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운전할 때 가끔 지역 가톨릭 평화 방송을 듣는다… 하루는 '부, 성공, 사랑'이란 이름의 세 노인 이야기를 들었는데, 요약해 보려다가 거의 같은 내용의 게시글들을 찾게 되어 한 링크를 걸어둔다... 스포 해보면 '사랑'을 택했더니 '부'와 '성공'이 함께 들어왔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사랑을 선택했을 때, 오히려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도 겪다 보니, '사랑'이 부나 성공보다 중요하다는 것이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정말 그럴까 싶을 때도 있다…
사랑과, 성공, 부 모두 이루면 가장 좋을 것이다… 그게 어려운 이유를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리히 프롬의 글을 빌려,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 때문이라 해본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이 노동력을 지배하게 되면서 인간은 점차 고립되고, 이 과정에 사랑도 구매하려 할 수도 있지만 결국 완전한 만족으로 갈 수 없다는 셈이다(https://herbes.tistory.com/5 참고). 자세한 내용은 <사랑의 기술>에 설명되어 있는데, 많이(?) 어렵긴 해도 재밌다(??).
꼭 자본주의 때문만이라기보다,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고, 더 경쟁하게 되며, 분명 더 사랑하기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에리히 프롬은 사랑도 예술이나 의학처럼 기술을 연마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도, 정작 구체적 방법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내 생각엔 그는 이 부분을 대외비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그 또한 여러 차례 실패 끝에 사랑을 이뤘기 때문이다. 영업비밀을 알려주지 않는다
이쯤 돌아보는 세 명의 노인 이야기. 라디오를 들으며, 그냥 그렇고 그런 좋은(?) 이야기로 생각할 뻔도 했지만, 마지막 부분이 결국 마음에, 기억에 남았었다.
사랑이 일어나 집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른 두 사람도 일어나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놀라서 그 부인이 "저는 단지 사랑 만을 초대했는데요. 두 분은 왜 따라 들어오시죠?" 물었다.
두 노인이 같이 대답했다. "만일 당신이 부 또는 성공을 초대했다면 우리 중 다른 두 사람은 밖에 그냥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사랑'을 초대했고 사랑이 가는 어느 곳에나 우리 부와 성공은 그 사랑을 따르지요."
어찌 됐건 세상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고, 사랑과 성공은 함께 잡기 어려운 두 마리 토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사랑에 성공하자(…) 이 성공의 기준은 어쩌면 나에겐 없다.
혹시 몰라줘도, 돌려받지 못해도, 그 많은 어려움과 주저함, 무기력함, 두려움, 아쉬움, 슬픔 속에서도 우리가 사랑해 낸 노력들을, 사랑은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랑일까, 성공일까?
정답은 아니겠지만, 나는 사랑보다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땐 조금씩 또 내려놓아 봐야겠다. 이걸 사랑을 택한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면 사랑이다. 백 번 물으면 아흔아홉 번,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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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챙기며 쓰는 짧은 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