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하지 마시오!!!

by 복음과 은혜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이번엔 어떤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야 하나 고민이 사실 되지만은, 아무래도 지금 떠오르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고해성사를 보러 왔다가 내가 늦었고... 1시 정도에 다시 오라고 하셔서 서점으로 왔다.


오늘도 이곳으로 오기까지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고, 대부분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나만 소개하자면... 좋지않은(??) 내용들은 주님께 의탁해드리고, 비둘기 3마리가 고해소 가는 길 광장(?)에 내려 앉은 장면을 쳐다보게 된 순간(??)이 기억난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라고 하지만, 도시에서의 비둘기는 사람들에게 가끔은 혐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지난번 글에서 비둘기가 기차역 안에서 미끌어지면서 걷는 것을 보고 깨닫게 된 것이 있다고 썼던 기억도 나는데, 비둘기는 어쩌다가 평화의 상징이 된 것일까? 구약성경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https://www.ghu.ac.kr/SymbolOfTheUniversity참고).





명동성당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다 보면 파밀리아성당(?) 앞 성모님께서 계시는데, 정면을 보고 계시지 않는다. 몇 번 성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성모님 성상의 시선을 따라 가본적 있는데, 장애인분들이 올라가실 수 있도록 하는 경사로(??)였다. 지난 번에도 찾았던 적이 있는데, 오늘은 아~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고, 글로도 올려볼까란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예나 지금이나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전에, 나처럼 누가 이웃인지 따지려는 사악한 자들이 있었다. 나처럼 사악한, 그렇지만 나보다 훨씬 더 똑똑한(당일 추가) 율법 교사들은 예수님을 이기지 못하고 졌다... 대구에서 살던 동네의 신부님께서 "예수님께서 옳으시고 저는 틀렸습니다." 라고 말씀하셨던 강론이 기억난다.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루카 10,25-28)


주님께서 말씀하신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을 온 일생(목숨을 다하여 사랑해라 하시(260216추가)는 말씀(!!!)이 이 뜻이라 한다..!)을 다해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정확한 것은 성경을 연구하시는 분들이 나보다 훨씬 더 잘 아시겠지만... 누가 이웃인지가 궁금했을 때가 여러차례 있었고, 모든 사람이 우리의 이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내용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10,29-37)




우리(?) 사회에서 어려움에 처한 자들이 분명히 있고, 나 또한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을, 어쩌면 우리들을, 비둘기를 보듯 혐오의 대상으로 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나 자신일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이 들게 되는 것 같다...


성상을 만든 사람이 의도를 한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성모님 성상은, 성모님께 와서 기도하는 자들을 향해 시선이 있지 않다. 하늘을 보고 계시거나, 정면을 응시하고 계시는 것 같다. 파밀리아 채플 문 앞의 성모님은 성모님 기준에서 왼쪽을 쳐다보고 계시며, 그곳은 장애인분이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가 있\260225추가)다. 하늘을 보고계신 성모님, 경사로를 보고 계신 성모님. 이 두 가지가 하느님 흠숭과 이웃 사랑이라는 주님의 계명과 묘하게 일치하는 것 같은 것은 나의 착각일 것일지도 모른다...


그 길이 내려가는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그것을 다시 말해서 잘 구분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내려가야 한다. 물리적인 내려감도 중요하겠지만, 주님 앞에서 나 자신을 낮추도록 내려가야 한다. 내 생각보다 더 낮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노아는 어떤 마음으로 방주를 만들게 되었을까. 쉽지 않았겠지만, 그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려는 마음이 정말로 강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무엇보다 비가 그 만큼 많이 올 것이라는 것을 노아가 믿었다는 것이 어쩌면 그 또한 신기한 것 같다. 하느님께서는 비를 내리셨고, 그 또한 신비로운 일 아닌가 싶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께서 하시려고 하시는 일을 반드시 하신다. 하느님 앞에서 나는 까불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 사랑이란 계명은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일이 아니다 결국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이다(260226에 추가한 부분입니다). 성모님께서 기도하는 자들을 외면하시듯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성모님처럼 하느님을 바라보고, 어려운 이웃을 바라봐야 하겠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이들만(추가)이 아닌, 어려움에 처하고 말하지 못하는 이들을 우리가 먼저(???) 쳐다볼 수 있게... 내 마음대로 쳐다보는 것이 아닌, 하느님을 쳐다보듯 그들을 쳐다본다는 것... 그들을 향해서 기도하며 나아갈때(???) 하느님께서 어느새 하느님의 약속을 지켜주시고, 기적을 보여주실 지도 모른다. 그것은... 믿음 아닐까. 어쩌면 이 믿음이야 말로... 사랑은 아닐까...


그리고 그 과정에 내가 어쩌면 많은 사람들을 외면하게 되더라도... 마음을 강하게 갖고, 주님과 어려운 이웃을 쳐다보며 걸어가리라. 그렇게 청해드리고, 그렇게 믿고, 그렇게 기도하리라. 나야말로 어려운 척을 하기 보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기 보다, 진짜로 어렵거나, 진짜로 행동하거나, 진짜로 믿고 진짜 하느님께 기도를 하며 살아가도록... 하느님께서 보신다고 생각하고 살고, 하느님께 시선을 향하며 살아가도록 청해드리고, 바라며... 주님께서 도와주시길 청해드리며.


나 또한 외면받을 때 평온할 수 있기를 바라며…




참고자료

https://maria.catholic.or.kr/bible/read/bible_read.asp?menu=bible&m=2&n=149&p=10#none

https://www.google.com/search?q=The+Greatest+Commandment+painting&num=10&newwindow=1&sca_esv=17378aafe0064306&udm=2&biw=1391&bih=786&tbs=sur%3Aol&sxsrf=ANbL-n58csH0GXWWT87dRwqrT1Bv2m-2hg%3A1770869886979&ei=flSNaZe-O7e9vr0PmpzssQw&ved=0ahUKEwiX9bm0jNOSAxW3nq8BHRoOO8YQ4dUDCBQ&uact=5&oq=The+Greatest+Commandment+painting&gs_lp=Egtnd3Mtd2l6LWltZyIhVGhlIEdyZWF0ZXN0IENvbW1hbmRtZW50IHBhaW50aW5nMgQQABgeSJIHUIEFWJYGcAF4AJABAJgBlAGgAaQCqgEDMC4yuAEDyAEA-AEBmAIDoAKtAsICBxAjGMkCGCeYAwCIBgGSBwMxLjKgB6YBsgcDMC4yuAerAsIHAzAuM8gHBIAIAQ&sclient=gws-wiz-img#sv=CAMSVhoyKhBlLTNOVVZBbkZqaDRjLU1NMg4zTlVWQW5Gamg0Yy1NTToOb3N6X25US3dQZFJUTk0gBCocCgZtb3NhaWMSEGUtM05VVkFuRmpoNGMtTU0YADABGAcgk8m30A4wAkoIEAIYAiACKAI

https://www.reformedclassicalist.com/home/the-law-of-love-the-great-corrective-of-the-greatest-commandment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Signal_korea_4red_and_U-tur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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