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시기에 경기도 소재 가톨릭 재단 C대 성당에서, 이럴 거면 그냥 학교 이름을 다 말하지(…), 신부님의 특강을 들은 적이 있다. 희망에 대한 특강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된, 정말 좋은 강의를 들었다고 느꼈다. 특강 제목을 찾았는데, "별을 향한 쉬운 길은 없다"다.
그때 들었던 강의에 대한 기억도 그렇고, 조금 더 찾아봐도, 신화 속에서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 등에서 큰 활약을 하지만, 고향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그 여정에 대한 이야기가 당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게 되었다고 하고, 어쨌거나 신화 <오디세이아> 이야기에서 오디세우스는 결국 이타카라는 도시로 돌아온다.
우리는 왜 자꾸 슬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는 걸까. 어쩌면 역설적이게도 돌아오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여행의 목적은 다양하겠지만, 결국 터미널에서 얼른 목적지로 가고 싶어 하듯, 여행 중에는 숙소로, 숙소에선 식당으로, 여행지로… 그렇게 집에 돌아와선 "집이 최고다"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도... 어쩌면 집으로, 우리는 집에 가려고 집을 떠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보면, 그러니까 여정을 계획한 사람은, 또한 거쳐가는 시설을 디자인한 사람은, 여행하는 사람들이 길을 잃는 것을 반기진 않는 것 같다. 이정표를 달고, 바닥에 쓰기도 한다. 사람도 사용(?)하며 어떻게든 여행객을 목적지까지 안내한다.
그럼에도 우린 수 없이 헤매고 틀린다. 여행과 실수야말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닐까. 길을 잃고, 찾아가게 된다. 평소보다 실수를 많이 하고, 더 배운다. 사실 여행을 통해 성장해지고 성숙해진다. 그렇게 집으로부터 멀어진 우리는, 탈 것의 출발하는 시간을 확인하고, 짐을 챙겨 돌아오는 길을 나선다.
오디세우스는 잘못도 거듭한 부족한 캐릭터라 한다. 그럼에도 그는 그 와중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그 의지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는 왜 주구장창 집을 떠나는지 모르겠다.
집을 나서면 어쩌면 무의식적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더 떠올리거나 티를 내려는 때도 생기는 것 같은데, 그건 여행 중에 만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우상들로부터 여정의 방향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함은 아닐까 싶다.
우린 어떻게 인어로부터 우리 자신과 이웃을 지키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느님의 부르심에 세리였던 마태오도 길을 떠난다. 23년 2월 25일 매일미사에는 이 그림에 대한 강론과 교황님의 인터뷰 내용 등이 담겨 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성 마태오는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며 느꼈을 죄책감과 로마 제국이라는 우상으로부터 해방되는 큰 희망을 느꼈을 것이다. 오히려 드디어 고향에 도착한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집을 떠나는 순간 목적지는 다시 집이다. 그렇다면 집에서 떠나는 것이 좋을까, 처음부터 떠나지 않고 머무르는 것이 좋을까. 어찌 됐건 저찌 됐건 우리는 몇 번이고 또 떠난다.
그렇게 떠냐면 깨닫게 되는, 한참을 가다 집을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인간은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존재가 아닐까도 싶다. 그 모든 것의 이유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힘도, 어쩌면 우리들의 집도… 다름 아닌 사랑 아닐까…
참고자료
https://missa.cbck.or.kr/DailyMissa/20230225
https://brunch.co.kr/@sfwriter/8
https://scentbook.tistory.com/entry/%EC%98%A4%EB%94%94%EC%84%B8%EC%9D%B4-%EA%B2%B0%EB%A7%90-%EB%B0%8F-%EB%8A%90%EB%82%80%EC%A0%90
https://m.blog.naver.com/hkh5906/222287563718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252654&memberNo=42430508
https://m.cafe.daum.net/ignatius/1qZ2/1149?q=D_eDVTyqmBw5I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