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한문장으로 소개하기

배우는 나

by 고종구


낯선 사람들이 날보면, 유행에 걸맞지 않은 - 더 구체적으로는 유행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 자연스러운 옷차림과 특유의 구수한 입담에 놀란다. 일하러 현장에 나가는 게 아니라면(현장에선 의뢰인들을 생각해 나름 정숙하게 차려입는다고 생각한다... 옆지기가 코디를 해주니까), 한겨울에도 맨발에 크록스만 덜렁거리며 신고 다니고, 집에서 잠옷으로 입는 빠숑 그대로 지하철 역까지 가는 걸 전혀 어색해하지 않는다. 거기에 목청은 어쩜 이리 크고, 밥먹을 때마다 -으~~어! 하는 이상한 추임새는 왜 넣는거지? 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살지만, 도대체 도시에서 대학원 교육까지 받은 사람에게 기대할만한 교양이라고는 눈을 씻고봐도 찾기가 어렵다. 저런 사람은 어디 시골에 갖다놔야 정말 자연스러울텐데 말야.


몸노동에 관해선 다방면에 능숙함을 보인다. 우선 스스로가 먹는거에 진심이다보니, 음식을 만드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다. 옆지기와 혼인을 한 이후로 주방은 늘 나의 성지였다. 그는 나의 떡볶이(떡전골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를 참 좋아했다. 당면, 만두, 어묵, 떡에 온갖 제철 남새가 어우러진 한복판에, 고추장, 고춧가루, 된장, 간장이 적절한 비율로 섞여있는 떡볶이의 국물을 딱 떠먹을 때 나오는 그의 진실의 미간을 마주하며 난 매번 뿌듯해했다. 한몸살이를 하면서 지금까지 한 주에 한 두끼는 늘 이웃을 초대해 식사를 차리는데,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은 카레와 삼계탕을 지나 요새는 제철남새에 오리엔탈소스를 곁들인 샐러드와 토마토파스타를 하나로 섞어 내는 걸 부쩍 좋아한다.


겨울을 앞두고 마을 안에 여러 울력들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주엔 어린이집에 칠이 떨어진 부분을 긁어내고 다시 페인트칠을 했고, 이번주는 밥상 지하에 전기 배선을 다시 하고 있다. 전기는 오랜만이라 모르는 부분이 나오면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하지만, 일머리만 잡히면 물만난 고기처럼 몸이 먼저 뛰어들어 일을 쳐낸다. 마을에 있는 이웃들은 그런 날 보며 넌 도대체 못하는게 뭐냐며 장난스레 묻는데, 그럴 때마다 어깨가 으쓱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정말 알고 싶고, 잘하고 싶은 건 나를 알아가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 시절의 나를 여전히 불쌍하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근심걱정을 다 지고 산 것처럼 살았던 그 시절이 그냥 나였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도 될텐데, 굳이 그 시절에 신파곡조를 붙여가지고 드라마까지 쓸 필요가 있을까 싶다. 겉으로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면서도, 때로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채로 그냥 있고 싶은 때도 있는 나를 만나기도 한다.


나와 매일 함께 살아가는 옆지기를 사랑하지만, 유독 위생관념이 취약한 내게 설겆이를 똑바로 해라, 왜 옷을 구분해서 넣지 않느냐, 라며 잔소리를 해대는 옆지기를 귀찮아하기도 하는 나도 나이고, 무엇보다 가장 사랑하는 첫째가 나를 닮아 유독 먹는거에 진심인 모습을 볼 때마다 왜 그렇게 잔소리가 먼저 나가는지... 골고루 먹어야지, 먹고 싶은 것만 먹으면 안돼, 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다 결국 뚜껑이 열려버리는 나의 초라한 인내심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도 나다.


나는 배우고 있다. 하다못해 음식을 할 때도 새로운 조미료를 조금씩 써보기도 하고, 페인트칠을 할 때, 전기 공사를 할 때도 요즘 나오는 새로운 시공법을 찾아 적용하기도 한다. 하물며 여전히 바보같이 실수하고,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고, 일상의 평화를 위해 나아가는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 가야할 숙제라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실수투성이다. 그저, 지금 옳다고 믿는 바가 먼 훗날 틀릴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배우는 학생으로 이 걸음을 걷고 있다. 그게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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