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한 문장

그 나물에 그 밥

by 고종구

스물넷의 봄, 나는 집이 있는 전주에 갔다. 지난 여름, 집에서 나올 땐 진리를 찾기 전까진 고향땅을 밟지 않겠다고 편지까지 쓰고 대차게 나왔는데(당시엔 남은 생에 고향에 갈 일이 없을 수도 있을라 생각했는데), 진리를 너무 빨리 찾다는 게 함정이랄까. 그 사이 깊은 산 속에서 조용히 수행을 하며 살 줄 알았던 나는 북적이는 도시 한복판에서 노숙인들과 함께 살았고, 수소문 끝에 집 떠난 아버지를 8년만에 만났고, 그의 입을 통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기구한 인생사를 돌고돌며 늙어버린 아비의 몸을 부둥키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그 길로 아버지가 속한 종교 공동체에서 함께 지냈다. 종교는 달랐지만 그들의 일상을 존중했고, 그들의 경전과 기도를 배웠다. 틈틈히 그들과 차담을 나누며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관념의 줄기를 헤아려보았다. 어느날, 그 공동체 대표와 함께 차를 나누다 그가 불쑥 예상치 못한 말을 건넸다.



"종구는 학교에 돌아가서 공부를 해야겠어요"



예상치 못한 말에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봤다. 나의 침묵을 이해라도 한듯, 그는 자기가 뱉은 문장을 풀어서 설명을 했다. 그는 내가 이곳에서 썩을 그릇이 아니라 했다. 더 많이 배우고, 쌓아서 다른 이들을 가르치는 이가 되라 했다. 그의 진심어린 말에 또 눈물이 쏟아졌다. 그렇게 때 이른 하산을 하여 다시 보지 않을거라 했던 때 이른 고향 땅을 밟았다.



집에 있는 형과 어머니는 당시 나의 행색을 보며,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했다. 형은 나의 뺨을 때리며 정신을 차리라고 했다. 웃기게도 난 뺨을 맞으면서도 내가 종교의 이름으로 박해를 받고 있구나 생각하며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어머니는 이내



"너도 집나간 네 아비와 똑같아!"



라고 일침을 날렸다. 그 문장이 망치가 되어 내 머리를 때리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어린시절부터 그렇게 징그러워하고 미워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의 나라니. 고등학교 시절, 그렇게 공부에 매달리며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지라고 숱하게 다짐했던 순간들이 무색하게, 지금의 내 모습이 아버지와 똑같다니. 너무나 놀라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비로소 내 입가에 남아있던 웃음기가 사라지고, 서러움에 복받쳐 어머니 앞에서 울음을 쏟고 말았다.


...



지금이야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지나서 아무렇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 문장이 마음 한 켠에 남아있다. 당시에 '집나간 네 아비와 똑같다'고 절규하던 어머니의 진정성 또한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는 말을 더이상 믿지 않을 뿐이다.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애써온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다보면, 그렇지 않은 길을 갈 수도 있으니까. 이제는 종교를 비롯한 어떤 관념의 언어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삶을 세우고 있으니까.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 하지만, 언젠가 아버지가 나를 앉혀놓고 "너는 나처럼 살면 안된다"고 했던 말 또한 기억한다. 이제는 아버지의 진심도, 어머니의 진심도 모두 사랑한다. 나는 이제 내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의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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