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님을 이야기하는 이유

by 복음과 은혜


주님께 한 없이 부족한 내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 주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보게 되었고, 그 이유를 한 번 정도 적고 가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도 께서란 기도문장이 기도문에서도 있듯이(참고로) 그리스도님이라 하지 않는 것을 듣고 보고 "님"이라는 존칭도 붙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혼자 기도할 때는 그리스도님이라 하는 편이고, 함께 기도할 때도 그리스도님이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강조했다. 현대인들이 사랑을 감정으로 생각하지만, 사랑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자본주의 속에서 사랑 또한 상품처럼 구매하려 한다는 구조적인 문제도 꼬집었다.


그렇다면 구조를 바꾸면 될 것인가? 어쩌면 아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을 성공하는 방법을 공개하지 않았다(https://brunch.co.kr/@kojinkyu/204 참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한 21,5-12)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것이 사랑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구원받는 것도, 기적이 일어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주님에 대한 믿음과 주님에 대한 순종, 주님께 돌아가는 회개 때문이라 배웠고, 미사에 참례하면서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더 드는 것 같다. 사랑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 주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보편지향기도에서 종종 듣는다.), 말하자면… 사랑의 주인이시다. 에리히 프롬이 사랑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원인을 분석했으며, 사랑하기 위한 훈련을 강조했다면…

이것은 내가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요한 15,6-7)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려 할 때... 많은 방해물들이 있다. 특히 나를 포함한 믿음이 약하고 나약하며 악한자들... 아마…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서 여전히 악하고, 회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와 같은 악한 자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결국엔 주님의 심판을 받는다.


반면, 방해물이 있든 없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순종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 같다. (사랑에) 성공하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나아가고 청해드리고, 계속해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을 해나가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은 내 노력을, 내 지위를, 내 지식을 내세우려고 할 때보다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내려놓을 때 주님께서 가능하게 해 주시는 것이리라. 사랑을 받으려고 하기보다는 사랑하는 능력을 위한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에리히 프롬의 주장은 이런 방면으론 힘을 얻는 것 아닐까 싶다...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 이 제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한 21,20-23)


주님께서는 베드로 성인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며 세 번 물으셨다. 주님께서 직접 사랑하느냐? 하시며 물으셨으니, 베드로 성인 입장에서 머리를 싸매지 않을 수 있었을까? 주님께서 베드로 성인의 눈높이에 맞추시어 낮추시며 말씀하신 3번째 질문 후에(260206 추가), 주님께서는 베드로 성인에게 "나를 따라라" 하시고 말씀하셨다. 그 3번의 물으심 동안 베드로 성인이 머리를 싸맬 때(???), 주님을 요한 사도 성인이 따라가고 있었다.


주님께서 천국의 열쇠를 주신 베드로 성인의 삶은 교황의 삶이고(베드로 성인의 삶이고), 이를 기록한 요한 사도 성인은 요한 사도 성인 나름대로(???) 주님을 따르고 있었다는 것을 주님께서 보여주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주님께서 주신 3번의 질문 끝에 주님께 직접 가이드를 받은 베드로 성인(아닐 수 있지마는), 주님께서 돌아가시고 살아 돌아오셔서 베드로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사랑하는지 물으시는 그 순간도 조용히(??) 주님을 따른고 있었던 것이(260206에 수정 및 삭제선 표시)다. 요한 사도 성인.



점포를 떠날 때 얼음을 달라고 하셨던 상주직원분… 왜 그러시는지가 이해가 됐다. 빵을 먹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답답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260217중간내용 삭제) 그것이 좋다 나쁘다 맞다 틀리다고 말하고 싶다기보다는… 주님께 나를 낮추었을 때… 주님 덕분에 우리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주님께선 베드로 성인이 사랑하는 것을 알고 계셨으므로,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질문하신 것은 아닐 것이다. 주님의 의도에 대해서는 많은 신학자들의 해석이 있을 것이므로 그것이 답일 것이지만, 그 상주직원분은 그냥 얼음이 필요하셨다기엔 바리스타분이 앞(??\260225추가…)손님에게 안 된다는 안내를 하셨기 때문에… ‘혹시 그것이 될지’, ‘우리 사이에 문제가 없을지(ㅁ쳣니?)‘ 확인(260217추가)하는 마음도 0.000%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260206에 보완).


반복되는 삶 속에서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사랑할 수 있는 틈새를 찾고 발견하게 될 때가 아닌가도 싶다. 그 힘을(그 힘 또한) 주님께서 가지고 계시고, 주님께 청하는 주님의 자녀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리라...


그리스도님이시다. 그래서 더욱. 사랑을 이야기할 때 그리스도님을 빠뜨릴 수 없다. 모든 것을 그리스도님을 통하여... 그리스도님 앞에서 주님의 수제자인 베드로 성인만큼 으뜸의 모습들이 주로 전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주님 곁에서 조용히 머무른 것으로 전해지고 주님을 가장 먼저(???) 알아봤던 요한 사도 성인도 베드로 성인도 주님의 사도들 모두와 모든 성인의 믿음과 순종 또한 공경하며... 그 사랑(의 방법)을 기억하며... 그들을 성인으로 만들어 주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도… 기억하며. 내가 주인공이 아님도 다시 깨달으며.


주님께서 정답이시다. 인간이 정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를 기억하도록…




참고자료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V%26A_-_Raphael, _The_Miraculous_Draught_of_Fishes_%281515%29.jpg


(260206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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