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내 마음

퇴사하는 그날까지

by 코지

사실 퇴사를 결심한 데에는 남자친구인 F의 영향이 꽤 있었다. 그는 그동안 일을 하며 피로누적에 점점 지쳐가는 나를 보며 그러다 몸 상한다며 걱정을 하던 사람이었다. 어떻게든 나의 체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흑염소 즙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아침저녁으로 흑염소 즙을 챙겨 마시며 전보다는 조금 체력이 나아지긴 했지만, 점심도 제대로 못 먹고 하루 종일 서있어야 하는 열악한 근무 환경에 나를 많이 안쓰러워했다.


그러다 '주말 월차 사용 사건'으로 단단히 화가 나있던 나에게 F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지금 근무하는 곳을 그만두는 건 어때?"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 내 계획에 최소 1년은 이곳을 다닐 생각이었고, 지금까지 아무리 힘들어도 1년 미만으로 근무를 한 곳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것은 은연중 나와 약속한 일종의 룰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몇 개월을 더 다니는 것이 우리 관계에도 좋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결혼준비를 함에 걸림돌이 많았다. 업체 미팅이나 상담을 하러 갈 때 주로 토요일에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내가 한창 근무를 하고 있을 때였다.


생각해 보니 직장인인 그와 주말마다 토, 일 풀근무를 해야 하는 나의 연애환경은 어쩌면 최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이해가 없었더라면 진작 헤어졌을 것이다. 주말 근무 후 데이트를 할 때면 나는 늘 '피곤해, 내일도 7시 가지 출근해야 돼'라며 생기 없는 모습으로 만나곤 했다. 어딘가 놀러 가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가 평일 월차사용을 해야 했다. 내가 쉬는 월, 화요일이 그는 가장 바쁜 날이었음에도.


그는 나에게 "결혼 전에 퇴사를 하면 우리가 최소 여행이라도 한번 더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우리에게 또 하나의 추억이 생기는 거고. 1년을 채우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후에 우리의 추억이 더 소중할 수도 있어"라고. 그렇게 나는 '퇴직금' 대신 '우리의 추억을 쌓을 시간'을 선택했다.


하지만 퇴사를 내뱉은 후 나의 마음은 오락가락했다. 그래도 좀 수월한 평일 날이면 '1년을 채울 걸 그랬나?'라는 마음이 들다가도 진상 손님을 만나 괴로운 날에는 '그래 그만둔다고 말하길 잘했어'. 동료들과 웃으며 농담을 할 때면 ' 동료들과의 시간이 가장 아쉽네' 등등. 동료들이 내 퇴사날을 알게 되었을 때는 대부분'그래도 1년만 버티지 아깝다.'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내가 1년을 버티지 않은 이유는 그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퇴사 마지막 날, 사장님은 작고 예쁜 딸기 생크림 하나를 가지고 오셨다. ' 미운 놈 떡 하나 더 줘야지'라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다 같이 축퇴사를 기원해 주는데 매니저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마도 함께 같은 업무를 하며 서로의 심정을 가장 많이 이해할 수 있었던 둘이기에 그랬을지도. 그 모습을 보자 나 또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렇게 약 8개월 간의 희로애락에 마침표를 찍으며.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떠났다.


친한 언니는 나에게 네가 오죽했으면 1년을 안 채웠겠냐며. 그 정도로 그만둬야 할 이유가 있었을 거라 나를 이해해 줬다. 그 이유가 체력이던, 결혼준비던, 나는 나를 살려 내야만 했다.

후련하기만 할 줄 알았던 퇴사 날.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아쉬움이 남았던 이유는 이제는 지금의 동료들과 이제는 일상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것과 수많은 고민 끝에 전직을 했던 첫 번째 직장이라는 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느 때와 다르게 후련하지 많은 안았던 퇴사 날. 마침표를 찍어야 새 문장을 쓸 수 있듯이 이곳에서의 나날을 끝내려 한다. 새롭게 시작될 다른 나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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