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일상에 깃든 나의 이야기

by 고종구

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오래전, 일터가 교회였을 시절엔 잠을 잘 이루지 못할정도로 긴장이 되던 날이 오늘이었지만, 요즘은 어느때보다 마음이 편안하고, 몸도 늘어지는 날이다. 오늘 오전엔 내가 속한 두레 사람들과 인근으로 나들이를 가기로 했지만, 첫째가 지난 금요일부터 기침이 잦아진 탓에 쉬기로 했다. 창문밖에 고개를 내밀고 동네 언니 오빠들에게, 안녕~ 잘지내? 하며 궁금해하지도 않는 안부를 묻는 큰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맞아, 아직 여물지 않은 어린 생명들이니 자주 아플수밖에. 아픔을 딛고 더 건강한 아이로 자라는 거겠지. 하며 생각을 고쳐먹는다.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기다려주는 것이 육아의 여정에서 가장 필요한 자질임을 다시금 떠올린다.



띵동! 하는 소리에 첫째가 반사적으로 엄마! 하고 현관쪽으로 달려간다. 빼꼼하게 열린 문 사이로 옆지기의 개구진 표정이 짠! 드러난다. 그의 손에는 까만 봉지가 들려있었다. 그는 옆지기의 손에 들린 봉지를 먼저 낚아채곤 속을 헤집는다. 와! 김밥이다! 스티커가 붙어있는 게 내꺼야! 떡 줄 사람의 의견도 묻지 않은 채 자기것까지 다 정해놓고는, 어느새 앵두같은 입술을 있는 힘껏 벌려 김밥 하나를 왕! 하고 넣어버린다. 아니야, 다 같이 앉아서 먹어야지. 라고 말을 하는 우리의 말이 무색해졌다.



넷이서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아직 간이 된 음식을 먹이지 않는 둘째는 우리가 먹는 걸 맹하니 지켜보다 자기 앞에 숟가락이 보이면 냉큼 입을 연다. 옆지기와 나는 한 사람(?)씩 맡아가며 열심히 먹인다. 뭐든 느릿느릿한 옆지기는 둘째 밥을 먹이느라 자기 앞에 있는 김밥이 줄지 않았다. 괜히 무심한 척 하며 김밥을 들어 그의 입에 넣어준다. '왠일이야' 하면서도 싫지 않은 듯 받아먹는 옆지기의 표정을 보며, 첫째가 입에 가득 김밥을 넣은 채 우헤헤 하고 웃는다.



설겆이까지 하고, 주섬주섬 장비들을 챙겨 차를 싣고 촬영현장이 있는 강화도에 갔다. 주말에까지 일을 하는 상황을 옆지기 공유하는 게 늘 쉽지는 않다. 그래도 (얼마 되지 않지만) 일을 맡겨주는 이들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여줘야 하는 자영업자의 현실을 기억하며 애써 핸들을 부여잡았다. 현장에 가는 차 속에서는 해야할 일들을 생각하며 주로 시간을 보낸다. 현장 상황에 따라 장비들을 어떻게 구성할지, 가서 담아야 하는 컷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인터뷰로 누구를 섭외해야하는지, 질문은 어떻게 할지 등등을 생각하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일이 끝나고 장비를 정리하면서 친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언제올꺼야? 이제 한시간 후쯤 도착할 듯 해! 제 삶에 놓어진 길을 걷다보니, 가족들 모두 뿔뿔히 흩어져 산다. 그렇게 얼굴 볼 기회가 없었기에, 인근에 일을 하러 나왔을 때 냉큼 찾아갔다. 여전히 느긋하고 푸근한 인상의 형과 밥을 나누며 이런저런 근황을 나눈다. 한창 개신교의 정체성에 매몰되어 있을 땐 '누가 내 모친이고 형제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으며 명절때조차 고향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외면했던 세월 동안 어떤 종교활동도 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어느새 교회에서 황권사라고 불리우고, 형 또한 개신교의 정체성을 받아들여 뜨거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집에 오는 차 속에서 도로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온라인 강사의 문제풀이 내용을 계속 들었다. 수험생활이 오랜만이라 모든 것이 낯설지만, 틈나는대로 익숙해지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내겐 육아도, 밥벌이도, 자격공부도, 어느것도 포기할 수 없다. 가족이 있는 가장에겐 당연히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이고, 나는 이를 기꺼이 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 책임감이 너무 힘겹게 느껴질 때고 있었지만, 오히려 이 책임감이 내게 여전히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쳐주는 선생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이 선생에게 나름의 고마움을 표하며,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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