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오롯이 책임지는 법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주 속에 티끌 중에 하나로 섞여 있는 나의 삶을 신은 어떻게 바라볼까. 나 조차도 무심코 길을 걸으며 밟게 되는 개미의 존재를 신경쓰지 못하는데, 광활한 우주를 빚은 신이 한낱 미물인 나의 삶에 관심을 둘 만한 이유를 도저히 찾지를 못하겠더라.
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 김흥겸에 대한 글을 만난 적이 있었다. "정말 회개해야 할 것은 실패작인 우리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당신, 바로 야훼 하느님입니다!"라는 문장 앞에서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자본의 욕망이 똘똘 뭉친 현장에서, 누구는 일을 하지 않고도 안정적인 여생을 누리고, 누구는 평생 일을 해도 안정을 보장받기는 커녕 간신히 모아놓은 한줌의 재도 흩어져버리는 사건들이 반복된다. 재개발의 현장 속, 임대인의 폭력에 쫒겨나는 세입자들의 울음섞인 하소연을 들으며, 나는 "혀짤린 하느님, 귀먹은 하느님,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느님.."을 웅얼거리며 뺨을 에이는 추위속에서도 삐져나오려는 눈물의 샘을 간신히 달랬다.
그럼에도 삶의 의미를 모두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서 나 대신 인생을 살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나의 선택을 책임져 줄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는 것. 그렇기에 내 인생은 나밖에 책임져줄 수 있다는 걸 절절히 깨닫는 시간들을 통과했다. 한몸살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런 것들을 깨닫는 경험들을 한다는 게 좀 이상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내 인생을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짊어져야겠다 마음먹으니, 누군가의 무책임한 말에 휘둘리지 않고, 섵부른 기대도, 실망도 하지 않게 되었다. 이따금씩 그들이 내 아이를 자기 아이처럼 살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지 않고, 내가 먼저 여기에 있는 아이들 모두가 내 아이라는 마음을 먼저 품어야겠다 마음먹을 수 있게 되었다.
각자에겐 모두가 사정이 있다는 걸 이곳에서 배우고 있다. 저마다 가슴깊이, 절절 끓는 절망의 강을 건너서 지금 이자리에 와있다는 걸 받아들인 후로, 나의 삶 또한 크게 대단할 것 없는 평범한 삶이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습관적으로 지난 날을 연민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잠시 안아주고 다시 내 앞에 놓여진 길을 가면 된다. 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