 전에는 주말에 일이 있는 경우 스케줄 협의가 가능하다고 했다. 더욱이 내 연차수당을 제외하고 쉬겠다는데 안된다고? 게다가 내가 주말에 근무를 하는데, 평일에만 연차 사용을 할 수 있다는 건 무슨 논리일까? 그럼 내 근무 스케줄을 평일로 바꿔줘야지.
안된다는 이유가 더 기가 막혔다. 나 대신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나는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토일 주말은 모두 절대 개인일정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인데 너무하다 싶었다. 이 논리라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결혼식도 못할 판이었다. 결혼식은 일요일에 잡아놓았으므로.
이곳의 다른 직원들은 서로 스케줄 협의를 하며 주말 중 하루는 휴무를 하는데, 왜 나랑 매니저님만 홀 직원이라는 이유로 주말 이틀 풀근무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일요일 월차 사용을 매니저님께 먼저 여쭤봤었을 때, 아마 안될 거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본인도 예전에 중요한 약속이 있어 사장님께 이야기를 했더니, "직원이 무슨 주말에 쉬어?"라고 하며, 단번에 거절했었다고. 맘이 상한 매니저님은 하루 종일 사장님 얼굴도 안 쳐다보고 있었다고 했었다. 나 역시나 그녀와 같이 단번에 거절당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수긍할 수 없었다. 사실 마라톤은 포기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안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월차사용은 내 권리이고, 사장님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직원들의 권리를 본인 마음대로 결정하면 안 된다는 것을. 요목조목 따진 끝에 겨우 월차를 사용해서 마라톤에 참가할 수 있었지만,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이 일이 지난 후 나는 상급자들에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분야에서는 네가 다녔던 회사처럼 원하는 때에 월차를 낼 수 없다는 피드백과 함께. 윗사람 입장에서는 본인이 안된다는데 기어이 하는 내가 미워 보였겠지만, 나는 그 미움을 받을 용기가 충분했다. 부당한 것은 묵인할 수 없는 성격이기에. 모든 F&B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아직 그런 문화가 남아있다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직원수가 많지 않거나 특수한 매장의 경우 이 일이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 너무 바쁜 주말에는 사용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곳은 직원이 22명이나 있는 법인회사였다. 나 하나 주말 월차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해줄 생각이었다면 알바와 스케줄을 바꾸던, 사장님이 잠깐 나오던, 얼마든지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단번에 거절한 것은 나로서는 '그렇게 해줄 마음이 없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였을까? 나는 마음이 뜨기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이처럼 뒷꼴 당기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료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해내갔고, 누군가의 끼니를 제공하는 일에 도움이 된다는 느낌도 좋았다. 더욱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기꺼이 돈을 포기하고 힘든 일을 해내가는 나 자신이 대견했다. 하지만 일을 할수록 내가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 에너지만 소진된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더 이상 이곳에서 근무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내 꿈을 찾아가기 위한 길이 이곳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퇴사를 결심했다. 1년을 3개월 남긴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