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내려받게 된다.
소설 <벤허>는 교황 레오 13세의 축성을 받았다고 한다.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1959년 개봉한 영화는 아카데미에서 11개의 상을 수상했다(타이타닉,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수상 기록이 각각 11개라고 한다.)…
극 중에서 유다 벤허의 가족은 이스라엘의 명문가 귀족으로, 로마 제국의 점령, 옛 친구 메살라의 출세에 대한 욕심, 동생의 실수가 맞물리며 죄를 덮어쓴다.
벤허는 감옥에 갇힌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메살라에게 쳐들어간다. 메살라는 벤허가 무고함을 알고 있었지만, 출세욕 때문에, 그리고 그가 지배하려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 형벌을 고집한다.
사형수가 되어 끌려간 벤허는 죄수들과 함께 군인들에게 이송되다 한 마을에 이른다. 로마 군사들과 죄수들은 물을 마시며 목을 축였지만, 그는 반역죄로 물 마시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어찌 물 한 바가지를 잡게 되지만, 로마 군인이 뺐는다.
벤허는 절망하여 쓰러지고 하느님을 찾는다. 그때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의 얼굴에 물을 적시고, 물을 마시게 해 준다. 그 마을의 이름은 나자렛이다.
로마 군인이 이를 보고 그에게 물을 주지 말라고 달려오지만, 사내를 보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되돌아간다. 벤허는 힘을 되찾고, 그도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다시 끌려간다.
억울하게 노예로 전락한 운명. 물 한 모금 허락하지 않는 로마 군인. 하느님을 찾는 순간에 등장한 신비로운 사내. 갈증이 해소되는 상황에 대한 안도감. 군인의 미묘한 표정. 끌려가면서도 신비로운 사내를 자꾸 돌아보는 벤허(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모습을, 벤허를 본 사람들은 그 장면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벤허는 노예선에 끌려가고, 3년이 지난다. 로마의 제독 아리우스는 벤허를 보고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차리고, 그의 검투사 등이 될 것을 제안하지만, 벤허는 본인이 남의 노예로 살다 죽을 운명이 아니기에 하느님이 자신을 살려 놓았다며 거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해전이 일어나고 그들이 탄 배가 침몰한다. 살아남은 아리우스는 생을 마감하려 하지만 벤허가 그를 말린다. 다른 범선(?)에 구출된 그들은 오히려 해전에서 이겼음을 깨닫게 되고, 아리우스는 개선장군이 되어 로마 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는 벤허의 무고함을 알리고... 벤허는 전차수로 여러 번 우승하고... 아리우스는 죽은 친아들 대신 벤허를 아들로 입양하고... 벤허는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된다.
유대인 사회에서의 최고 귀족이었던 유다 벤허가 땅바닥에 엎드리기까지,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벤허는 왜 노예가 되어야 했나, 다시 말해서 작가는 왜 그를 고생시켰나… 그러니까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가 고생한 스토리를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봤을까.
어쩌면... 작가는 그 무엇 보다도, 희망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 신비로운 누군가로부터 마실 물을 받는 장면, 벤허가 탔던 노예선이 침몰하는 장면, 노예의 신분에서 풀려나는 장면, 그의 가족이 구출되고 나병이 낫는 등의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은 절망과 희망을 느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신비로운 한 인물이 등장한 것은 20분정도였다지만, 사람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무엇을 하셨는지 안다.
다음은 아리우스와 벤허가 배에서 나눈 대화.
아리우스 : “뱃전에서 노질을 하다 죽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
벤허 : “하느님이 나를 노예선에서 죽도록 3년씩이나 살려뒀을 리가 없다.“
아리우스 : “존재 자체가 목적이 있다고 믿는 것은 이상하고 고집스러운 믿음이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오래전에 그런 희망을 버렸을 것이다.“
벤허 : ”당신은 그랬던 것 같군요. 무슨 일로 희망을 잃게 됐습니까?(what drove it out of you?)“
아리우스 제독은 대답하지 않고 벤허를 자리로 내려보낸다. 이후 전투가 시작되자 그는 벤허에게만은 노예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발목에 채우는 쇠사슬을 채우지 않도록 한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건, 우리의 운명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어쩌면... 사랑이다.
결국 이 영화에 구성된 다양한 스토리라인, 옛 친구와의 우정과 갈등, 벤허의 복수심, 우연히(?) 지나친 나자렛 마을, 벤허를 살려준 손길, 그 가운데 되살아난 그의 신앙과 희망, 전투에서 패배한 줄 알고 자결하려던 제독, 그가 벤허를 양아들로 받아들이는 장면, 마차 전투, 십자가, 골고다 언덕, 나병의 치유, 그 모든 장면이 사실 사랑을 말하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며칠 전) 역에서 비둘기가 걷는 모습을 보게 됐다. 비둘기는… 빙판길을 가듯 걷고 있었다… 그 말은, 이곳은 비둘기가 걷기 힘든 곳인데, 여기에… 적응했다… 본인에게 맞지도 않는 대리석? 바닥을 그냥 걸을 뿐이다(ㅋㅋㅋ). 아무도 비둘기를 내쫓지는 않는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지만… 비둘기도 비둘기일 뿐이겠지만...!
사랑은 이스라엘의 높은 귀족이었던 벤허를 낮춘다. 로마의 억압이 갈수록 심해지는 그 시기에 이스라엘 인들은 정말로 많이 혼란스러워했을 것이다. 벤허의 옛 친구는 아무리 탄압하려 해도 끊어지지 않는 이스라엘인들의 믿음에, 본인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벤허의 경우는 모든 것을 잃은 절망의 순간에 하느님에 대한 믿음 또한 잠시 잊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가족들이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상황에 차분하게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그런 상황에 작가와 감독은 오히려 벤허를 낮춘다.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을 것 같은 힘든 순간에 사랑은 잔뜩 낮춘 벤허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사랑은 그렇게 사랑하는 대상을 살리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작가 마음이다. 벤허를 고생 시킨것은… 그렇다면 사랑도 사랑 마음이 아닐까.
우리는 어쩌면 우리를 낮추었을 때 사랑을 내려받게 된다. 그렇게 사랑에 계속해서 청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스스로 어떻게 해보려 하다가 오히려 사랑으로부터 멀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참고자료
https://namu.wiki/w/%EB%B2%A4%ED%97%88
http://www.koreafilm.co.kr/movie/review/benhur.htm
https://www.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9154828
https://ko.wikipedia.org/wiki/%EB%B2%A4%ED%97%88_(1959%EB%85%84_%EC%98%81%ED%99%94)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103239947Q
https://namu.wiki/w/%EB%B2%A4%ED%97%88(1959%EB%85%84%20%EC%98%81%ED%99%94)
https://blog.naver.com/wellpigs/223715327459 (많은 사진 등을 이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