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이자 밥벌이였던 영상쟁이
나의 일터는 특정 장소가 아니다. 나의 역할을 필요로 하는 자리, 나를 불러주는 모든 자리가 곧 나의 일터였다. 매번 다른 장소,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될 때가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집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생생한 분위기를 카메라에 담아내는 순간만큼은 내 안에도 글로 다 담을 수 없는 기쁨과 감격으로 그득했기에, 지금까지 이를 놓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카메라를 들고 참 많은 곳을 다녔다. 산과 바다, 강의실, 예식장, 공원, 국회는 물론 멀리로는 베트남, 대만에도 다녀왔다. 올 여름, 백두산에 다녀올 프로젝트가 엎어진 게 두고두고 아쉬울 정도였다. 물론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다. SD카드를 전 현장에 두고 내려 이동하는 차 속에서 퀵을 부르느라 진땀을 내기도 하고, 나뭇가지에 걸려 떨어진 드론을 찾느라 숲 속을 헤매기도 했다. 자꾸 빠꾸(왠지 라임이 좋네)를 내는 의뢰인 덕에 편집 골방에 갇혀 수십번(열 다섯번까지 세었고, 그 이후로는 세지 않았다)수정을 하느라 이제는 꼴도보기 싫은 영상도 있었다. 그래도, 내가 만들어 준 제품(?)을 의뢰인이 만족스러워하시고, 업로드 된 영상이 또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을 때(사실, 그런 건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느끼는 뿌듯함은 말로다 표현할 수 없었다.
요즘 동종업계를 만나는 사람들마다, 어렵고 힘들다는 말을 듣는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장비를 셋팅하고 정리하는 짧은 순간에도 그들의 눈빛과 어깨에 힘이 빠진 기운을 느낀다. 10년 넘게 이 자리를 지켜 온 전문가들도 그런데, 그보다 훨씬 늦게 시작했고, 업력도 짧은 내가 견뎌낼 재간이 어디있겠는가.
매일 아침, 글을 쓰며 방 한귀퉁이에 쌓여있는 장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한다. 그리고 장비들 하나하나마다 담긴 이야기들을 떠올리곤 한다. 큰 프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오만가지 설레발을 치며 하나씩 장만했던 소중한 녀석들. 집앞에 도착한 택배를 숨 넘어갈 듯이 상자를 뜯어버리곤 옆지기 앞에서 엉덩이 춤을 췄던 순간을 떠올리면 아직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 시간도 어떻게든 견디다보면 상황이 나아질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 내가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았고, 돌봐야할 생명들이 곁에 없었다면 이 자리에 더 머무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곁에는 아직 어린 생명들과, 이들을 돌보는 옆지기가 있었다. 순전히 나의 욕심을 이유로 이들의 삶까지 변두리로 내몰 자격이 도무지 내게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최근 조금씩 시간을 빼서 하던 식당에서의 노동 비중을 일상에 더 들이고, 남는 시간(남는 시간이라는 게 정말 있긴 한걸까)에 낯선 직종으로 뛰어들기 위한 자격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장비들은 우선 두기로 했다. 아직까지는 날 찾아주는 고마운 분들이 계시니. 더이상 날 영상쟁이로 기억해주는 이가 남아있지 않을 때 조용히 정리하려고 한다. 그나저나 이 나이에 수험생활이라니, 참내... 새로운 일상을 들이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동안 애정을 갖고 걸어왔던 지난 밥벌이, 영상쟁이로서의 일상과 멀어질 것을 생각하니 여간 아쉬운게 아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게 저마다 빛나는 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한 때, 내가 하고 싶은 일로 밥벌이까지 해결하며 즐겁게 펼쳐놓은 때가 있었다며 즐겁게 웃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