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넓혀가기
나의 첫 공동체는 좌충우돌 우당탕탕이었다. 개신교회의 정체성을 아무런 비판없이 내 것인양 받아들였다. 이른 아침, 화장실에서 똥을 누며 주기도문을 읊조리는 선배의 열정(?)에 감동해 따라하기도 했고, 뙤약볕에 삽질을 하느라 땀이 흐르고 지칠 때즈음엔 목청을 높여 찬양를 부르곤 했다. 그러면 정말 어두웠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즐거워지기도 했다.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신앙의 영역에도 비판적 사고의 날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동체의 아이들이 저마다 다른 교육을 받았다.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한국에 올 때마다 공동체의 우러르는 시선을 받는 리더의 자녀들을 볼 때마다, 각종 행사에 치여 공동체의 정신과 무관한 공교육만 간신히 받는 다른 이들의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 더불어 권위적인 리더의 모습을 보며 이곳은 과연 공동체인가, 아니면 직장인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두번째는 좀 다르길 바랬다. 사실 많이 다르기도 했다. 리더인 그는 권위와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하지만 사람사는 곳에 여전히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걸까. 이곳에 사는 우리가 형제요 가족이라 여겼던 나는, 명절 때마다 뿔뿔히 흩어진 공동체 이웃들이야 그렇다 쳐도, 명절 때마다 리더의 집에 찾아오는 친척들에게 스스로를 뭐라 소개해야할지 난감해 했다.
공동체의 삶이 고단해서 떠났고, 그저 나 하나 잘 건사하며 살고 싶었다. 더이상 남들의 온정을 은혜라 여기며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어리숙한건지, 미련한건지, 공동체를 떠나서야 진정한 공동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옆지기와 함께 더불어 살 공동체를 찾아다녔다. 어느 공동체를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던 그와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는데,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릿속에 남은 문장은 딱 하나였다.
‘이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모두 내 아이인걸요.‘
사실 다 믿지도 않았고, 그저 신앙인들이 많이 하는 고백중의 하나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낸 6년여 시간 동안, 그들이 남긴 문장 속에 진심의 흔적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놀이터에서 훈육이 필요한 때마다, 내 아이, 네 아이 눈치보지 않고 필요한 말을 하는 이웃들, 밥을 먹는 시간에 서로의 아이들을 먼저 챙겨주는 눈길들, 중요한 결정이 있을 때마다 아이들의 입장을 먼저 헤아려주는 조언들을 마주하고 있다.
어쩌다 두 아이를 돌보는 아빠로 살아보니, 이것이 얼마나 무거운 고백인지를 절절하게 깨닫고 있다. 놀이터에서 나를 보고 반갑다며 달려오는 아이들 속에 껴있는 첫째에게 먼저 손을 내밀다가도, 다른 아이들에게 눈길 한 번 더 챙겨주는 작은 행동까지 나아가는 순간조차 뿌리깊게 녹아있는 혈육의 정을 거쳐가야 한다. 난 그저 우리 아이를 자연스럽게 사랑하지만, 더불어 사는 이웃들의 아이들도 사랑해보려 애쓰고 있다 라고 그저 말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