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힘이 되어준 한 사람

이제야 고마움을 전하네요

by 고종구

유난히 햇살이 따사롭던 서른 둘의 봄이었다. 당시 나는 하루에 두 번 오는 버스 종점에 내려서도 30여 분을 더 걸어야 하는 아주 외진 곳에 살았었다. 그 곳에 딱봐도 귀티가 절로나는 노부부가 찾아와 한 주간 묵고 간다 하였다. 그는 날 못알아봤지만, 난 그를 한 눈에 알아봤다. 그는 내가 대학시절 몸담았던 선교단체를 세운 개척자였고, 난 그의 책을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소개란 위에 자그맣게 찍혀있던 증명사진 속의 모습보다 주름이 깊게 패여있던 그는 꽤 피로해 보였다.



노부부에게 하루 세 번, 밥을 지어드렸다. 남는 시간엔 평소 때처럼 건물을 청소하고, 낡은 데크를 수리하는 등 잡일(전문용어로 시설관리)을 했다. 멀찌기서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얼핏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떠나는 날, 나는 무슨 용기였는지 팔레스타인에 선교여행을 다녀왔던 기록물과 팔레스타인 기념품을 챙겨 그의 손에 쥐어드렸다.



"종구형제, 잘 지내시나요?"


무거운 짐을 나르는 것보다 옷이 땀으로 젖는게 더 힘들었던 여름날,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전화에 나는 얼이 빠졌다. 그는 자기가 있는 교회로 한 번 와달라 했다. 날을 잡아 서울 한복판에 있는 그의 교회를 찾아갔다. 그는 삼십분 정도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쭈욱 듣더니, 다짜고짜 여기에서 나와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이건 또 웬말인가. 어안이 벙벙해서 잠시 시간이 필요하다 양해를 구하고 교회를 나왔다.



난 사실 터널을 찾고 있었다. 내게 처음으로 개신교의 정체성을 심어준 이 자리에 대한 고마움이 있었지만, 막상 깊이 관여해보니 부조리로 가득했던 이 자리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여기서 노동을 함께한 숱한 동료들이 몸이든 마음이든 고장이 나서야 이 곳을 떠나곤 했다. 이렇게 일을 하다가 죽으면 기쁘게 순교하는 거지. 라고 말했던 어느 선배의 말을 한 때나마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봤던 내 눈을 저주하고 싶었다. 이 곳의 일을 정리하는 데 몇 달의 시간이 더 걸렸고, 그는 날 기다려주었다. 마침내, 무작정 살던 곳을 떠나 서울로 상경하는 날, 나의 소유는 잡동사니가 담긴 종이박스 네 개와 통장 잔고에 찍힌 10만원이 전부였다.



낯선 서울에 온 날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그는 미리 마련해 둔 옥탑방에 내 짐을 풀자마자 쌀국수 집에 가자고 했다. 그의 뒤꽁무니를 쫒으며, 밤하늘 가득 수놓은 빛공해와 길게 늘어서 빵빵거리는 차 소리가 언제쯤 익숙해질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그는 국물을 먹는건지 눈물을 먹는건지 헷갈리게 하는 내게 '언젠간 북녘땅을 위해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던지시 건넸다.



그의 교회에서 '간사'라 불리며 2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일을 했다. 그동안 주로 해왔던 몸쓰는 일을 내려놓고, 공부를 하느라 애를 먹긴 했지만 참 즐거웠다. 그 때에 만났던 새터민 청년들, 대학생들과 지지고 볶으며 밤이 새도 다 풀어놓지 못할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일하는 동안 내 인생의 길동무를 만난 건, 다시 없을 행운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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