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에워싸는 일상
이따금씩 생기는 노동거리를 이유로 장비들을 꾸려 집을 나설 때가 기분이 좋다. 이 노동으로 우리가 또 한 주 잘지낼 수 있겠다는 안도와, 내가 가정을 지키는 울타리로서 제 몫을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아빠 일하고 올께~! 라고 말하면 '나도 한 번 가볼래~'라며 투정을 부리다, 이내 '잘 자녀와~'라고 손을 흔들며 이내 자기 손에 들린 놀잇감에 시선을 돌리는 첫째의 관심에 기분이 좋다. 엄마 손에 대롱대롱 매달려 저 사람이 도대체 어딜가는걸까? 하며 넋나간 표정으로 지켜보는 둘째의 시선을 즐기는 것도 기분이 좋다.
노동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편의점 핫바 하나를 물고 있을 때가 좋다. 집과 마을밥상에서는 결코 만나볼 수 없는, 입 속 가득히 퍼지는 조미료와 육즙(?)의 향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운전을 하는 이 순간이 좋아서, 어쩌면 이 일을 더 놓지 못하는 게 아닐까하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고, 둘째를 유아차에 태운 채 옆지기와 함께 하릴없이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순간이 좋다. 집안에 가득 쌓여있는 살림거리로부터 벗어나, 골목길을 다니며 발길 닿는대로 걷다보면 옆지기에게 종종 듣는 잔소리(feat. 왜 설겆이를 깨끗하게 하지 못하니, 뒷간 나오고 왜 불을 안끄니)로 인해 어두워진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지고, 옆지기와 두서없이 떠드는 영양가 없는 대화가 무척 행복하다. 길거리에 있는 옷매장을 들어가보기도 하고, 번쩍거리는 조명 빛에 홀려 빵집에도 가지만, 결국은 덜렁 핫도그 하나를 둘이 나눠먹는 소박함도 재미있다. 먹거리에 진심인 내가 좀 더 뺏어먹으면, 옆지기의 입을 통해 내가 요새 밀고 있는 유행어인 "왜 이러는거여~~"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 그럴때 나는 있지도 않은 제자가 생긴 것 같은 뿌듯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래도 가장 선물같이 주어지는 행복은 새벽에 홀로 깨어있는 시간이다. 태생부터 야행성이었던 내가, 직무와 육아로 어쩔수 없이 새벽형으로 바꾸는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지나고보니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릉거리며 집앞을 지나가는 청소차의 소리를 들으며, 남들이 다 자는 새벽에 노동을 하는 손길의 수고가 애틋하고, 까만 세상이 밝게 물들어가는 새벽의 미명을 넋놓고 보는 재미도 있다. 부지런히 이 나무 저 나무로 날아다니며 먹이를 찾느라 짹짹거리는 새소리를 들으며 지구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아침잠이 많은 옆지기를 위해, 곤히 자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뭐가 있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