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어둠과 무지갯빛 사이에서

by 고종구

새벽 4시. 모두가 잠든 고요한 시간에 '띠리리'하고 손전화 알람이 울린다. 혹여 알람소리에 아이들이 깰까 후다닥 끈다. 그래도 잠에서 덜 깬 무거운 몸을 일으키기엔 역부족을 때가 종종 있다.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뿌연 순간들 사이를 거닐 다, 몇 번 더 알람소리를 듣고서야 간신히 몸을 일으킨다. 어두운 방에 들어와 컴퓨터 전원을 켠다. 그리고 모니터 위에 걸터앉은 길다란 조명 끝에 손가락을 올린다. 조명으로부터 내려온 주홍빛이 자판과 스피커, 그리고 타자를 치는 손가락 위에 음영을 그리는 풍경을 좋아한다. 까만 어둠 속에서 일정을 정리하고, 필요한 글들을 읽고, 토독토독 타자를 두드리다보면, 짹짹거리는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고개를 창쪽으로 돌리면 까맣던 창에 어느새 푸른빛깔이 감돌고 있다.


아이들과 옆지기를 깨우러 가야하기에, 이때쯤 되면 마음이 다급해진다. 타자를 두드리는 손가락도 바빠진다. 됐다! 라는 말과 함께 글을 업로드하고, 컴퓨터 전원을 끄고 문밖으로 뛰쳐나간다. 아이들과 함께 얼굴을 부빈 후 서둘러 밥상을 차리고, 도토리집에 가려면 어서 먹어야 한다고 채근하고, 이제는 날도 추워지는데 민소매 분홍 원피스를 입겠다며 떼쓰는 첫째와 실랑이를 벌이며 기어이 두툼한 긴바지와 윗옷을 걸쳐입게 하는 시간을 보낸다. 마치 폭죽이 터지며 무지개빛을 뿜어내는 것 같은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을 보낸 후엔 식당에서 노동을 하거나 인근 찻집 귀퉁이에 앉아 컴퓨터를 켜고 영상 편집을 한다. 식당에선 함께 일하는 벗들과 수다를 떠느라 일을 하는건지, 노는건지 모를정도로 즐겁다. 그래도 칼로 부식을 써는 순간만큼은 다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집중하려고 애를 쓴다. 편집을 할 땐 오롯이 나의 공간에 있다는 편안함을 느낀다. 촬영한 컷들을 고르면서, 이건 왜 이렇게 찍었대 하고 키득거리기도 하고, 내가 선택한 컷이 주변 컷들과 잘 어울리는지도 살펴보고, 전체적인 컨셉과 어울릴만한 폰트와 디자인들을 고르고 집어넣는다. 나는 이 모든 과정들이 나무 벽체 위에서 못총을 쏘고, 또 건물 외벽에 돌을 붙이는 작업과 크게 다르게 여기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내가 사회의 일원으로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은 주로 단정한 회색빛깔 같다.


큰 아이가 하원할 시간이 되면 옆지기에게 둘째를 받아안고 서둘러 도토리집에 간다. 옆지기가 단꿀과 같은 홀로 있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둘째를 아기띠로 안은 채 첫째와 함께 놀이터에 간다. 큰 애가 신나게 그네를 타는 동안 함께 놀러나온 비슷한 또래 형누나들과 시덥지 않은 일상 이야기도 나눈다. 저녁식사는 마을에서 운영하는 공동밥상에서 먹는다. 서른평 남짓한 공간에 이제 막 배밀이를 하는 아가들부터 칠순이 넘는 할아버지들까지,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밥먹다 말고 자꾸 친구들과 놀고 싶어하는 큰 아이에게 '밥부터 먹어야지~'라고 수십번을 말하고, 옆에 앉은 둘째에게 밥을 떠먹인다. 아이들과, 이웃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이 시간을 떠올리면 은은한 분홍빛과 함께 고마움이 인다. 만일 내가 이런 관계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오롯이 홀로 아이들을 감당해야 했다면 이보다 더 외로운 순간들이 종종 찾아왔을 것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데려와 남은 살림과 씻기고 재우는 시간을 보낸다. 아이들이 잠에 쉽게 드는 날도 있지만, 쉽게 잠에 들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1시간이 넘도록 울고 떼를 쓰면 정신이 아득해지고, 속이 부글부글 끓기 마련이다.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잦아들면, 부글거리던 속도 점차 잦아진다. 그리고 아이에게 화를 냈던 순간이 떠올라 민망해진다.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 사이를 거닐다가, 나도 모르게 까무룩 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무지개빛깔로 빛나던 순간들이 까만 어둠으로 내려앉는다.


이렇게 오롯이 나를 쏟아낸 하루가 지나간다. 이상하게도, 지나간 그 자리에 똑같은 하루가 찾아온다. 더이상의 기운이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눈을 뜨면 기운이 다시 차있다. 신비로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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