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고식

출산

by 고종구


만 하루의 진통 끝에 그가 세상에 나왔다.어미의 몸 안에서 내내 웅크려서 지내던 그는 팔과 다리가 갑자기 뻗어지자 놀란 듯 울음을 터뜨렸다. 그가 울음을 터뜨리자 입 속에 있던 양수가 쏟아졌다. 양수가 터진 후로도 꽤 오랫동안 어미의 뱃 속에 있어서인지 태맥은 금방 멎었고, 조산사는 내게 가위를 쥐어주고 탯줄을 잘라보라 했다. 생 살을 자르면 아프지 않을까, 자꾸 머뭇거리자 그는 탯줄엔 신경이 없으니 안심하라고 덧붙였다. 옆지기의 오랜 진통이 무색하게 간단한 신고식을 마치고 그는 세상에 온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를 물끄러미 보다 갑자기 입이 근질거려졌다. 옆지기의 배를 쓰다듬으며 여러번 불러봤으면서도 못내 쑥쓰럽고 민망하여 살갑게 부르지 못했던 이름. 몇 번이나 입을 달싹이다 조심스레 불러봤다.


- 구름아


순간, 거짓말처럼 그가 울음을 그치고 눈을 떴다. 처음 눈을 떠본 이가 날 보고 있음을 확신할 순 없었지만, 모든 것이 낯설었을 공간에서 무언가 익숙한 무엇이 있다는 것. 그 익숙한 무엇이 바로 나의 목소리라는 것을 떠올리자 가슴이 벅차서 말을 잇지 못했다.


조산사가 낌새를 눈치챘는지, 그를 나의 가슴 위에 올려주었다. 그가 나의 가슴 위에 있는 동안 조산사는 방에 쏟아진 핏덩이와 옆지기의 몸을 돌봤다. 그가 내 가슴 위에서 입을 오물거리면서 손을 꼼지락 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언어로 담지 못할 숱한 감정들이 스쳐갔다. 나는 넋을 잃은 사람처럼 울었고, 또 웃었다.


현장이 정리되자 곧장 미역국과 밥이 나왔다. 진통 내내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옆지기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밥상 앞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사발에 든 미역국과 밥을 거뜬히 비웠다. 얼마전 집에서 아이를 낳았던 누나가 낳은지 이틀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허리를 세우고 의자에 앉아있던 모습이 생각났다. 구름이의 몸은 겉에 뭍은 핏덩이만 듬성듬성 걷어내고 씻기지 않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백기완 선생이 세상을 떠난 날에 세상을 맞았다. 하나의 역사가 저물어가고 또 하나의 역사가 솟아난 셈이다. 솟아난 역사가 저물어간 역사를 대신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나는 솟아나는 역사들 앞에서 덜 부끄러운 삶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나즉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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