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갗을 맞대야 살아
어둑어둑한 창 밖에서 햇살이 비치기 시작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오늘 하루에 할 일들을 정리하고, 또 고민을 하다 어느새 밝아진 창밖 풍경을 슬쩍 바라보며 기지개를 켠다. 그리곤 방에서 슬그머니 나온다.
마치 융단폭격을 맞은 것(어떻게 매일 치우는데도 이렇지?)과 같이 너저분한 거실을 지나 또 다른 방으로 들어간다. 방에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세 사람이 곤하게 자고 있다. 아직은 상대적으로 큰 머리 때문에 팔을 위로 쭉 뻗어도 양 손 끝이 닿지 않는 대왕머리 둘째, 언제 저렇게 커버렸나 싶지만 여전히 유아의 얼굴을 벗어나지 못한 첫째, 그리고 그 둘 사이에 끼어있는 옆지기까지.
곤한 잠에서 깨우는 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린이집에 가야할 시간은 정해져 있기에 더이상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때 마음을 잘 지키는 게 중요하다. 마음이 편안할 때는 아이들은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고, 마음이 조급할 땐 불편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잠깐의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다잡고, 그들의 뺨에 나의 뺨을 가져다 대며 '우어어-'라는 괴물같은 소리를 낸다. 다행히 오늘은 부시시 눈을 뗀 아이들의 얼굴에 장난기가 보였다!
에라 기분이다! 아이들의 몸을 살살 간지럽힌다. 까르르 좋아하는 아이들은 어느새 옆지기의 몸을 타고 올라간다. 어어어- 잠을 자다 봉변을 당한 옆지기도 낯선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비비고야 만다. 모두 깨어났으니 이제는 비빔밥처럼 모두가 엉겨서 서로의 얼굴을 부빌 차례다. 배밀이에서 서는 과정에 있는 둘째는 엄마의 배 위에 두 팔을 올려놓고 엉거주춤 선 채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고, 큰 애는 까르르 웃으며 이리저리 뒹굴거린다.
사실, 여태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누군가의 눈을 오래 바라보고, 살갗을 부비는 경험을 언제 해왔나 싶다. 빛바랜 사진에 남은 희미한 윤곽처럼,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 자라면서, 다른 누군가의 눈을 오래 바라보고, 살을 맞댄 기억이 거의 없다. 어른이 되고서는 형식적인 악수를 할 때 외에는 살을 댈 일이 없었다. 지금의 옆지기와 만나면서 이따금씩 살의 냄새를 맡긴 했지만, 그렇다고 매일같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지내야 하는 지금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밀도가 달랐다. 아이를 품에 안을 때 그의 입에서 나는 젖냄새도 함께 맡게 되는데, 그러다보면 불현듯 어머니가 입었던 셔츠를 몰래 꺼내 킁킁거리며 일터에 나간 그를 그리워했던 어린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지금 내 품에 있는 자식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종종 듣는다. 사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당신은 이미 지나온 길이니까 그리 쉽게 말하는거 아닌가요?'라고 항변하는 문장들이 목젖까지 차오르지만, 사실 영 틀린말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고단하긴 하지만, 아이들과 살을 맞대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 언제 다시 올까?를 떠올려보면, 지금 이 순간을 결코 허투루 보낼 수 없다. 이들도 제 힘으로 걷고, 뛰고, 또 친구들이 반가울 때가 되면 자연스레 우리의 품을 떠날 것이다. 그 때에 가서야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 한 번이라도 그들의 살갗을 만나고 싶다. 지금은 늙어버린 어머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