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흘러도 이름만은 남는다
내 이름은 종구다. 쇠북종에 아홉구. 지금은 얼굴도 목소리도 기억나지 않는 할아버지가 며느리의 출산 소식을 듣고 서둘러 작명소에 가서 받아온 이름이라 들었다. 어린시절엔 이 이름이 참 촌스럽다 여겼다. 어디에도 나와 비슷한 이름을 찾지 못했다. 집근처의 전통시장에 가면 3층짜리 구옥꼭대기에 낡아서 곧 떨어질 것만 같은 간판에 써진 '김종구 치과'라는 글씨가 유일한 닮은꼴이었다. 이후 학창시절 축구선수 '고종수'라는 존재 덕에 반짝거리며 빛이 나기도 했다. 티비속 푸른 풀밭에서 노루처럼 뛰어다니는 그의 모습이 너무 인상깊게 남아 축구를 주제로 만화를 그리기도 했다.
세월이 훌쩍 지나, 나 또한 작명소에 이름을 받아온 할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할 때가 찾아왔다. 마침 한참 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때였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제법 큰 교회가 자신의 일터라는 걸 자랑하는 틈바구니를 편안히 여기질 못했고, 틈나는 대로 재개발로 쫒겨나는 자리, 용역들의 어깨에 맞서 악다구니로 버텨내는 철거민들 속에 서서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그동안 교회에서 배워왔던 지식의 협소함에 넌더리가 났고, 끝도없이 사유의 울타리를 쳐부수는 신학으로 인해 나는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 할지 몰라 애꿎은 발만 동동 구르며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던 참이었다.
당시, 갈 곳 없던 나의 신학여정에 작은 등불이 되어준 이들이 있었다. 그 중 묵가와 류영모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들은 기독교 문화에 포섭되지 않거나, 잠시 거쳐갔던 이들이었지만, 내게는 그런 것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남긴 사유의 흔적들을 도서관에서 펼쳐보며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을 어렴풋하게 짐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사상을 남은 평생 간직하고 싶어 내게 찾아온 생명들에게 이름으로 붙이기로 결심했다.
지금의 나는 신학생시절 꿈꾸던 대로 살지 않고 있다. 자본으로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시대 속에서 내가 일군 지식은 한줌의 재처럼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고, 쓸모도 없는 것이라는 걸 직면한 후론, 나도 밥벌이를 위해 애쓰는 평범한 사람 중 하나로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나와 옆지기가 초대한 이 어린 생명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몸짓만큼은 포기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오래전, 작명소에서 '종구'라는 이름을 받고 기뻐했을 할아버지의 미소를 떠올려보았다. 너무 일찍 세상을 등진 그에게 나는 '종구'라는 이름의 의미를 물을 기회가 없었다. 다만 꽤 많은 시간이 흘러, 내 곁에 있는 두 아이들이 자기 이름의 이름을 물을 때가 찾아온다 과연 나는 그들에게 이 의미를 정성껏 설명해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