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억에 남는 사과

사과와 용서는 서로 맞닿아있다.

by 고종구

오랫동안 들쳐내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도 헤아리기 어려운 복잡한 심정들 사이에서 뒤채였다. 기어이 아침밥상을 차리기 전에 끝내야 할 글쓰기 일과를 오후까지 끌고와버렸다. 안그래도 해야할 일들이 많은데, 적당히 넘어가도 될 일을 괜히 붙잡아서 이 고생을 하는게 아닌가 싶지만, 마침 버스에서 앉을 짬이 생겨 끝까지 가보자 마음을 다잡았다.


...



스물셋의 가을, 내 마음속에 습관처럼 자리잡은 애증의 화살은 매번 과녁을 찾지 못해 허우적 거렸다. 허공을 향해 날린 화살은 수취인불명이라는 답장만 남긴 채 매번 돌아와 그대로 내 가슴에 꽂혔다. 매일 점심 무료급식소에 찾아온 수많은 행려자분들에게 밥상을 차려주면서 내가 정말 힘들었던, 그들의 몸에서 나는 코를 찌르는 악취도,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원하는 반찬을 마음껏 뜨지 못해 악다구니까지 동원해야하는 그들의 유약한 심성 때문도 아니었다. 혹여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의 어르신을 볼 때마다 출렁이는 내 가슴을 진정시키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어느날 밤, 김종환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노래를 부르다 '너의 사랑 앞에 거짓의 옷을 버렸다'라는 문장이 왜 그렇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출렁였는지, 노래를 다 부르지 못하고 목놓아 울었다. 밤새 잠을 뒤척였고, 이튿날 아침 마음을 가다듬으려 호흡에 머물기 위해 애를 썼다. 여러 상념들 사이를 오가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악다구니를 쓰는 어머니에게 재떨이를 던졌고, 반찬투정을 하는 형에게 국그릇을 집어던지고, 부들거리며 공포에 떠는 형에게 기어이 바닥에 흩어진 국을 핥아먹으라고 소리쳤던 그가 아니었다. 폭풍같이 흘러가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나 그를 향해 처음으로 '안쓰러움'이라는 감정을 마주했다. 안쓰러움이라니, 도대체 그에게 정녕 어울릴만한 감정 딱지가 아니었는데, 난 그에게 왜 그런 감정을 읽었을까.



그가 우리에게 했던 모든 행동들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외면하던 시간이 지나, 그저 우리의 인생 가운데 일어난 수많은 일들 중 하나일 뿐임을 받아들였고,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를 찾아야겠다 마음먹었다. 무작정 그가 속한 종교단체의 누리집을 검색해 나를 밝히고 그의 신상을 찾는다고 당돌하게 적었다. 며칠 후 거짓말처럼 그에게 전화가 왔다. 그가 지내고 있다는 수원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스스로의 의지로, 아버지를 찾아 떠나고 있음을 실감했다.



다행히도 그에게 행려인들의 특유한 냄새는 찾을 수 없었다. 그의 집에 들어가서 반사적으로 냉장고부터 살폈다. 매일 급식소에서 수백인분의 밥과 반찬을 짓던 솜씨가 빛을 발했다. 인근 슈퍼에 들러 장을 봐오고 밥상을 차렸다. 밥물을 맞춰 올린 후 따라낸 물로 된장찌개를 끓였고, 밥과 국이 익는 동안 나물을 무치고 전을 부쳤다. 방구석에 세워져 있던 개다리소반을 깨끗이 닦아 수저를 가지런히 놓고 완성된 순서대로 반찬을 담았다. 마지막으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과 찌개를 담았다.



홀로 모진 고생을 하며 두 아들을 키운 어머니에게도 차려주지 못한 밥상을, 나는 그에게 먼저 차려준 셈이었다. 개다리소반을 집어드는데,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의 파도가 밀려왔다. 다 차린 밥상이 그가 보는 앞에서 엎어졌다. 쏟아진 음식들을 치울 생각도 못하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었다. 아버지 미안해요. 따뜻한 밥 한끼 차려주지 못하고 그렇게 보내서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하다 아들아...내가 잘못했다"



철이 든 후로 늘 돌을 짊어지고 밥벌이를 해왔던 그의 거친손이 내 어깨를 감싸안는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알아서 잘살겠지 하며 마음속에서 영영 내쫒았다고 생각했던 그가, 그 연배의 남성들이 그랬듯 평생 자기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 인색해왔던 그가, 나의 울음에 공명하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랜 세월 서로 알지 못했던 세계가 만났고, 서툴었던 만큼 거칠게, 서로를 끌어안고 그렇게 오랫동안 울음 속에 젖어 서로를 만났다.


난 아버지를 그렇게 다시 만났다. 그리고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던 나의 지난 날들을 그렇게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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