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능력이 있다면

일상에 뿌리내리는 힘

by 고종구

젊음과 패기가 가득했던 청년시절, 나는 무슨 베짱이었는지 멀쩡히 다니던 대학생활을 그만두고 가평군 깊은 산골짜기에 둥지를 틀었다. 대체 그곳에 무슨 영험한(?) 기운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고 싶다며 끊임없이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서 나는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밥을 짓고, 이부자리를 마련하고, 건물을 보수하고, 틈나는대로 농사를 짓는 등 생존을 위한 오만가지 노동을 경험했다.


당시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해봤던 어리숙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꾸벅꾸벅 졸며 감자를 깎다가 손을 베기도 하고, 수십개가 되는 객실을 밤늦게까지 돌며 청소기를 돌리다 넘어지기도 했고, 드넓은 밭에 홀로 앉아 콩알을 심으며 이 산골짜기에서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싶어 현타가 온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 때 나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뚝딱 손님들의 식사를 마련하고, 흘깃 보는 것만으로도 견적을 줄줄 뽑아내 있는 자재로 척척 만들어내는 형들의 솜씨가 참 부러웠다. 그 간절함이 커진 이후로, 틈만나면 형들이 귀찮아할만큼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면 묻고 배웠다. 생존을 위한 재주에 대한 열망은 나를 자꾸 이상한 곳으로 몰아갔다. 어느새 나는 집을 지어야겠다 마음먹으면 어렵지 않게 굴삭기를 운전해 터를 닦고, 허리에 벨트를 둘러매고 양 손엔 망치와 못총을 짊어진 채 훌쩍 벽체 위에 올라탈 줄 아는 생존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 지금 사는 동네에서 나는 어느새 '홍반장'이 되어 있었다. 갑자기 보일러가 안되면, 전기가 떨어지면, 천장에서 누수가 생기면, 건물에 붙은 돌이 떨어지면, 이웃들은 먼저 나를 불렀다. 물론 시간이 되면 직접 소매를 걷고 함께했지만, 나도 먹고사는 일이 바빠 다 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지 정도만 나눠줘도 이웃들은 고마워했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내가 정말 원하는 능력은 삶을 헤쳐가는 재주가 전부가 아니었다. 진지한 성찰을 통해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그 하나를 단단히 붙잡고 나아갈 줄 아는 용기가 부족했음을 이제는 안다. 페이스북을 통해 그 길을 가는 이들을 얼핏 보았다. 아무리 바쁘고 고단한 일상이 휘감아도, 매일 잠깐이라도 숨을 가다듬고 자판을 토닥이며 스스로 뿌리내릴 곳을 찾아갈 줄 아는 힘이 바로 쓰기에 있다는 것을 그들이 남긴 문장을 마음에 담으며 헤아려보았다.


나는 이제 특별한 무엇을 바라며 살지 않는다. 그저 오늘 하루, 내게 주어진 시간을 성실하게 살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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