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상하게 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은 없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있을 수는 없다. 무리다. 누구에게나 이유 없이 미운 사람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듯이 누군가에게도 나도 그런 사람일 것이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건 아무나에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대가를 바라고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니었지만 무례한 사람에게 냉대받거나 무시당할 땐 허무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욕심은 모든 것을 잘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이어졌다. 욕심부린 만큼 노력했고 웬만큼은 해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어쩌면 어느 하나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왜냐면 모든 것을 잘하려고 한다는 건 집중해서 공들일 시간이 없다는 뜻이다.
20대인 나는 억지로 버텼다. 체력이 허락했고 주어진 역할도 없었다. 사회는 20대인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30대는 달랐다. 주어지는 역할이 늘어났다. 늘어난 역할과 한정된 체력과 시간. 아무래도 20대 때처럼 살 수 없는데 20대 때처럼 살고 싶었다. 여전히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고 아직도 모든 걸 잘하고 싶었다. 그랬던 내가 달라진 건 이직을 결심하면서이다.
나는 간호사다. 전에 다녔던 급성기 정신과 병원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간호사의 근무체계는 데이(낮근무), 이브(저녁근무), 나이트(야간근무)의 3교대로 알려져 있다. 그 병원에서 나는 데이와 이브 근무를 했다. 사실 데이와 이브 근무를 한다고 해도 윗연차 간호사 둘이 주말 및 공휴일은 휴일인 데이를 전담하고 있어 거의 평일, 주말, 공휴일할 것 없이 이브닝 붙박이나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월 휴무는 9개로 고정이었다. 보통 간호사들은 주말이나 공휴일에 쉴 수 없기 때문에 그달의 주말과 공휴일 개수만큼 쉬는데 그곳은 그렇지 않았다.
한 달을 30일로 계산하고 월 휴무가 9개 근무 21개 중 절반 이상이 이브닝. 이브닝 근무 시간은 보통 2시에서 10시 사이인데 이곳은 3시에서 10시였다. 이 시간대로 미루어 보아 짐작할 수 있듯 매번 근무표를 받아 들 때마다 인간관계가 파괴되고 있었다. 거기다 간호사 세계에서 근로 계약서 상 근무 시간은 무의미하다. 근무 시간은 전후로 늘어난다. 어떻게 늘어나냐. 출근은 일찍 퇴근은 늦게 한다. 대개 인계 및 약품/물품 카운트라는 이유로 일찍 출근하도록 강요당한다. 근무 시간 내 벌어진 모든 행위에 대한 처치를 마무리하고 다음번에 넘겨서는 안 된다는 압박을 받는다. 모자란 인력으로 근무 시간 내에 일어난 일을 모두 해결하려면 자연스레 퇴근은 늦어진다. 그렇게 되면 간호사에게 30분에서 1시간의 오버타임은 부지기수다.
이른 출근 강요와 오버타임, 이브닝 전담이나 마찬가지인 근무표도 참기 힘들었지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더블이었다. 그 병원에는 더블 듀티라고 해서 데이와 이브닝을 합친 근무가 월3회 있었다. 말 그대로 하루에 두 듀티를 소화하는 것이다. 말이 쉬워 두 듀티이지 하루 16시간을 근무하는 듀티이다. 앞에서 말했듯 데이 때는 데이 전담인 윗연차가 둘 있으니 죽어라 뛰어다니며 처치를 하는 액팅, 이브닝 때는 지친 몸으로 오더를 받고 처치를 지시하는 차지를 했었다. 보통 30분 일찍 출근은 기본이었고 30분 늦게 퇴근하는 날도 있었으니 점심시간을 합치면 16시간 이상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알다시피 간호사의 점심시간 휴게 같은 건 지켜지지 않는다. 이 더블 근무를 하고 집에 가는 길 지하철에서 내려 난간을 잡고 겨우 지하철역을 빠져나왔다. 눈물이 났다. 몸이 너무 고되면 슬프지 않아도 눈물이 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대부분의 병원들이 인건비를 줄이려 한다. 간호사가 모자란 것이 아니라 일할 간호사가 모자라다. 병원들은 이 사실을 외면한다. 특히 그 병원은 더했다. 평일에는 간호사 2-3명이 주말에는 간호사 1명이 많게는 환자 70명 적게는 60명을 봤다. 타과에 비해 정신과는 처치가 적은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해서 60-70명을 간호사 1-3명이 감당하는 것이 타당할까. 물리적으로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그런 인력이 모자란 상황에서는 필연적으로 실수가 발생하며 사고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환경은 개선되지 않는다.
내가 이직을 결심한 계기는 이랬다. 원래도 인력이 모자란 곳에 친하게 지내던 선배 간호사가 퇴사를 했다. 후배 간호사는 환자를 보다 다리를 다쳤다. 당연히 근무는 돌아가지 않으니 서로 양보해야 하는데 윗연차 둘은 본인들은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아무런 대책 없이 부재중인 2명의 일과 평일에도 버거운 더블을 주말까지 강요당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할 수 있는 것 이상 해냈음에도 돌아오는 것은 질책과 비난뿐이었다. 그런데 거기에 2인분 몫까지 더해졌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몸이 아팠다. 마음도 아팠다.
요가로부터 배운 지혜가 있다. 아플 땐 멈춰라. 몸이 아플 땐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는 뜻이다. 몸을 살핀다. 대개 몸이 아플 땐 가동 범위 이상 움직이고 있거나 뻣뻣할 때이다. 몸이 유연하면 다치지 않고 가동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아프지 않다. 마음도 이와 같아서 마음이 아플 때는 마음을 살펴야 한다. 마음이 굳어 있고 할 수 있는 것 이상 무리를 하면 다치는 일이 많다. 그때 나는 무리했던 것 같다. 정신과가 좋았고 같이 일하던 동료들을 좋아했다. 거기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가면을 쓰고 있었던 터라 내키지 않으면서도 양보하고 희생했다. 모든 걸 잘 해내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가면을 써도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았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다는 것과 모든 걸 잘 해내고 싶다는 건 환상이었다. 그 환상을 손에 넣으려 하면 할수록 멀어졌고 끝에는 상처받았다.
지금도 가끔은 그리워할 정도로 정신과를 좋아했다. 모자란 인력, 때로는 위협적인 환경, 열악한 근무 조건을 다 감당할 만큼 정신과 간호사라는 자부심도 있었으나 그 과정에서 나는 소모되었다. 과도한 업무량으로 건강을 소진했다. 무리하고 부당한 요구를 감당하며 마음도 소진했다. 시간과 체력은 물론 마음도 한정되어 있다. 고갈되었을 때 금방 회복되지 않으므로 아껴야 한다.
자신을 소모하지 않기 위해는 잊지 않아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첫째 한정된 것은 써야 할 때 써야 할 곳에 써야 한다. 가장 소중한 것은 나 자신이다. 소중한 것은 아껴주는 곳에서 감사와 사랑으로 써야 한다. 둘째 지켜야 마땅한 것을 선택한다. 그래야 자신도 지킬 수 있다. 셋째 스스로를 상하게 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