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사랑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누구나 신념을 부여하는 것이 있다. 내게는 식사다. 식사가 무슨 신념씩이나 되냐 할 것 같아 밝힌다. 나는 채식주의자였다. 그러나 신념은 절대적이지 않다. 신념을 바꾸는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대개 그 순간은 소중한 존재가 생겼을 때이다. 올봄 결혼을 했다. 아이를 원하게 됐다. 나는 그 순간이 왔음을 직감했다. 아이를 가지기로 하니 생각할 것이 많았다. 그중에는 채식도 있었다. 임신 유지에는 단백질이 필요할 텐데 식물성 단백질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참 고민하던 중 나는 한 책을 떠올렸다. 결혼 전 읽은 사랑에 관한 책이었다. 그 책을 읽고 식습관을 바꿨다. 이번에도 그 책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그 책은 개리 채프먼의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이다. 책에서는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에 대해 얘기한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는 함께하는 시간, 인정하는 말, 선물, 봉사, 스킨십이다. 사람들은 각자 사랑의 언어가 다르며 저마다 애정 탱크를 가지고 있다. 애정 탱크는 각자에게 맞는 사랑의 언어로 표현이 되어야 마르지 않고 채워진다. 즉 아무리 나의 사랑의 언어로 애정을 표현해도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가 다르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로의 사랑의 언어를 알고 그 언어로 애정을 표현해 주면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 책에 따르면 나의 사랑의 언어는 함께하는 시간과 인정하는 말이었고 남편의 사랑의 언어는 스킨십과 봉사였다.
책을 읽고 나는 남편의 사랑의 언어 중 하나인 봉사로 애정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사랑의 언어는 나의 아침을 바꾸어 놓았다. 원래 나는 아침 식사를 거의 하지 않았다. 먹어도 요거트나 과일 정도였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남편은 아침을 먹지 않으면 안 되고 쌀밥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 그런 남편을 위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남편의 아침 식사를 쌀밥으로 준비하고 함께 먹는다. 남편의 사랑의 언어로 애정을 표현하니 남편은 행복해했다. 남편이 행복해하니 나도 행복했다. 생활양식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더 행복해졌다. 이 경험으로부터 나는 소중한 존재와 함께 하기 위해 변해야 할 것이 있음을 배웠다. 그리고 이 행복의 경험은 내게 용기를 주었다. 그렇게 신념이었던 채식을 그만두었다. 신념을 바꾸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더 행복해졌다. 남편이 좋아하는 고기 요리를 해 주고 함께 먹을 수 있어 행복하다. 그래서 나는 채식을 그만둔 것을 내가 포기했거나 양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 사랑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내 이야기만 써서 일방적으로 나만 노력하는 것 같지만 전혀 아니다. 내가 이렇게 남편의 사랑의 언어로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남편 덕분이다. 남편은 나의 사랑의 언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남편은 본인의 사랑의 언어인 '봉사'로 내게 헌신한다. 남편은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안에서는 주부인 나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돕는다. 밖에서는 간호사인 나를 인정하고 배려한다. 남편은 나의 사랑의 언어인 인정하는 말을 잊지 않는다. 늘 내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감사를 잊지 않는다. 남편은 변함없이 애정을 표현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랑의 언어를 쓰지만 서로의 언어를 존중하고 소중하게 여긴다. 결혼은 사랑의 종착점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다른 사랑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남편을 위한 글이다. 모처럼 긴 휴일에 본인도 푹 쉬고 싶었을 텐데 일하는 나를 대신해 남편은 불평 하나 없이 여러 일을 해주고 있다. 그리고 밖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온 나를 위로해 주고 도닥여 준다. 이렇게 좋은 사람과 결혼을 했다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